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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시진핑, ‘美 동맹’ 유럽까지 중국 편으로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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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중국 현대화 실현 중요한 동반자”

시진핑 주석 5년만에 유럽 3개국 순방

對中 포위망 한 축 유럽에 구애의 손길

과잉생산 등 유럽측 문제 해결 요구에

시 주석 “일정 부분 공감” 유화책 전략

시장 기대에 부합한 中 정부 경제 정책

中·홍콩 증시 경기회복 기대감에 우상향

헤럴드경제

지난 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 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


“유럽은 ‘중국 특색 강대국 외교’의 중요한 방향이자, 중국식 현대화를 실현하는 중요한 동반자다.” (6일 中·佛·EU 3자 정상회의, 시진핑 中 국가 주석 모두 발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유럽을 향해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을 괴롭혀 온 미국 주도의 대중(對中) 포위망의 주요 한 축이던 유럽을 미국으로부터 떼어내겠다는 행보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5년 만에 나선 유럽 3개국(프랑스, 세르비아, 헝가리) 순방을 통해 미국과 중국 간에 벌어지고 있는 ‘패권 경쟁’, ‘신(新) 냉전’의 구도와는 별개로 유럽과는 우호관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수년간 중국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여 온 유럽 역시 만만하지만은 않았다. 첫 순방국의 국가 원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물론, 함께 만난 유럽연합(EU)의 최고 지도자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시 주석의 면전에서 ▷중국의 과잉생산과 불공정 무역 문제 ▷우크라이나·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서 중국이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것 등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유럽의 ‘손님 대접’에 대한 시 주석의 반응이 매우 흥미롭다. 비슷한 주제로 압박을 가한 미국을 향해선 ‘보복 관세’나 면박 등으로 강경하게 맞부딪힌 것과 달리 유럽에 대해선 문제 인식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대규모 경제 협력 작업에 착수하는 등 유화책으로 전략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유럽과 관계를 표현하며 수차례 사용한 ‘전략적’이란 표현의 의미에 주목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서로 다른 체제로 갈등할 수도 있지만, 서로의 이해에 맞춰서는 손을 잡아야 한다는 ‘실용외교’를 주문한 것이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유럽 도착 첫날인 5일(현지시간) 프랑스 보수 일간지 르피가로 기고를 통해 과거 수차례 공개적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존경심을 표현했던 현대 프랑스의 국부(國父) 샤를 드골 초대 대통령의 ‘전략적 비전’을 추켜세웠다.

제2차 세계대전을 함께 치러낸 서방 세계의 주축이지만 친미(親美)가 아닌 독자 노선을 걸었던 드골 전 대통령의 길을 마크롱 대통령이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헤럴드경제

지난 8일(현지시간)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시진핑(習近平·왼쪽) 중국 국가 주석과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고 있다. [EPA]


▶習, 유럽 내 親中 교두보 확보 가속도=프랑스에 이어 방문한 2개국에선 시 주석의 이번 순방 목적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진핑은 유럽의 변절자(renegade) 세르비아와 헝가리의 포옹을 즐긴다(China’s Xi Enjoys Embrace of Europe‘s Renegades, Serbia and Hungary)’라는 강렬한 기사 제목으로 시 주석의 의도를 분석했다.

유럽 국가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를 가장 많이 포용하고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도전해왔다는 공통점을 지닌 두 나라를 방문, 유럽을 지렛대로 활용해 중국을 압박하려는 미국에 굴하지 않겠단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시 주석의 세르비아 방문일은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에 의해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이 폭격당한 지 2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미국은 오폭이라 해명했지만, 이 사건 이후 세르비아와 중국은 반서방 정서를 공유하며 각별한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은 2008년 독립 선언에도 불구하고 코소보를 세르비아의 자치주에 불과하다고 간주하고, 세르비아는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간주한다는 공통의 이해관계까지 맞아 떨어지며 양국은 ‘찰떡궁합’을 과시 중이다. 이번 순방에서 양국 간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사안은 바로 오는 7월부터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하기로 했다는 점이다.

