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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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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검찰총장 "대통령 가족 수사 때 장수교체? 단 한번도 없었다"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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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은 “어제 단행된 검찰 인사는…”이라고 운을 뗐다가 갑자기 침묵했다. 14일 오전 9시 5분 대검찰청 현관 앞에서 취재진 20여 명이 “어제 법무부의 검찰 고위 간부(검사장) 인사가 충분히 사전 조율을 거친 게 맞느냐”는 질문을 던진 후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에서다. 각 방송사 카메라도 돌고 있었다. 정확히 7초간 침묵 후 그는 “이에 대해선 더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말을 이었다. 묵비였지만 묵비가 아니었다. 현장 기자들 대부분 ‘묵언의 항의’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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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검찰총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 수사 및 검찰 인사 등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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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검찰의 갈등은 역대 정부마다 반복된 일이다. 하지만 첫 검사 출신 대통령의 집권 2년 만의 갈등은 너무 이르다. 그것도 대통령 배우자 수사란 예민한 문제가 발단이 됐다.

이원석 총장이 지난 2일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관련 전담 수사팀을 구성해 신속 수사하라고 지시한 지 11일 만에 수사 지휘자인 송 지검장을 교체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김 여사의 명품백 의혹(형사1부)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반부패수사2부) 수사 실무를 각각 총괄하던 김창진 1차장검사, 고형곤 4차장검사마저 각각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수원고검 차장검사로 보낸 건 “수사 방해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까지 검찰에서 나왔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사의를 표한 한 검사장은 “이런 식의 비상식적 인사는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란 메시지의 폭력적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이 총장은 이날 “어느 검사장이 오더라도 수사팀과 뜻을 모아서 일체의 다른 고려 없이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서만 원칙대로 수사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인사는 인사이고 수사는 수사”라고 했다. 이는 곧바로 후배 검사들을 향한 당부이자 용산을 향한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는 총장직 조기 사퇴설에 대해서도 “검찰총장으로서 제게 주어진 소임과 직분, 소명을 다 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다”고 일축했다.

대검찰청이 이상 신호를 감지한 건 김주현 민정수석 임명 직후인 지난 주말부터라고 한다. 법무부 검찰국이 검사장 인사안을 짠다는 소식이 대검에 전해졌다. 법무부 고위 관계자가 옷을 벗어야 할 검사장 이상 간부들에게 직접 전화 통지를 하기 시작하면서다. 검사장 인사는 곧 김 여사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송경호 지검장에 대한 인사를 의미했다. “이 총장의 대검 참모(검사장)들을 전부 날려야 한다”(대통령실 관계자)는 말도 4·10 총선 전부터 용산 주변을 맴돌던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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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장 등 고위 검사 인사가 단행된 13일 강원 춘천지방검찰청 원주지청을 방문한 이원석 검찰총장이 인사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묵묵부답하며 청사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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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인사는 통상 대통령실·법무부·대검찰청의 3자가 조율하는 게 관례다. 검찰청법(34조)엔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대통령에게 제청한다”고 다소 모호하게 돼 있다. 역대 청와대는 검찰과 관계가 껄끄러울 때면 총장의 의견을 듣되 꼭 반영할 필요는 없다고 해석했다. 이 총장은 지난 11일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만나 법무부의 인사안을 봤다고 한다. 그러나 이 총장은 “지금 당장 인사를 내는 건 안 된다”고 반대했고, 박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고 한다(대검 고위 관계자).

이 총장은 법무부 인사 발표가 있던 13일 춘천지검 영월지청·원주지청을 찾았다. 그런데 영월지청에 있던 점심즈음 “오늘 오후 3시에 검사 인사가 난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서울로 돌아와야 했다. 이튿날 청주지검 제천지청·충주지청 방문이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했다.

송경호 중앙지검장과 그 휘하의 1·2·3·4차장검사를 모두 교체하는 전례 없는 수준이었다. 신임 중앙지검장엔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대검찰청 대변인이었던 ‘찐윤’ 이창수(30기) 전주지검장이 임명됐다. 이 총장의 대검 참모도 외부 개방직인 감찰부장을 제외한 7명 중 6명을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 놨다.

