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팔라완에 있는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 강 국립공원.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동력 보트를 타고 들어가서 컴컴한 동굴을 둘러본다. 사진 필리핀관광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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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떼 지어 우는 소리가 동굴 천장을 울려 대는데 아기 박쥐들은 잘만 잔다. 다섯 명이 한 줄로 가운데를 맞춰 앉는 작은 배를 타고 그 아래를 흘러간다. 한 귀엔 한국어 설명이 흘러나오는 기기를 꽂고, 눈으론 뒤에 앉은 현지인 가이드가 손전등에 덧대 만드는 손 그림자를 바삐 쫓는다. 도파민 중독자도 이 정도 미디어 멀티태스킹이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을 듯하다. 억겁의 세월이 석회암을 빚어 촛불·티라노사우루스·예수를 조각한 것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부모가 아기를 보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조각상 같지만 자연이 만들어 낸 동굴 내부의 돌이다. 문현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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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팔라완 섬, 그중에서도 푸에르토 프린세사 지하 강 투어는 자연의 보금자리에 몰래 온 손님처럼 진행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란 설명이 없었어도, 땅 밑 굴에 사는 생물들이 빛이나 소리에 얼마나 취약할지 생각하면 끄덕여진다. 설명은 녹음된 기기를 통해 이어폰으로 듣고, 내부엔 어떤 조명도 설치하지 않았다. 박쥐나 기암괴석을 볼 수 있는 건 손전등 하나 덕인데, 이마저도 잠시 끄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칠흑과 마주한다.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한 그림자 속에 파묻혀 무엇도 볼 수도 떠올릴 수도 없어 백색 소음 같은 새 소리나 들으며 동굴 밖 세상의 잡념을 까맣게 지워본다.
대낮에도 지하강 내부는 깜깜하다. 사진은 동굴 내부를 둘러본 뒤 나가는 길에 찍은 모습. 문현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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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마지막 야생, 팔라완
포포인츠 쉐라톤 뒤편에 펼쳐진 사방해변의 해 질 무렵 모습. 지하강 국립공원과 사방 맹그로브 숲 모두 사방 해변 인근에 있다. 문현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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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이국의 풍경보다 자국민이 더 많이 보이는 여행은 싫지만, 긴장과 용기를 소모하는 수준의 대모험은 두렵다면 팔라완이 제격이다. 뻔히 예측되는 여행은 재미가 없고, 미지만 계속되는 여행은 피곤하다. 팔라완에선 양면을 누릴 수 있다. 필리핀의 마지막 개척지라는 이 섬이 여태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보고는 마치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투어는 체력도 최소한으로 요구한다. 지하 강 국립공원을 본 뒤엔 바닷물에서도 자라난다는 맹그로브 나무들이 이룬 숲속에서 줄무늬 뱀이 낮잠을 자는 모습도 볼 수도 있는데, 역시 보트를 타고 지나가며 감탄만 하면 된다.
사방해변의 해 뜨는 모습. '일몰 시간'을 검색해 이보다 조금 일찍 나가면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모습부터 전부 즐길 수 있다. 문현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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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인츠 쉐라톤 푸에르토 프린세사 호텔. 대형 수영장을 중앙에 두고 양옆에 객실 건물이 늘어선 형태다. 문현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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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호텔 건물 밖을 나서면 원시적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이 펼쳐진다. 사진은 호텔에서 추천한 산책 코스대로 걷다 보면 마주하는 모습이다. 문현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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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듯 익숙한 식도락도 필리핀 여행의 묘미다. 재료 따라, 집집마다 달라진다는 덮밥 ‘아도보’와 국물 요리 ‘시니강’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맛이다. 땅콩 소스가 들어가는 ‘카레카레’는 밥과 함께 먹는 별미다. 볶음면 요리인 ‘판싯’은 야끼소바와 오일 파스타 사이 어딘가에서 매력을 뽐낸다. 작고 바삭한 돼지기고기 요리인 ‘시시그’는 한 입 먹으면 맥주를 고르게 한다. 필리핀 맥주 ‘산 미구엘’은 어느 식당에서나 만날 수 있는데 칼로리가 낮은 ‘산미구엘 라이트’도 많이 판다. 포포인츠에 묵는다면 지역 맥주를 경험할 수 있다. 필리핀 최초의 여성 양조업자가 팔라완의 청정한 물을 각기 독특한 맛을 내는 맥주로 빚어낸다. 팔라완산 파인애플을 첨가한 맥주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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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완 가는 길, 마닐라에서 즐기는 호캉스
마닐라 뉴포트월드 쇼핑센터 내에 있는 위스키 바인 '위스키 라이브러리'.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와 이곳만의 특제 칵테일도 맛볼 수 있다. 문현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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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어트 마닐라 호텔에는 두 곳의 수영장이 있다. 사진은 메인 빌딩에 위치한 루프탑 수영장. 문현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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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는 한국에서 팔라완을 가려면 들러야 하는 곳이나 별도로 훌륭한 여행지기도 하다.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한다는 뉴스가 그다지 놀랍지 않은 이 도시는 더위를 견디고 즐길 방법을 여러모로 고민해 펼쳐뒀다. 대형 호텔과 쇼핑몰이 이어지고 내외국민을 불문하고 개방된 카지노는 밤을 모른다. 메리어트 호텔과 이어진 뉴포트월드 쇼핑센터엔 곳곳에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이를 ‘몰지엄(쇼핑몰+뮤지엄)’이라 부른다는데 확장되고 변화하는 ‘호캉스(호텔+바캉스)’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닐라에서 가장 방대한 위스키 컬렉션을 갖췄다는 ‘위스키 라이브러리’에 가면 종업원이 사다리를 타고 위스키를 꺼내오는 걸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곳곳의 안내 표지판마다 한국어가 있고 한국 음식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쉐라톤 호텔의 한식당 우리(Oori)에는 한국인보다 현지인과 서양인이 더 많았다.
■ 여행정보
박경민 기자 |
한국에서 팔라완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인천에서 마닐라까지 비행시간은 4시간 남짓, 마닐라에서 팔라완까지 비행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다. 열대우림 기후인 필리핀은 일 년 내내 따뜻하나 평균온도 30도 이하의 건기(11~2월), 더 더운 건기(3~5월), 우기(6월~10월)로 나눌 수 있다. 식당·카페·마사지샵 등에선 팁 문화가 있는데 미국처럼 구매금액의 일정비율이 아니라 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를 기준으로 50페소(약 1200원)~200페소(액 4800원)를 준다. 세븐일레븐 같은 편의점에서도 카드를 받지 않는 곳도 많아 환전은 필수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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