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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전봉준 증손’ 주장하며 밝힌 가족사…학계 “정밀한 검증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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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장군의 장녀 전옥례(1876~1970)의 생전 모습. 도서출판 혜안 제공


“우칸(위 칸)에 덕석 있는디, 거기서 마지막 살다 나가서 (장군이) 쌈하다 죽었다게.”



지난달 27일 찾아간 전북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160-3번지. 소담한 한옥 대문 담벼락 왼쪽에 ‘전봉준 장군 마지막 거주지’라는 알림판이 붙어 있었다. 집주인 박옥자(92)씨는 전봉준 장군의 가족들이 헛간 터에 있던 집에서 살았다고 증언했다. 전봉준 장군의 공초(심문 기록)에도 거처지가 “태인 산외면 동곡”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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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거주지였던 전북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160-3번지. 원동골로 불리는 이 집 헛간 터가 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거주지였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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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 이야기’(2021·혜안)의 저자인 송정수 전북대 명예교수(역사교육과)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봉준 장군은 2남 2녀를 뒀다. 첫째 부인 여산 송씨는 딸 전옥례(1876~1970)와 전성녀(1877~1938)를 낳고 해산 후유증으로 세상을 떴다. 전봉준은 홀로 살던 남평 이씨 이순영을 젖어머니로 들였고, 정화수를 앞에 두고 약식으로 혼인했다. 부인 이씨는 전용규와 전용현 두 아들을 낳았다.



부인 이씨는 전봉준이 역적으로 몰리자 숨죽이며 살았다. 송 교수는 “남평 이씨가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후 관군들이 농민군 가족 색출에 나서자 인근 산에 토굴을 파고 생활했다”고 밝혔다. 차녀 전성녀는 1892년 원동골에서 멀지 않은 지금실 강씨 집안으로 시집을 가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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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장군의 증손이라며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유족 등록 신청을 했다가 부결 통보를 받은 전장수씨. 도서출판 혜안 제공


부인 이씨는 장남이 폐병을 얻자, 차남 전용현을 차녀 전성녀에게 보냈다. 1896년께 장남이 사망했고, 이씨도 폐병에 걸렸다. 그즈음 차남 전용현은 도박에 빠져 큰 빚을 지고 1897년 무렵 마을에서 도망쳐 나간 뒤 행방불명됐다고 전해졌다. 큰딸 전옥례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사찰로 몸을 숨겼다.



이 때문에 그간 전봉준의 혈손은 외손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봉준 장군의 증손이라는 전장수(1958년생·아명 우석)씨가 2018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유족 등록 신청을 하면서 친손 존재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송 교수는 “처음엔 과연 장군의 혈육이겠느냐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전장수씨가 선대 어른들의 행적을 정리한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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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수 전북대 명예교수가 전봉준의 증손이라는 전장수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정리한 ‘전봉준 장군과 그의 가족 이야기’ 책 표지. 도서출판 혜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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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수씨가 밝힌 가족사는 처절하다. 차남 전용현(1886~1941)은 1906년 전남 함평에서 만난 이양림과 결혼해 무안에서 살았다. 전용현의 장남 전익선(1909~1998)은 1953년 목포에서 김연임과 혼인해 서울로 이주한 뒤 2남 2녀를 뒀다. 전익선의 장남이 전장수씨다. 그는 1969년 12살 때 전북 진안에서 고모할머니 전옥례(전봉준의 장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했다. 당시 전옥례는 “내가 전봉준 장군의 딸이다. 네가 우리 집 장손이구나. 아주 잘 컸네. 우리 집 장손이니까 들키지 말고 꼭꼭 숨어서 잘 자라 집안의 대를 꼭 이으라”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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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의 차녀 전성녀가 살았던 전북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630번지 집터. 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거주지와 불과 2㎞ 정도 떨어진 곳이다. 전성녀의 옆집이 동학농민혁명 김개남 장군의 고택 터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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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및 유족 등록 업무를 위탁받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2021년 11월께 “전봉준 장군 집안 후손을 입증할 근거 자료가 부족하다”며 전장수씨의 유족 등록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신영우 충북대 명예교수(사학과)는 “전장수씨는 전봉준 장군의 여동생 전고개(1861~1951)의 존재를 처음으로 증언했다. 수십년간 동학농민군의 후손 증언을 채록해온 경험에 비추면, 일부를 제외하곤 전장수씨의 증언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학계와 정부에서 정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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