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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우크라가 결정해야" 美, '러 본토 타격' 묵인으로 선회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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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 전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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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북동부에서 새 전선을 여는 등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타격을 묵인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공식 발언을 내놨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 본토 공격과 관련해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위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발언은 러시아의 하르키우주(州) 공세 등 급박해지는 전황에 맞춰 미국산 무기에 대한 사용 제한이 완화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러시아는 지난 10일부터 자국과 국경을 맞댄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우주(州)에 새 전선을 열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방어 전선이 급격히 무너져 러시아군이 이 일대 마을 10곳을 장악한 상태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확실히 승리하도록 돕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우리는 우리가 제공했고 계속 제공하고 있는 특별한 지원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그간 우크라이나 외부에 대한 공격을 장려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자유, 주권을 위해 이 전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들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되 러시아 영토 내의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에 사용하지 말라는 조건을 걸었다. 특히 미국은 본토 타격 자제에 대한 확약을 받은 뒤 본토를 때릴 수 없도록 사거리를 짧게 개조한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도 했다. 이는 서방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경우 전쟁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러시아의 대결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블링컨 장관의 언급으로 미국의 그간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이 같은 미국 측 공식 입장이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타격 역량을 갖춘 상황에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사거리가 300㎞에 달하는 신형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 미사일을 제공했다고 지난달 밝힌 바 있다. 이 미사일은 러시아가 점령한 크름반도 깊숙한 곳까지 타격할 수 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성공하고 승리하는 데 필요한 장비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와의 안보 협정 서명이 임박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힘든 작업은 끝났고, 우리는 곧 문안을 마무리할 것"이라며 "수주 내 협정에 서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미국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 32개국은 우크라이나에 군사 및 재정적 지원을 하는 내용의 안보 협정을 논의해왔다. 블링컨 장관은 "현재 32개국이 (우크라이나와) 안보 협정에 대한 협상을 완료했거나 완료할 예정"이라면서 "이 협정은 향후 10년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고 우크라이나가 침략을 막을 수 있는 미래 군대를 만들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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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바르만 딕탯'이라는 라이브 바에서 닐 영의 1989년 발표곡 '자유로운 세상에서 록을 하자(Rockin' in the Free World)'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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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틀 간의 일정으로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블링컨 장관은 냉전 반대 메시지를 담은 '깜짝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수준급 아마추어 기타 연주자로 알려진 그는 1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바르만 딕탯'이라는 라이브 바에서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닐 영의 1989년 발표곡 '자유로운 세상에서 록을 하자(Rockin' in the Free World)'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했다. 이 곡은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 직전에 발표돼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노래다.

블링컨 장관은 바 좌석에 앉아있다가 현지 밴드 '19.99'의 리더가 "우크라이나의 위대한 친구"라 소개하자 무대에 올랐다. 그는 "최근 우크라이나 군인과 시민은 특히 북동부 하르키우에서 극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러나 미국과 세계가 여러분과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공연을 두고 "서구 민주주의가 러시아 권위주의 세력과 싸우고 있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려 했다"며 평했다.

부적절한 행동이었단 비판도 나왔다. 한 우크라이나 비정부기구(NGO) 대표는 페이스북에 "하르키우가 지구 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사람들은 집을 떠나고 있는데 미국 최고위급 관리가 키이우 바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꼬집었다. 전쟁에서 두 다리를 잃은 전역 군인 올레 시모로즈 씨는 X(옛 트위터)에 "무기가 부족하고 동맹국 지원이 충분치 않아 매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데 이런 공연은 정말 눈치 없고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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