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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과학기술이 미래다]〈123〉88서울올림픽 전산시스템, “무오류 장외 금메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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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9월 17일 제24회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 관중의 환호에 두 팔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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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가 올림픽전산운영협의회를 발족했다.

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과 운영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는 기구였다. 의장직은 오명 체신부 차관이 맡았다. 위원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시스템공학연구소(SERI) 소장,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전산실장,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올림픽사업단장, 한국데이터통신(현 LG유플러스) 사장, 쌍용컴퓨터(현 쌍용정보통신) 사장, 한국전산(현 교보DTS) 사장, 조직위원회 기술전문위원장 등이었다.

그동안 올림픽전산시스템 개발은 SERI가 주관기관이었다. 조직위원회는 86아시안게임이 끝난 후인 1986년 10월 SERI와의 전산시스템 개발 주관기관을 해지했다. 조직위 측은 당시 2년 앞으로 다가온 88서울올림픽 전산시스템 개발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당시 조직위 관계자의 말. “SERI가 전산시스템 개발 주관 기관으로 역할하는 것에 대해 다른 개발 업체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습니다. 왜 같은 전산시스템 개발 기관인데 통제를 받아야 하느냐는 불만이었습니다. 86아시안게임이 끝나자 SERI와의 주관기관을 해지하고 그 대신 통신과 전산 주관 부처인 체신부 차관이 위원장인 전산운영협의회를 발족한 것입니다.”

협의회는 서울올림픽 전산시스템 추진 실적과 향후 방향을 점검하고 미비점을 개선해 나갔다. 협의회는 1988년 6월 22일 회의를 열고 서울올림픽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이해욱 체신부 차관 주재로 열린 회의에는 박성득 체신부 통신정책국장, 김영택 서울대 교수, 성기수 SERI 소장, 전광로 한국전산 사장, 노중호 쌍용컴퓨터 전무, 성승희 한국데이터통신 올림픽사업단장, 김노철 SLOOC 기술국장, 김호권 안기부 5처장, 정결진 한국전기통신공사 종합계획국장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서는 기관별 추진 상황과 문제점 등을 논의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했다.

체신부는 올림픽 준비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체신부는 내부에 올림픽 지원실무위원회(위원장 기획관리실장)를 두고 그 아래 86·88대회 통신지원상황실을 설치, 운영했다.

체신부는 1988년 5월부터 장관 주재로 매월 한 차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88서울올림픽 통신·전산지원 업무보고회를 열고 미비점은 즉시 보완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범민족올림픽추진중앙협의회를 구성, '올림픽손님 맞이'에 총력을 기울였다.

정보기술(IT) 분야 자원봉사자들의 활동도 활발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사장(현 회장)도 자원봉사에 나섰다. 조현정 사장은 1988년 초 조직위를 직접 찾아갔다. “제가 어떤 일을 도와드릴까요?”

조현정 사장을 알아본 조직위 관계자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예산이 부족해 수작업으로 하려 한 성화봉송 운영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조현정 회장의 말. “1988년 5월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성화봉송 프로그램 개발을 끝냈습니다. 개발비만 3000만원이 들어갔어요. 컴퓨터를 두드리면 현재 성화가 어디쯤 가고, 주자는 누구이며, 그 지역에서는 어떤 행사를 하고 있는지를 다 알 수 있습니다. 성화봉송 프로그램은 조직위에 무상으로 기부했습니다.”

서울올림픽을 통해 세계에 한국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한껏 자랑한 게 도핑 기술이다.

1984년 6월 초 어느 날. 이정오 과학기술처 장관이 권원기 과학기술심의실장을 급히 찾았다.

권원기 전 과학기술처 차관의 회고. “노태우 당시 서울올림조직위원장이 이(정오) 장관에게 전화를 했는데 '도핑테스트, 즉 약물검사를 우리가 할 수 있는지… 할 수 없다면 외국에 용역을 맡겨야 한다'고 했다는 겁니다. 이 장관께서 우리 기술로 도핑검사가 가능한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조직위는 국내에 전문 인력도 없고 지금 준비해도 시기가 늦다는 내부 판단을 하고 캐나다와 독일에 용역을 의뢰한 상태였다.