시 주석의 마지막 유럽 순방국 헝가리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 ‘EU 회원국’이라는 점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중 압박에 보조를 맞췄던 EU 내에서도 친중, 친러 성향의 헝가리는 ‘약한 고리’로 불려왔다. 실제로 시 주석은 막강한 ‘머니 파워’를 바탕으로 인프라 건설과 에너지 부문 등에서 다양한 경협 강화에 나서며 헝가리를 자신의 우호 세력으로 굳히기에 나섰다. 시 주석은 “헝가리와 협동해 중국과 중·동유럽 국가 간의 협력을 심화하고 중국·유럽 관계의 지속적인 성장을 보장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헝가리를 이용해 다른 유럽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미국 주도의 대중 견제 대열을 흩트리겠다는 뜻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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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현지시간) 빅토르 오르반(오른쪽) 헝가리 총리가 국빈 방문을 위해 헝가리를 찾은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부다페스트 공항에 직접 나가 맞이하고 있다. [로이터]


▶對韓·美·아세안 수출 회복에도 유럽만 ‘역성장’=시 주석이 미국과 유럽 간의 거리 벌리기에 직접 나선 타이밍이 오묘하다. 불과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치 동맹 중심의 대중 포위망 구축에 적극 나섰던 바이든 미 대통령이 대선 레이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며 내부적으론 선거전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이스라엘-이란 간 전면전으로 확전될 뻔한 ‘중동 전쟁’ 이슈에 매몰된 틈을 이용해 시 주석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1월 미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더 높다고 평가 받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등장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점도 중국의 대(對) 유럽 활동 반경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는 배경이다.

앞서 유럽의 미국 동맹국들은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매운맛’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최우선적으로 내세우며 전통적인 동맹의 가치보단 당장의 현실적인 이윤을 추구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트라우마가 여전히 기억에 생생하다. ‘관세 폭탄’이란 더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채 향후 4년 간 유럽 세계를 압박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될 때를 대비, ‘주요 2개국(G2)’ 중 다른 한 국가인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고자하는 수요가 늘어난 틈을 시 주석이 파고 들었다는 것이다.

유럽 세계와 접점을 넓혀가고 있는 시 주석의 움직임의 목적으론 정치, 군사, 외교적 측면 못지 않게 경제적 측면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EU 통계 당국인 유로스탯에 따르면 2013년 이후 2022년까지 EU의 대중 수입액은 매년 확대된 바 있다. 2013년 2389억유로(352조원)에서 2022년 6273억유로(923조원)로 2.6배나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EU의 대중 수입액은 전년 대비 18%나 감소한 5144억유로(757조원)에 머무르는 데 그쳤다.

글로벌 통계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8년(3510억달러, 480조원) 이후 2022년(8379억달러, 1147조원)까지 늘기만 했던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폭도 작년엔 8232억달러(1127조원)로 6년 만에 감소세를 보였다. 대 유럽 무역에서 발생한 수출액 감소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지난 9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가 발표한 4월 수출액이 위안화 기준 2조800위안(393조원)으로 전년 대비 5.1% 증가(달러화 기준 1.5% 증가)하며 블룸버그통신(1.3% 증가)과 로이터통신(1.5% 증가)이 취합한 전문가 예상치에 부합했지만, 2대 무역 상대인 EU에 대해서 만큼은 1.5% 감소세를 보였다.

코로나19 이후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못하던 중국 경제의 활력을 되살릴 선순환 구조의 첫 단추로 꼽히는 요소가 ‘수출 회복’이란 점에서 시 주석의 대 유럽 경제 외교 행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란 분석도 나온다.

최대 무역 파트너인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3대 무역국인 미국, 4대 무역국인 한국 등에 대한 수출 증가세가 지난달 뚜렷했던 만큼, 유럽에 대한 수출만 회복된다면 한동안 침체됐던 중국 경기 반등엔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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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통하기 시작한 中 정부 경제 정책=대외적 환경을 바꾸려는 중국의 적극적인 움직임과 더불어, 중국 내부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도 변화가 감지되는 모양새다. 중국 경제 상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앙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시장의 기대에 부합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증권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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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30일 개최된 중국 중앙정치국회의가 정책 시행에 대한 적극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시장의 기대치를 상회했다고 평가했다. 김 연구원은 “‘온중구진(穩中求進·안정속에서 성장)’을 강조하며 하반기로 갈수록 정책이 약화되는 현상을 피할 것임을 강조했다”면서 “소비재 ‘이구환신(以舊換新, 노후 자동차·가전 제품 구매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책 실행에 대단히 높였다”고 분석했다.

