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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공탁금 내고 ‘집유’ 받았던 아동 성착취범들, 결국 감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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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례 범죄 32세 남성 징역 4년…5명 실형

강제성 없고 초범이어도 “감형 사유 안 돼”

시민단체 “20년 구형엔 못미쳐…엄벌 필요”

지난해 8월, 강원도 강릉에서 한국사회를 분노하게 만든 법원 판결이 나왔다. 초등생 2명을 유인해 수차례 간음한 20∼40대 남성 6명이 모두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당시 재판부가 솜털처럼 가벼운 처벌을 내린 이유는 강제성이 없고 피해자 중 한 명과 합의했으며, 다른 피해자에 대해 공탁을 했다는 것이었다. 피해자 가족은 반발했고, 검찰은 항소했다. 시민단체들은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결국 2심에서 판결이 바뀌었다. 성착취범들은 줄줄이 감옥에 가게 됐다.

세계일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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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민지현 부장판사)는 1일 미성년자의제강간과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32)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징역 1∼2년에 집행유예 2∼3년을 선고받았던 다른 30대 피고인 4명에 대해서도 원심판결을 깨고, 징역 1∼3년을 선고했다.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만 적용돼 1심에서 1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던 20대 피고인 1명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5명은 법정에서 구속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초등학교 6학년에 불과한 피해자를 상대로 간음 또는 추행하고 성매매하거나 성매매를 권유하는 범행을 저질러 그 자체로 죄질이 불량하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질타했다.

피해자 1명의 부모와 합의하거나 형사 공탁한 것에 대해서는 “부모를 통해 처벌불원 의사가 표시됐더라도 성인처럼 적극적인 감경 요소로 고려하는 건적절하지 않다”며 “피해 아동이 진정으로 처벌 불원의 의미를 이해하고 동의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고인들은 성관계 동의 나이에 이르지 않은, 초등학생에 불과한 10대 2명을 상대로 강제추행 하거나 간음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피해자의 나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용돈, 게임기, 전자담배 등을 사주겠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특히 피고인 중 한 명은 피해자를 수차례 간음한 뒤 친구까지 데려오게 해 또 범죄를 저질렀다. 피해자들은 한 달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무려 7차례 피해를 입었다.

피고인 6명은 서로 모르는 사이이며 모두 피해자들과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성인 남성들이다. 직업은 공무원, 사범대 학생, 자영업자, 회사원, 무직 등 다양했다. 공무원은 사건 이후 파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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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초등생 성착취 사건 피고인 중 한 명이 피해자와 주고받은 메시지. 상대가 초등학생인 것을 알면서도 만나 성범죄를 저질렀다. KBS 보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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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피해 아동들이 겉보기에도 어린 데다 대화 내용 등으로 미루어보아 죄질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 이례적으로 중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가장 많은 4차례 의제강간 범행을 저지른 A씨에게는 징역 20년을, 다른 피고인들에게도 법정 최고형에 가까운 징역 10∼15년을 구형했다. 성매매 권유 혐의만 적용된 피고인에게는 징역 3년을 내려달라고 했다.

형법 제305조는 ‘13세 미만의 사람을 간음한 자를 강간죄의 예에 의하여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물리적인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의사에 반하지 않는 경우라도 13세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하면 엄중히 벌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3조 3항은 ‘16세 미만이나 장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을 사는 행위, 권유, 유인한 경우 모두 가중처벌’ 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성년자 성매수 범죄 판결 대부분이 관행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해 왔다.

앞서 피해자 측 변호사는 “아무리 법정형을 높여도 이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지 않으면 엄벌 노력이 물거품이 된다”며 “이 사건이 관행을 깨고 아동들의 성을 보호하는 데 한발짝 나아가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공탁금이 1심 판결에 영향을 준 것에 분노했던 피해자 부모는 “피고인 중 누구도 ‘죄송하다’, ‘죽을죄를 지었다’, ‘죗값을 달게 받겠다’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재판부를 향해서만 감형을 호소하고 있다”며 엄벌을 탄원한 바 있다.

총 59개 연대단체로 이뤄진 ‘강릉 초등생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3일 이번 2심 판결을 환영하는 성명에서 “아동·청소년을 대가로 유인해 추행 또는 간음하는 행위는 단 1회라도 명백한 성착취 범죄이며, 실형으로 엄중히 처벌할 것임을 사법부가 선언한 것”이라며 “초범인지, 강제성이 있었는지, 처벌불원 또는 형사공탁 여부를 불문하고 전부 법정구속했다는 점에서 사법부가 아동·청소년 성착취 범죄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검찰의 구형에는 현저히 못미치는 수준”이라며 “앞으로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 범죄자에게 검찰의 구형에 상응하는 사법부의 엄중한 처벌이 이뤄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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