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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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주말 활동이 뭐냐고 묻는다면 가장 대표적으로 두 가지를 들어볼 수 있겠다. 등산과 시위.
시위하기 위해 거리와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2주 전 콜롬비아에서도 현 대통령인 구스타보 페트로에 반대하는 시위와 행진이 열렸고 그다음 주말에는 구스타보 페트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
그러나 한국의 시위는 다른 나라의 시위와 크게 다른 점이 있는데 그건 ‘매우 전문적’이라는 점이다.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처럼 단순히 재치 있는 플래카드를 손에 들고 구호를 외치거나 공중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행진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한국은 시위라는 행위를 한두 단계 더 발전시켰다.
시위대가 가장 많이 모이는 광화문에는 주말마다 삼면에 대형 스크린이 달린 무대와 객석, 따뜻한 주전자와 간식을 얻을 수 있는 텐트, 건설 크레인만큼이나 높은 스피커 타워가 설치된다. 이 장면을 처음 목격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종종 그곳에서 축제나 콘서트가 열린다고 착각하기 쉽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인은 보통 이웃 간의 소음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내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주저 없이 경찰에 신고하고 인터넷에서는 발걸음 소리를 차단하는 특수 슬리퍼를 판매한다. 위층 이웃이 담배 연기로 인해 불편을 겪으면 안 되기에 자기 집에서 담배도 피울 수 없다. 가끔 이른 새벽 청국장 냄새가 환풍구를 타고 들어오면 그 냄새에 괴로워하는 이웃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말이다.
다시 소음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소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매 주말 나오는 시위 소음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데시벨을 훨씬 초과한다. 연설자들의 불같은 외침이 수백 m 너머에서도 들린다. 과장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시위권을 침해하는 일이 될 수 있어서 경찰에 항의조차 할 수 없다.
시위는 자신이 무엇에 반대하는지 알리고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데 더 이상 무엇에 반대하는지 알리고 설득하는 건 중요한 것 같지 않다. 그보다 ‘항의’하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해진 것 같다. 그게 그들의 시위 스타일이다. 분명 등산복처럼 시위를 위한 전문 복장도 있을 것 같다. 이들을 위해 전문적인 코칭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시위 장소 도착, 점심 식사, 1차 술자리, 성공적인 시위를 축하하는 2차 술자리, 그리고 귀가까지 패키지로 제공하는 회사와 전문 시위를 위해 필요한 모든 물품을 대여하는 회사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처럼 전문적일 수 없다.
이들 시위는 사교클럽이나 종교 커뮤니티 같은 역할도 한다. 단, 사색을 위한 고독이나 건강한 지루함을 원하는 신자들을 위한 커뮤니티가 아니라 모두 함께 행동하며 친분을 쌓는 그런 커뮤니티다.
의사들이 시위하고 환자 단체도 시위한다. 동물 권리 활동가들이 시위하고 개 사육장 주인도 시위를 한다. 근무 일수 연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시위하고 주 6일 근무를 원하는 사람들이 시위하며, 가능하다면 주 7일 근무를 원하는 사람도 시위한다. 언제나 우리 모두에게는 주장하고픈 주제와 대상이 있다. 나도 있다. 나는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향해 시위하고 싶다. 왜냐면 그들에게 내려진 처분은 마치 자기 몫 이상의 케이크 한 조각을 더 먹으려는 아이의 손을 살짝 때리는 정도에 가까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요점은 이렇게 수많은 시위 속에서 더 이상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분간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조차 이런 대한민국에 너무도 익숙해져서 어떤 시위든 할 수 없는 환경의 나라에서는 절대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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