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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의대 증원 당장 멈춰라” 수능 앞둔 고3 소송 자격 논란[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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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지난 3월 서울의 한 의학계열 입시 전문 학원 광고 현수막 모습.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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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의 법치락뒤치락검사의 공격, 변호인의 항변. 원고의 주장, 피고의 반격. 엎치락뒤치락 생동감 넘치는 법정의 풍경을 전합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수시가 8월 정도에 시작되는데 4~5개월을 앞두고 중요한 대입 전형을 변경한다? (의대 증원이) 고등교육법에 위배된다는건 당연합니다.” (수험생·의대생·전공의 의대교수측)

“응시생(수험생)은 오히려 입학 가능성이 넓어집니다. (의대) 재학생도 아닌 지위에서 주장하는 것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정부측)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업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25학년도 대입에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 중입니다. 당장 올해 수능·수시를 치르는 수험생들이 영향을 받습니다.

이를 두고 최근 법원에서 중요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일단 정지’하라며 수험생, 의대생 등이 낸 소송에서 재판부가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법원 판단에 따라서 올해 의대 증원이 ‘올스톱’ 될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1심 무더기 각하…의문 표한 2심 재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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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법률 대리인 이병철 변호사가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에서 협의회가 보건복지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취소소송·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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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부장 구회근)가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사건 심리를 열었습니다. 소송을 제기한 이들(원고)은 수험생, 의대생, 전공의, 의대 교수 등 18명입니다. 이들은 우선 의대 증원 정책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걸었고 이와 함께 일단 정책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소송도 제기했습니다. 취소 소송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집행정지 관련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1심을 진행한 서울행정법원은 집행정지 소송에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재판을 종료한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해 ‘자격 미달’이라는 뜻입니다. 행정 처분 취소소송 처분 당사자가 제기할 수 있지만, 제3자일지라도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침해 당했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은 처분의 직접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이고 ▷의대 증원으로 인해 침해당하는 법률적인 이익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의대 정원 집행정지 1심 결정문(24.04.03)“이 사건 처분은 교육부 장관이 대학의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정하는 일련의 단계적 행위로 직접 상대방은 의과대학을 보유한 각 대학의 장이고, 신청인들은 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에 불과하다.” “신청인들이 주장하는 법률상 이익은 (중략)▷양질의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거나 ▷안정적인 정보를 제공받아 시험을 준비할 수 있거나 (중략) 등은 사건 처분에 따른 간접적·사실적·경제적 이익에 불과하다.”“신청인들의 주장과 제출된 소명자료를 살펴보더라도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 즉 고등교육법령 등 관련 법규에 의해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있다고 볼 수 없다.” 결과적으로 1심 재판부는 의대 증원 정책에 소송을 걸 수 있는 당사자는 ‘총장’ 말고는 없다고 봤습니다. 이는 정부측의 일관된 논리이기도 합니다.

이날 원고측은 특히 ‘수험생’들의 원고 적격성을 면밀히 살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당장 2025학년도부터 증원하겠다는 정책 기조로, 내년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 중인 수험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위해서는 이미 발표가 끝난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수정해야 합니다. 고등교육법은 입학년도 개시 1년 10개월 이전에 시행계획을 공표하도록 정했습니다. 2025학년도 입학 정원, 대입 전형, 전형별 반영 요소 등은 이미 지난해 4월 공표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으로 각 대학은 시행계획을 바꿔야 합니다. 정부는 교육부 장관 필요에 따라 시행계획을 수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수능 6개월, 수시 원서 접수 4~5개월을 앞두고도 의대 정원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양측의 의견을 들은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조금 다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각 대학의 총장들은 의대 교수들의 반발과 별개로 증원 신청을 했습니다. 사실상 각 대학 총장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 가능성이 없는데요, 그렇다면 정부 정책이 통제받을 가능성이 0%인지 되물었습니다. 원고와 정부측이 각각 의견을 발표한 뒤 재판부는 여러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의대 증원 집행정지 2심 심문(서울고법 행정7부 24.04.31)재판부 “(정부측은) 처분 직접 상대방은 총장이라고 보는데요. 대학 총장이 다툴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사건) 원고들 모두 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국가가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경우에 다툴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국가의 결정을 사법적으로 심사·통제할 수 없다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원고로 의대생, 교수, 전공의, 수험생이 있습니다. 피고(정부)가 생각하기에 의사협회라던지 다른 원고 적격이 있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지 설명해주십시오. 판단에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피고 주장에 따르면 10만명이 한꺼번에 늘어나도 (침해되는) 법률상 이익이 없다는 뜻인가요?”

