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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취재썰]'의대 증원 회의록' 두고 커진 갈등…28차례 회의 뜯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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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양측 합의" VS 의료계 "직무유기"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증원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진행한 각종 회의체의 기록 존재 여부를 놓고 의료계와의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의대 증원이 졸속 행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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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합의로 회의록 안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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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과 관련해 진행된 주요 회의체는 의료현안협의체입니다. 2020년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체결한 '9·4 의정합의'에 따라 지난해 1월 30일부터 올해 2월 6일까지 총 28차례 비공개로 열렸습니다. 지난달 1일 대국민 담화를 연 윤석열 대통령이 2천 명 증원은 정부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라고 해명하며 언급한 근거도 이 협의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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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27번 배포된 의료현안협의체 보도참고자료. 28차 회의는 5분 만에 파행됐다. 〈촬영=방극철 영상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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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록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복지부가 "없다"라고 선을 그으며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대한의사협회 임현택 신임 회장은 "초등학교 학급 회의도 촘촘히 기록을 남긴다"라며 "100년 의료 계획을 세우는 회의를 28차례 진행하며 남은 게 보도자료밖에 없다는 건 어떤 국민도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에 복지부는 "의협 전 집행부와의 협의를 통해 결정된 사안"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당시 협의체에 참여한 복지부 관계자는 "상호 신뢰의 차원으로 별도의 회의록을 남기지 않고, 회의마다 합의하고 자료를 냈고 백브리핑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매번 회의 결과를 공개했으니 그 자료가 회의록을 대신한 셈이라는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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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차례 자료 중 '의대 정원' 언급은 다섯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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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매 회의가 끝나면 현장에 있던 기자들을 대상으로 양측이 백브리핑(비공식 설명회)을 진행한 건 사실입니다. 협의체에 참여한 의협 측 관계자들도 양측의 합의로 회의록을 만들지 않았으며 백브리핑으로 대신했던 점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협의체에서 구체적으로 의대 증원을 논의한 적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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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안협의체 직후 열린 백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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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같은 의료현안협의체를 두고 정부는 의대 증원을 충분히 논의했다는 근거로 제시하고, 의료계는 정부가 독단적인 결정을 하기 전 필요한 구색을 갖춘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의협의 증원 항의로 파행됐던 제28차 회의를 제외하고 27차례 회의 당시 배포됐던 보도참고자료를 모두 살펴봤습니다. 각 1~2쪽짜리 짧은 분량으로 배포돼 구체적인 논의 내용 및 참석자들의 발언은 알 수 없고 대략적인 회의 안건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복지부는 제4차(지난해 3월 22일), 5차(지난해 3월 30일), 8차(지난해 5월 4일) 회의 등 10차례 이상 의료인력 확충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자료에 '의대 정원'이 언급된 건 다섯 번입니다. 이 중 양측이 논의했다고 확인할 수 있는 건 네 번입니다. 먼저 지난해 6월 8일 열린 제10차 회의입니다. 양측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한 의사 인력 확충방안을 논의'하고 '정원 재조정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고 돼 있습니다. 그다음은 다섯 달 뒤인 지난해 11월 15일 제17차 회의에서 이어집니다. 당시 배포된 보도참고자료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과학적·객관적 데이터에 입각한 논의와 실질적인 필수·지역의료 유입방안이 선행되면, 의대 정원 논의를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라고 돼 있습니다. 이어 19차, 25차 회의에서도 비슷한 논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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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차 회의 당시 배포된 보도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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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지난해 11월 22일 열린 제18차 회의에선 양측이 의대 정원 확대를 두고 갈등한 정황이 담겼습니다. 당시 배포된 자료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보건복지부가 하루 전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 수요조사에 항의하고 퇴장했습니다. 또 정부가 신중한 검토 없이 의대 증원 정책을 강행하면 강경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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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차 회의 당시 배포된 보도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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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의료현안협의체에서는 2023년 1월 이후 무려 19차례나 의사 증원 방안을 논의했다"라고 했습니다. 19번의 근거를 묻는 질문에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논의 시도를 한 것 자체가 다 포함이 된 수치"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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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내부 보고용 기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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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안협의체가 진행되는 1년 내내 의사 단체 측은 줄곧 '증원을 바로 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회의 직후 백브리핑에서도 같은 입장이었고, 회의 시작 전 공개됐던 모두발언에서도 정부와 팽팽한 기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15일 열린 17차 회의에서 양동호 당시 대한의사협회 협상단장은 "무너져가는 필수지역의료 살리기는 의대 정원 확대 같은 불확실하고 지엽적인 대책으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반면 복지부 측 정경실 당시 보건의료정책관은 "필수, 응급 의사가 없어서 응급실을 전전하고, 소아과 오픈런이 벌어지는 현실은 괜찮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라고 맞받았습니다.

증원할 수 없다는 의사 단체와 증원해야 한다는 정부는 끝내 의료현안협의체에선 합의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지난 2월 6일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고 2025학년도 대학 입시 의대 입학정원을 2천 명 늘리기로 결정, 발표했습니다. 보정심은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른 법정 위원회로, 환자단체 등 수요자 대표, 의협 등 공급자 대표, 그 외 전문가와 정부 위원으로 구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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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안협의체 비공개 회의에 앞서 진행된 모두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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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은 양자 협의체인 의료현안협의체가 아닌 보정심에서 증원 규모가 갑자기 결정된 건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비판해왔습니다. 의협 관계자는 오늘 "의협은 의료현안협의체 회의 내용을 내부 보고용으로 기록했고 갖고 있다"라며 "해당 기록에도 양측이 증원 숫자를 논의한 적은 없으며 필요하면 이 자료를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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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 막바지 '법적 대응'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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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법적 의무가 있는 보정심 회의록은 존재하기에 문제없다는 입장입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해당 회의록을 법원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앞서 법원은 의료계가 의대 증원·배분 결정 효력을 중지해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오는 10일까지 2천 명 증원의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오늘 성명을 통해 "뒤늦게 일부 회의의 녹취록을 짜깁기하여 억지로 회의록을 만들어 내는 시도"라고 주장하며 "이제라도 절차적 위법성을 인정하고 증원을 철회하라"라고 요구했습니다. 법무법인 찬종의 이병철 변호사와 사직 전공의 정근영 씨는 내일 오후 2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이주호 교육부 장관 등을 직무유기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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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공수처에 고발하겠다고 밝힌 이병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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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일정대로라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달 말까지 '2025학년도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해 각 대학에 통보하고, 이후 각 대학은 수시모집 요강을 발표하며 의대 증원은 사실상 확정됩니다.

하지만 재판부가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 행정법원에 있는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정부는 의대 증원 절차를 멈춰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판결이 날 때까지 대교협은 시행 계획을 승인하지 못하고, 올해 기존 모집인원인 3058명을 유지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이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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