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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高유가 1분기 호실적에도…‘횡재세’ 트라우마에 못 웃는 정유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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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 5일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정유업계는 고유가 영향으로 올 1분기 호실적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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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업계가 국제유가 상승과 정제마진 개선 영향으로 올 1분기 호실적을 기록하고도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횡재세 도입’을 거론해서다. 업계에서는 “적자를 벗어나자마자 타깃이 됐다”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7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올 1분기 석유사업 부문의 영업이익은 59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5.1% 상승했다. HD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은 3052억원으로 같은 기간 17.8% 늘었다. 에쓰오일의 영업이익은 4541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9% 감소했으나, 직전 분기(-564억원)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오는 9일 실적을 발표하는 GS칼텍스도 영업이익 개선이 예상된다.

중동 분쟁 등으로 국제유가가 오른 영향이 컸다. 두바이유 월평균 가격은 지난해 12월 배럴당 77.33달러에서 지난 3월 84.18달러로 뛰었다.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등 원료비를 뺀 정제마진도 올랐다. 업계에서는 배럴당 4~5달러를 손익 기준선으로 보는데, 올 1분기 정제마진은 배럴당 7달러가 넘었다. 유가 상승에 따라 정유사들이 보유한 재고의 가치가 높아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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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유가 상승세가 이어지며 정치권에선 횡재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횡재세는 고유가·고금리 등 ‘행운’으로 이익을 얻은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2022년 정유업계가 조 단위의 기록적인 영업이익을 냈을 때 횡재세 논의에 불이 붙었고, 이후 국제유가가 오를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정유사가 별다른 노력 없이 유가 상승으로 추가 이익을 봤으니,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논리다. 유럽연합(EU)은 에너지 기업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등한 에너지 가격으로 막대한 이익을 누렸다며 2022년 횡재세를 도입했다.

정유업계는 22대 국회에서도 횡재세 법안이 발의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고유가 시대에 국민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며 횡재세를 직접 언급했다.

다만 횡재세에 대한 반대 논리도 탄탄하다. 원유를 수입해 파는 국내 정유사들이 보는 유가 상승 혜택은 제한적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외국 정유사는 원유를 직접 채굴하지만, 국내 정유사는 원유를 수입해 정제 후 판매해 수익 구조가 다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정유업계의 2007~2023년 정유 부문 평균 영업이익률은 1.8%로, 같은 기간 제조업 평균(6.5%)보다 낮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현행 법인세는 4단계 누진세율 체계로, 횡재세 추가 부과시 이중과세가 될 수 있다”며 “에너지 전환 흐름에 따라 정유사들이 지속가능항공유(SAF) 등 친환경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데, 이럴 때 횡재세를 거두면 어떻게 산업을 이어갈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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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차량에 주유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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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업계는 대규모 적자가 났을 땐 손실 보전이 없는데, 수익을 볼 때만 징벌적 과세를 하는 것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한다. 정유 산업은 국제 유가 사이클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앞으로 유가가 오를 때마다 정치권의 눈치를 봐야 하느냐는 푸념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영업이익에 포함되는 재고평가이익의 경우 현금흐름이 발생하지 않는 장부상 이익이고, 유가 하락기에는 이익이 다시 줄어든다”며 “정유사의 적자를 세금으로 보전해줄 것도 아니면서 횡재세를 도입하자는 건 영업 열심히 하지 말고 적당한 수준에서만 수익 내라는 의미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최근 원·달러 환율도 많이 올라 원유를 수입하는 정유사들은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을 많이 보고 있다”며 “환차손 등 금융 비용이 반영되지 않는 영업이익은 실제 기업이 남긴 순이익과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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