1분기 대비 지방정부특수채 발행이 가속화되고 늦어도 6월부터 초장기 특별국채가 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중국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중국 정부의 정책 방향이라고 김 연구원은 짚었다. 그는 “‘금리 및 지준율 정책도구 사용을 유연하게 활용할 것’임을 언급한 만큼 5월 지준율 인하 가능성도 높아졌고, 하반기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 또한 열어놔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중국 경기 ‘리오프닝’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던 부동산 경기 침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부양 방향이 보다 실효성있게 바뀌었다는 점도 호재로 꼽힌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중국의 부동산 부양 방식이 기존 ‘공급’ 위주에서 ‘수요’ 중심으로 바뀐 것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주택 ‘이구환신’ 정책 ▷대도시 구매제한 폐지 등을 대표적인 수요 부양책으로 꼽았다.

다만, 조정세가 4년째에 접어들며 만성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중국 부동산 경기가 제대로 반등하기 위해선 단기 처방적 성격의 제도에만 그쳐선 안된다는 것이 최 연구원의 지적이다.

최 연구원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오는 7월 개최될 예정이다. 3중전회는 역사적으로 중국 경제구조 개혁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했던 회의였던 만큼 부동산 장기 성장에 관한 새 모델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현재의 주택재고를 장기국채 발행 혹은 리츠 등의 방식으로 소진해주는 실질적인 방안이 제시된다면 부동산 개발사(디벨로퍼)의 유동성 리스크는 크게 해소될 수 있고, 부동산 경기도 바닥을 통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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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홍콩 증시 급등세에 불 붙인 ‘중국판 밸류업’=전문가들은 아직 중국 경기의 ‘회복’을 언급하기엔 이른 시점이라는 데 입을 모은다. 하지만, 증시로 대표되는 금융투자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선반영’이라고 했던가. 중국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5.3%로 시장 전망치를 크게 웃돌았고,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제조업의 활력을 측정하는 지표)가 확장세라는 점만으로도 투심을 자극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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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홍콩 등 중화권 증시는 벌써부터 중국 경기의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안고 가파른 기울기로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일 종가 기준으로 홍콩 항셍지수와 홍콩 H지수(HSCEI)는 올해 들어서만 각각 10.42%, 16.73% 상승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도 같은 기간 6.52% 올랐다.

지난 4월 한 달만 떼서 봤을 때는 홍콩 항셍지수가 7.4%, 홍콩H지수가 8.0% 오르며 세계 주요 증시 중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오랜 부진 탓에 중국 증시가 추락하며 저평가 장점이 부각된 데다, 미국 등 선진시장의 활기가 꺾이면서 대안 투자처를 찾던 자금이 대거 쏠린 덕으로 풀이된다.

중국 주식 시장을 한동안 외면했던 외국인 큰손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는 점도 증시 전망을 밝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가 하락했던 지난 1월부터 2월 15일까지 일평균 외국인 순매수액은 약 453억원 수준이었다. 이후 4월 말까지 일평균 외국인 순매수액은 7배에 가까운 3122억원에 달했다.

긴 터널을 지나던 중국 증시가 빛을 보기 시작한 데는 중국 정부가 발표한 ‘중국판 밸류업’ 프로그램 ‘신(新) 국9조’가 힘을 발휘한 것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자율성’을 수차례 강조하고 있는 한국의 ‘밸류업’과 가장 큰 차이점은 ‘패널티(벌칙)’ 정책으로 ‘강제성’을 높였고, ‘중앙기업’의 역할을 강화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중앙기업’은 중국 정부의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와 기획재정부 산하에 있는 기업을 지칭하는 말이다. 중국 주식시장의 시총 상위 중대형 기업의 대부분은 ‘중앙기업’이다.

2004년과 2014년에 각각 발표했던 ‘국9조’와 달리 올해 새로 발표한 ‘신 국9조’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상장사들이 주주환원 노력을 통해 투자 가치를 제고하도록 강도 높게 압박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것이다.

지난 1월 국자위는 ‘중앙기업’의 핵심성과지표(KPI)에 시총을 포함했으며, 이어 3월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는 ‘상장기업 관리 감독 강화’를 통해 자사주 매입·소각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알리기도 했다. 기업들은 KPI 달성을 위해 자사주 매입-소각 정책을 적극 시행해야하는 상황에 높인 것이다.

이 결과 중국 본토 상장기업들은 올해 1분기 자사주 매입 규모를 전년 동기 대비 3.6배까지 늘렸다. 작년 전체 자사주 매입 규모의 절반이 넘는 물량을 올해 첫 분기에 소화한 셈이다. 홍콩 증시에서도 131개 상장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작년 연간 대비 3배가량 증가했다.

김경환 하나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자본시장 활성화와 밸류업 정책 효과 기대감이 주가에 계속 우호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정책 변화는 중화권 증시 대형지수는 물론 가계 자산효과 안정에도 일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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