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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 (일)

[만물상] ‘아파트 혼맥’도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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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서울 서초구의 한 신축 대단지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미혼 자녀들끼리 만남을 주선하는 모임이 결성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입비 10만원에, 연회비 30만원이다. 가입 대상은 아파트 입주민 및 입주민의 결혼 적령기 자녀다. 이 아파트는 최근 전용 85㎡(25평) 크기가 42억5000만원에 거래돼 평당 매매가가 1억6500만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에 대단지 아파트가 지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다. 1990년까지도 10가구 중 6가구 이상이 단독주택에 살았다. 30년 만에 국민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아파트 공화국’이 됐다. 고소득층은 77%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 주거가 확산되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공동체 붕괴 우려도 많았다. 그런데 집값이 치솟고 집값 격차가 벌어지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들끼리 아파트 가격 지키기를 위한 이익 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정들 자산은 78%가 부동산인데 대부분이 아파트 한 채 소유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인근에 임대용 청년주택이 건설된다고 하면 구청에 민원이 쇄도하고 시위가 벌어진다. 청년주택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부터 한 단지 내에 분양주택과 임대주택을 함께 조성하는 ‘소셜 믹스’가 도입됐는데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아파트 단지는 임대주택 건물만 외관과 색깔을 달리해서 지었다. 건물 한 동짜리 주상복합건물에 임대 가구는 저층부, 일반 분양 가구는 고층부로 분리 배치해서 입구와 엘리베이터를 달리하고 비상계단까지 막은 곳도 있었다.

▶과거에는 혈통이 신분을 갈랐는데 현대는 문화와 취향이 신분을 나눈다고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했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신분 사회’가 될 모양이다. 엇비슷한 모양으로 대량 생산된 아파트에 살다 보니 아파트 이름, 동수만 넣으면 그 사람 자산 상태가 파악된다. 발 빠른 상술이 이를 부추긴다. 한 카드사는 비싼 새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입주민 전용 신용카드를 내놨다. 특정 아파트 거주가 마치 특별한 신분이라도 되는 듯 그 신용카드로 인근 백화점에 가면 차별화된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이제는 ‘재벌가 혼맥’에 이어 ‘아파트 혼맥’도 나오려나 보다. ‘아파트 단지 내부 중매’ 기사에 독자들이 ‘자가와 전세는 리그를 나눠서?’ ‘ㅎㅎ 100평에는 30평짜리 3명 붙여주라’ ‘평형별로 나눠서 사돈 해라’ ‘그곳 살다 다른 동네 이사 가면 이혼하나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왠지 씁쓸하다.

[강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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