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1009회… 강서구청장 선거 후 줄어
'통합' 찾기 어려워 … '협치' '평등'은 4회뿐
"거대 담론 지나친 반복, '민생'은 진정성 의심"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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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32회), 평화(12회), 연대(6회), 민주주의(5회), 성장(5회), 과학(5회)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10일 취임식에서 3,300자 분량의 취임 연설을 하면서 강조한 단어다. 32차례 언급한 '자유'가 핵심 가치였고, '평화'도 '자유와 상승작용'이라는 틀 안에서 강조했다. 실현 수단은 자유를 기반으로 한 '연대'였다. 양극화 등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선 빠른 '성장'을 강조했고, 반지성주의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 요인으로 지목했다. '과학'을 성장과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다리로 소개했다. 자유로 대표되는 보수 가치 및 국제사회와 연대를 토대로 국가 방향성을 새로 잡겠다는 게 5년간 국정운영의 큰 밑그림이었다.
취임 2년을 앞둔 7일 그간 윤 대통령의 공개 발언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역시 '자유'였다. 다만 취임 1년 6개월 시점부터 급격히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것은 '민생'이었다. 보수 가치에 매몰돼 중도층 지지 이탈이 이어지고 국정운영 지지율이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자 방향을 틀기 시작한 것이다.
23만 개 단어 중 '자유' 1009개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발언 중 주요 단어. 그래픽=강준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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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윤 대통령 취임사부터 지난달 30일 한·앙골라 정상회담 일정까지 언론에 공개된 윤 대통령 발언 520건을 전수분석했다. 각종 연설과 국무회의, 업무보고, 정상회담, 민생토론회 모두·마무리발언 등을 취합한 것으로 총 101만6,219자, 단어로는 23만8,578개에 달한다. 분석 대상엔 일정 명칭과 윤 대통령 발언이 포함됐고, 시장 방문을 비롯해 즉흥적인 단순 현장 발언만 있는 일정은 제외했다.
'우리' '여러분' '국민' 등 일반적으로 대통령 연설문에 사용되는 단어들을 제외하면 윤 대통령이 2년간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협력(1,257회)이었다. 다음으로 경제(1,196회), 자유(1,009회), 지원(975회), 산업(960회), 기업(819회), 미래(761회), 지역(701회), 기술(636회), 국제(626회) 등이다. 최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대부분 외교 및 정부 업무 관련 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자유'가 셋째 순위를 유지하면서 윤 정부 핵심 가치라는 점을 보여줬다. 나머지 주요 키워드는 성장(463회), 과학(408회), 평화(405회), 연대(316회), 민주주의(139회·'자유민주주의' 포함 시 306회) 순이었다.
외교·정책→이념→민생으로 관심사 변화
시기별 주요 단어. 그래픽=강준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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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한 것은 시기별로 차이를 보인다. 취임식 때부터 2022년 12월까지 0.73%, 2022년 12월 27일부터 지난해 6월까지 0.94%로 늘었고, 지난해 6월 28일부터 10월 10일까지 1.48%로 급격히 증가하다 이후 0.35%로 급락한다.
자유에 대한 사용 빈도가 급증한 시기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 등 윤 정부가 핵심 성과로 내세우는 외교 일정이 있었던 때다.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기념식인 지난해 6월 28일 처음으로 '반국가세력'이라는 발언도 했다. 외교 일정과 '이념 공세'가 맞물리면서 사용 빈도가 급증한 셈이다. 비슷한 시기 평화(116회)도 자주 언급했지만, 외교 일정 중 나온 발언이거나 전 정부를 겨냥한 '가짜 평화'(5회) 혹은 이와 대비되는 '진정한 평화'(3회) 같은 형식으로 쓰인 경우였다.
반면 지난해 10월 11일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한 직후부터는 '자유'가 최상위권에서 밀려나고 산업(457회), 의료(419회), 지원(409회), 민생(279회), 현장(186회) 등의 사용 비중이 급증했다. 4·10 총선을 앞두고 연일 민생토론회 일정을 소화하면서 각종 민생경제 관련 지원책을 쏟아낸 결과다. '의료'와 의사(219회) 등 의료개혁 드라이브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지지율 높을 때나 가능한 담론을"… '통합' 태부족 아쉬움
시기적으로 보면, 윤 대통령은 취임 초반 3대 개혁부터 한미·한일 외교, '자유' 이념 강조까지 쉼 없이 거대담론을 이어왔다. 30%대 지지율이 고착화되자 결국 '민생'을 꺼내들었지만, 이 역시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성을 평가받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방향성은 잘 잡았지만, 공약을 남발하는 것으로 국민을 설득하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방향을 틀긴 했지만, 집권 초 보수 이념에 매몰되면서 고립을 자초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취임사에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은 '통합'이나 '협치'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106회 등장한 통합은 '첨단전력 통합' '유보통합' 등 국민 통합과는 무관했다. '협치'도 단 4차례 등장했는데 그마저도 국민통합위 행사에서 "협치, 협치 하는데,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그러는데 뒤로 가겠다고 그러면 그거 안 된다"고 언급한 것이다. '평등'도 4차례에 불과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는 "이준석·유승민·안철수·나경원을 잇달아 밀어내며 지지 세력이 좁아졌는데, 이후 오히려 보수층을 의식한 듯 치우치기 시작하면서 중도층에 다가가는 데엔 실패한 지난 2년이었다"고 평가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박선윤 인턴 기자 bsy5684@naver.com
이민석 인턴 기자 minseok10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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