재판부는 “모든 행정 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며 “최근 판례를 보면 제3자 요건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처분 당사자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면 행정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개인·집단의 범위는 그만큼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를, 어디까지 구제해줄 것인가를 두고 재판부는 언제나 고민합니다.

제3자 원고 적격성 다시 도마 위행정소송에서 ‘제3자 원고 적격성’에 대한 다툼은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정부 정책이 처분 당사자가 아닌 다른 개인, 집단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2009년 조선대학교가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남대 로스쿨 인가를 내준 것은 위법하다”며 제기한 소송이 있습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인가한 대상은 전남대였기 때문에 조선대는 엄밀히 제3자입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양측 대학이 경쟁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취소 소송을 제기할 ‘자격’은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소송은 조선대 패소로 끝났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이기는 하지만 유사 사례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서남대 의대 사건’입니다. 2017년 서남대 폐교가 결정되자 교육부는 서남대 의대생들을 전북대 의예과·의학과로 특별편입학 수 있게 길을 열어줬습니다. 전북대 의대생들은 ▷교육부가 정원 제한없이 서남대 의대생 편입학을 허가한 것 ▷전북대 총장이 임상실습 관련 시설 개선 등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전북대 의대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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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을 놓고 정부와 의료계 간의 갈등이 이어지면서 서울 아산병원 교수들이 하루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한 가운데 3일 서울 아산병원에서 교수들이 의대 증원 및 휴진 관련 피켓을 들고 있다. 이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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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은 전북대 의대생들이 기본권을 침해 당할 가능성이 있는지, 즉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학생 수가 많아져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해지거나 자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을 확률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으나 기회 자체를 실질적으로 형해화 하는 정도로 보기는 어렵다”며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같은 결정을 두고 원고측과 정부측은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놨습니다. 원고측은 “형해화 될 수 있는 정도에 이른다면 권리 침해로 볼 수 있다는 취지”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측은 “(해당 결정은) 자신의 교육 환경이 열악해질 수 있음을 이유로 타인의 교육 참여 기회를 제한하거나 증원을 막을 수 없다는 취지”라며 “(의대 증원은) 교육 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원고 적격성을 문제 삼아 1심에서 승승장구를 이어왔습니다. 전국 33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 전공의협회 등 유사 재판이 줄줄이 각하 처리됐습니다. 이번 재판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재판이 마무리 돼갈 즈음 정부측이 한 번 더 원고 적격성에 대한 의견을 피력합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것처럼 보이네요.

의대 증원 집행정지 2심 심문(서울고법 행정7부 24.04.31)정부측 원고 적격에 대해 한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처분성을 인정할 경우 교육 여건을 변경하고 신청하는 주체는 대학입니다. 대학이라는 처분 당사자가 있는데 대학이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대학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대학에 유리한지, 불리한지에 대해 제3자에게 원고 적격을 인정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재판부 저희가 증원 배정을 받지 않은 대학은 다투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만약 감원을 하는 경우나 대학이 증원 신청을 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총장이 다툴 수 있겠죠. 그런데 국가가 증원을 한다고 하면 총장이 다툴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증원 처분에 대해 아무도 못 다투게 되는 것인지에 포인트를 둔 질문입니다. 재판부는 5월 셋째주 안에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출구 없는 갈등, 법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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