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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법사위 소위 문턱 넘은 판사정원법…중대기로 놓인 ‘신속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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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 “법관 증원 절박”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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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이 강조하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법관 정원 확대 방안이 중대 기로에 서 있다. 10년째 동결 상태인 법관 정원의 족쇄를 푸는 ‘각급 법원 판사정원법’이 21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이는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돌아가게 된다. 법조계는 국내 법관 정원이 10년째 그대로인 가운데 법관 고령화까지 가속화되며 ‘재판 지연’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8일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현재 판사 정원은 3214명, 현원은 3105명이다. 결원은 109명에 불과해 충분한 법관 신규 임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판사 증원을 위한 여유분 격인 정원 대비 결원율은 지난해 말 0.68%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01년만해도 15.72% 였던 결원율이 1% 아래까지 떨어진 것이다.

사법부의 최대 현안이었던 ‘각급 법원 판사정원법’은 국회 발의 500일만인 이달 7일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를 통과하며 간신히 법안 폐기 위기를 넘겼다. 이달 말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현행법은 ‘각급 법원 판사의 수는 3214명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2014년 법 개정 이후 10년째 그대로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3214명인 현행 판사 정원을 2023년부터 5년에 걸쳐 50명, 80명, 70명, 80명, 90명씩 총 3584명까지 순차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본래 개정안엔 2023년부터 2027년까지로 돼 있었지만 법안 처리 과정에서 해가 바뀌어 판사 증원의 시기만 2024년 7월 1일부터 50명 증원, 2025년 1월 1일부터 80명 증원 등으로 수정됐다.

● 늙어가는 사법부…30세 미만 신규법관 0.3%

법관 정원이 10년째 늘지 못한 사이 법관 고령화는 심화됐다. ‘법조일원화’로 2013년부터 법관 임용에 필요한 법조 경력이 3년에서 5년, 내년부터 7년으로 길어지며 법관 평균 연령이 40대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법관 고령화는 사건처리 효율성 저하로 이어져 ‘재판 지연’을 초래하게 된다.

지난해 기준 전체 법관 10명 중 7명이 40세 이상이었다. 2010년만 해도 40세 이상 법관은 절반에 못미치는 44.9%였으나 지난해 70.3%로 껑충 뛰었다. 2013년 30.4세던 신임 법관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 35.8세로 높아졌다. 전체 법관 평균 연령은 2010년 38.9세에서 지난해 44.6세로 올라갔다. 10년새 5살이 많아진 것이다. 신임 법관 연령 분포 변화도 뚜렷하다. 2012년엔 30세 미만이 54.3%, 40세 이상이 1.2%였으나, 지난해 30세 미만이 0.3%, 40세 이상은 10.7%로 바뀌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나이가 들면 판단능력이 원숙해지는 측면이 있지만 아무래도 젊은 판사들의 강점인 신속한 서면분석능력이나 체력 등을 따라갈 수 없어 업무 처리 효율이 떨어진다”며 “고령화로 인해 과거처럼 합의부에서 젊은 판사들이 배석판사로서 담당하던 업무들이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또한 내년부터 법관임용 최소법조경력이 5년에서 7년으로 상향되면 소위 ‘임용 절벽’ 현상 발생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올해까지는 법조경력 5년 이상만 되면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었지만 내년부터 이 요건이 7년 이상으로 높아지면서 법관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최소법조경력이 3년에서 5년으로 올라가 임용후보군의 신규풀이 없던 2018년에도 신규법관을 36명밖에 선발하지 못했다. 2029년부터 법조 경력 10년으로 늘어나면 평균 40세에 이르러야 신임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게 된다.

● “재판지연 사태 악화는 국민 피해로 돌아가…신속한 재판 권리 확보돼야”

법원은 방대한 기록에 복잡한 쟁점이 많은 사건이 증가하고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면서 판사를 늘리지 않고는 국민이 바라는 신속한 재판 구현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조 대법원장 취임 후 법원장이 장기 미제 사건 재판을 직접 맡고, 사무분담 기간을 늘리는 등 재판 지연을 위한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10년째 묶여 있는 판사 정원이 늘어나지 않고선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게 일선 판사들의 목소리다.

실제 고난이도·고분쟁성 사건 증가로 법관의 업무 부담이 크게 늘며 재판 지연을 가중시켰다. 민사 중액 이상 사건의 지난해 접수 건수는 2017년에 비해 약 16%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민사합의 사건 처리 기간은 2017년에 비해 61.4% 늘었다. 민‧형사 미제사건 수(소액 제외)역시 2017년에 비해 약 28.6% 증가했다.

사법제도 변화로 인한 법관 업무 부담 문제도 있다. 검찰의 피의자 신문조서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피고인이 조서를 부인하면 증거 능력이 없어져 재판과정에서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양측 공방이 길어져 공판 횟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이달 말 21대 국회 임기 만료 전 본회의에서 판사정원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21대 국회 임기 내 법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기획재정부와 직제협의부터 법안 제출까지 모든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해 물리적으로 올해 말까지 법 개정이 어려워진다”며 “이 경우 재판 지연 악화로 인한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고 했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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