“자체 개발이냐 외국 용역이냐.” 과학기술처는 6월 22일부터 7월 2일까지 권원기 실장을 단장으로 국내 과학자들로 조사단을 꾸리고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도핑 과정과 내용 등을 조사했다.

과학기술처는 조사단 결과를 토대로 자체 개발 방침을 정하고 7월 하순 88올림픽도핑추진계획서를 작성, 노태우 위원장의 서명을 받았다. 이 사업은 과학기술처가 주관키로 했다.

조직위는 1985년 1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도핑사업 추진에 관한 협약을 체결했다.

사료 채취와 수송을 조직위, 도핑에 관한 연구개발(R&D)과 인력양성·사료분석 등을 KAIST가 각각 담당키로 했다. KAIST는 기술 개발에 나서서 1987년 8월 21일 국내 처음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약물검사 공인을 획득했다.

1988년 1월 초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와 KAIST 도핑콘트롤센터는 마필 약물분석 용역계약을 체결했다. 7월 6일 과학기술처는 올림픽약물검사 대책을 88올림픽실무위원회에 보고했다.

1988년 9월 17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올림픽주경기장.

“제24회 근대올림픽대회를 경축하면서 서울올림픽대회 개회를 선언합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서울올림픽대회 개막을 선언했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해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 박세직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 등 내외 귀빈과 8만여 관중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식이 열렸다.

서울올림픽에는 올림픽 사상 가장 많은 160개국에서 1만40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했다. 50억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막식 시작 2시간여 후 갑자기 운동장에 정적이 흘렀다.

어디선가 “삐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운동장 한 모서리에서 흰 모자에 흰 티셔츠와 흰 반바지를 입은 소년이 굴렁쇠를 굴리며 나타났다. 소년은 운동장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운동장 한가운데에 서더니 굴렁쇠를 어깨에 메고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세계인의 가슴에 감동을 안긴 88호돌이 '굴렁쇠 소년'이다.

이 아이디어는 올림픽 개·폐막식 총괄 기획을 담당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냈다.

이어령 전 장관의 생전 말. “텅 빈 운동장에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 옷을 입은 꼬마가 굴렁쇠를 굴리며 지나가는 것은 움직이는 공백입니다. '전쟁고아' '분단국'이라는 한국 이미지를 쇄신하고 생명을 육성하며 서양과 다른 공백의 미를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대회 성패를 가를 핵심인 경기 전산시스템 운영은 완벽 그 자체였다.

경기운영시스템(GIONS)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분산처리방식을 채택해 24개 경기장의 독립 처리가 가능했다. 5분 안에 27개 종목의 경기 결과를 실시간 제공, 외국 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종합정보망시스템(WINS)은 전자우편과 일반정보, 경기정보 조회, 공중정보통신망을 통해 세계 각국이 이를 이용토록 했다. 대회관리시스템(SOMS)은 인력과 입장권 관리, 선수촌 관리, 기자촌 관리 등을 처리했다. 대회지원시스템(SOSS)은 숙박과 수송관리 등 정보를 제공했다.

오명 전 과학기술 부총리의 회고. “서울올림픽에서는 단 한 번의 에러도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무결점 시스템, 노 에러 도전에 성공한 것이다. 노 에러를 위해 우리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경기장마다 서버를 2대씩 설치하는 철저한 백업시스템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 전산시스템은 올림픽 기간 내 단 한 번도 다운되지 않았다.”(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

9월 24일 남자육상 100m 경기에서 육상 황제로 불리는 벤 존슨이 9.79초로 세계신기록을 기록, 서울올림픽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9월 27일 오전 IOC는 존슨이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나 금메달을 박탈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밝혀낸 게 바로 KAIST 도핑콘트롤센터였다. 한국 과학기술을 세계에 알린 쾌거였다.

10월 2일 오후 7시 서울올림픽대회는 잠실 주경기장에서 폐막식을 갖고 16일 동안 펼쳐진 열전의 막을 내렸다. 한국은 사상 최초로 종합 4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국내외 언론들은 하나같이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전산시스템은 무오류의 기적을 이룩한 과학올림픽”이라면서 “장외 금메달감”이라고 극찬했다.

올림픽 성화는 꺼졌지만 그 시작과 결과는 창대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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