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존재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의미를 되묻는다.[사진=펙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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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프랑스 서남부에서 발견된 라스코 동굴은 600개가 넘는 동물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그림들은 1만7000년 전에 그려졌는데 인간의 모습은 단 하나뿐이다. 벽화 속 인간의 머리는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선사시대 인간들이 다른 형상을 취함으로써 무언가를 기원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훗날 인간은 현실에서 불가능했던 변신을 창작물을 통해 구현했다. 사람들은 인간이 다른 형상으로 변하는 이야기를 무수히 남겨놓았다. 다른 존재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이 이야기들은 인간의 의미를 되돌아보거나 인간의 관점에서는 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그려냈다.
한국 장르문학에 국한하면, 수많은 주인공은 절대자적 위치에서 인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용'이 되기도 했다. 특히 서양의 용인 '드래곤'은 제법 인기 있는 소재였다. 관련 소설만 수십권이 나왔을 정도다.
다만, 지금은 이런 클리셰를 찾아보기 힘들다. 변신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해도 일시적이거나 인간과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가령, 새로 변해 강을 건너거나 늑대로 탈바꿈해 상대를 무는 식이다. '엘프'와 같은 유사 인류를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도 있지만, 생활상이나 문화 등을 적극적으로 묘사하지 않아 현실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인간 이외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작품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뱀이로소이다」 「붕어된 썰 품ㅋㅋㅋ」 「개미로 환생!」 「먹이사슬 최상위의 포식자」 같은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각 소설 주인공은 뱀, 붕어, 개미, 사마귀로 변하며, 완전히 다른 생태계와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이번에 소개할 '공포의거북이' 작가의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도 비슷한 유형의 작품으로, 통상 인간이 아닌 존재, 이를테면 '인외人外' 물로 분류할 수 있다.
작품은 주인공이 외계 괴물의 유생幼生으로 변하며 시작한다. 우주 SF 게임을 즐겨 했던 주인공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게임 내 종족으로 변한 거다. 주인공은 '에이모프'라는 종족이다. 에이모프는 유생일 때 매우 약하지만 희생자를 잡아먹으며 유전 정보를 습득해 강해진다는 설정이다.
이야기 초반은 우주를 이동 중인 화물선 내부에서 전개된다. 막 알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바퀴벌레와 거미를 잡아먹으며 기회를 노린다. 둥지를 만들고 각종 유전 정보를 얻어 성장해 마침내 화물선 내 인간을 노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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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매력은 주인공이 철저히 포식자로 활동한다는 거다. 주인공은 흉측한 형태의 외계 괴수이기에 인간을 비롯한 지성체와 양립할 수 없다. 여러 함정을 만들어 희생자를 사냥하는 모습은 호러 영화 속 괴물을 연상케 한다. 주인공은 희생자의 목소리를 빼앗아 병사들을 교란하거나 둥지를 만들어 적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진화하는 우주괴물이 되었다」는 괴물의 입장에서 인간세계를 바라본다. 괴물이긴 하지만, 또다른 인간세상의 괴물을 제거하는 과정은 뜻밖의 쾌감을 준다. '인외물'의 또다른 매력이다.
김상훈 더스쿠프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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