검사장 이상 39명을 이동하는데 인사 대상자 상당수가 중앙일보에 “13일 인사가 날 줄 예상 못 했다” “인사 발표 5분 전에야 법무부 메일을 받아 내가 인사 대상인 걸 알았다” “이임사 쓸 시간도 안 주고 군사작전처럼 인사를 냈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사장에게는 인사 발표 최소 며칠 전에 어디로 갈지 귀띔을 해주는 게 통상적인 방식”이라고 했다.

이 총장과 사전 협의를 놓고도 법무부와 대검은 “필요한 협의를 충분히 했다”(법무부 관계자)와 “조율이 제대로 안 됐거나 총장의 의견을 무시하고 인사를 한 것”(대검 관계자)이라며 입장이 갈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이번 인사는 총선 전 인사를 하면 오해를 살까봐 늦췄을 뿐 오래 전부터 협의를 거쳐 결정을 내린 것”이라며 “ (김주현) 민정수석이 와서 엿새만에 관련 인사에 관여할 수 있었던 상황도 아닌 데 검찰인사를 흔들었다는 비판은 매우 부당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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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사진은 법무부 장관 재임 시절인 2020년 1월 8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건물을 나서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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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일각 “尹이 추미애보다 더하다” 작심 비판



대통령의 가족 수사 도중에 수사 지휘라인을 전원 교체하고 검찰총장 참모진까지 대거 물갈이한 데 대해선 “수사 도중 장수 교체는 역대 대통령이 한 번도 안 했던 일”(전직 검찰총장)이란 평가가 나온다. 김대중 정부 임기 말 3남 김홍걸 전 의원에 이어 2남인 김홍업 전 의원까지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청와대에서 수사팀 교체론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청와대 고위직의 교체 건의가 있었지만 자식의 구속 앞에서도 DJ는 포기했다”고 전했다.

추미애 전 장관이 2020년 1월 취임 직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참모들을 대거 지방으로 발령 낸 인사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원석 총장 역시 당시 대검 기획조정부장으로 있다가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 등과 함께 좌천됐다. 윤 총장은 그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제가 인사권도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밖에서 다 식물 총장이라고 하지 않냐”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인사 대상에 포함된 한 검사장은 “추 전 장관의 인사에 누구보다 분노했던 윤 대통령이 같은 방식으로 검찰을 손아귀에 쥐려 한다는 점에서 더 분노스럽다”며 “그런 면에서 윤 대통령이 추미애보다 더하다”고 했다. “거지 같은 인사”란 말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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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참석한 윤석열 검찰총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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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인사 대상자는 “이런 인사를 짠 건 이 총장에게 일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다른 검사장은 “앞으로 인사에선 ‘찐윤’ ‘찐찐윤’ 검사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자조했다.

차장·부장검사 등 후속 인사에 관해서도 이 총장이 “제가 알 수 없는 문제”라고 하자 “총장이 인사에서 패싱 당했음을 시사하는 것”(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번 인사의 마지막 퍼즐은 결국 서울중앙지검 1·2·3·4차장검사를 포함한 김건희 여사 수사팀 구성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직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배우자를 수사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검사를 배치하느냐 윤 대통령과 또 다른 인연이 있는 검사를 배치하느냐의 문제다.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이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은 우선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선 김 여사 본인을 직접 소환해 조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전임자가 김 여사 소환 건의를 했다가 용산에 눈 밖에 나고 경질 인사를 당한 상황에서 이창수 신임 중앙지검장에게 모든 부담이 쏠리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지검장으로선 용산뿐만 아니라 반포대로 건너편에서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주문하는 직속 상관인 이 총장의 지시도 동시에 받들어야 하는 상황이어서다.

이원석 총장을 만난 한 인사는 “검사 인사 후 이 총장의 표정이 더 결연해진 것 같다”며 “이 총장은 검찰이 위기라고 느낄수록 신속·엄정한 수사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준영ㆍ허정원ㆍ양수민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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