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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NGO 발언대]어버이날, 경찰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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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경찰들이 찾아왔다. 낯선 방문객 모습에, 온몸에 긴장이 흘렀다. 어떤 일로 방문했냐고 물으니, 아동학대 신고 건으로 찾아왔다고 한다. 부모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오게 된 트랜스젠더 청소년의 동의를 얻어 아동학대 신고를 하였는데,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근처 파출소에서 바로 찾아온 것이었다.

경찰들은 뻘쭘하게 서서 띵동 사무실을 한참 둘러보았다. 이곳이 상담하는 곳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무실 주소를 공개하고 있지 않다 보니, 띵동이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경찰 한 분이 “밤에도 한 번 와 봤다”고 말한다. 야간시간대에 청소년 성소수자를 지원하고 있을 당시 부모의 실종신고로 띵동에 찾아온 경험이 있던 이들이었다.

경찰에게 띵동 소개 자료와 명함을 전하며 이곳에 어떤 청소년들이 찾아오고 있는지, 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였다. ‘성소수자’라는 단어에 움찔하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다. 차분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경찰 한 분이 면담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모에게 인정받기가 쉽지 않겠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성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이 아동학대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부모 입장에 서서 자녀의 성정체성이 원인 제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어버이날 경찰 방문이라니. 자신의 존엄을 버리고 집에서 탈출해야 했던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어버이날은 어떤 의미로 남았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거리 가판대나 꽃집의 카네이션을 보며 5월이 가정의달임을 물씬 느끼게 된다. 어느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단란하게 모여 함께 식사하거나 선물을 나눌 테지만, 자신의 성정체성을 이유로 가정으로부터 배제된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가정의달은 그 자체로 고통일 것이다. 기념하고 축하할 여유가 없다. 안전을 위해 대피해야 하고 긴급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폭력을 행한 부모님이 처벌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내담자에게 카네이션 꽃말에 담긴 사랑, 감사, 존경의 의미가 과연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동학대 정황을 파악하는 면담 시간은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부모의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는 말, 신체적 폭력 중심으로만 피해 사실을 확인하려는 태도, 전반적인 아동학대 피해 사실을 검열하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신고 이후의 절차를 건조하게 소개하는 것을 끝으로 경찰들은 되돌아갔다. 띵동은 되돌아갈 곳 없는 트랜스젠더 청소년에게 ‘오늘 밤은 어디서 잠을 청할 것인지’ 묻고, 성별로 구분된 쉼터가 아닌 머물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경찰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고, 띵동은 지원의 한계에 부딪혔으며, 내담자는 결국 친구 집에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깊은 한숨을 쉬게 되는 5월이다.

경향신문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정민석 청소년성소수자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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