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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누빈 신식 스님, 하늘로 만행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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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방장 현봉 스님 입적

조선일보

1일 입적한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 스님. 지난 2020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본지와 인터뷰하던 때의 모습이다. /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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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총림 송광사의 최고 어른인 방장(方丈) 현봉(75) 스님이 1일 밤 입적했다. 송광사는 2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남은당 현봉 대종사께서 세연(世緣)이 다 하시어 불기(佛紀) 2568년(2024년) 5월 1일 오후 8시 전남 순천시 조계총림 송광사 삼일암에서 법랍(法臘) 50년 세랍(世臘) 75세로 원적하셨다”고 밝혔다. 현봉 스님은 30일 오전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1949년 경남 사천 출신인 현봉 스님은 구산 스님을 은사로 1974년 송광사로 출가했다. 어린 시절 한학자인 조부에게 한문을 익힌 그는 진주농고 학생 시절 암자에 머물며 학교를 다니던 중 ‘하나가 곧 일체이고 여럿이 곧 하나이다. 하나의 미세한 티끌이 온 세계를 머금는다(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라는 의상 대사의 법성게를 읽고 큰 의문을 품었다. 불경을 탐독하며 출가를 꿈꾸던 그는 군 제대 후 구산 스님을 찾아가 머리를 깎았다.

출가 초기엔 선농일치(禪農一致)의 송광사 가풍에 따라 주경야선(晝耕夜禪), 낮엔 농사짓고 밤에 참선했다. 그는 “어른 스님들에게 ‘현봉이가 심으면 (열매가) 많이 열린다. 장가갔으면 아이도 많이 낳았을 거다’라는 칭찬을 듣곤 했다”며 “그때는 농사 안 짓고 참선만 하는 고참 스님들이 그렇게 부러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현봉 스님은 해인사·통도사·봉암사 등 전국의 선원(禪院)을 다니며 수십 안거(安居·3개월간의 집중 참선) 수행했다.

그는 선방(禪房)과 사찰에만 머물지 않았다. 불교계에서는 드물게 1980년대 말 배낭여행을 떠난 ‘신식 스님’이기도 했다. 만 40세가 되던 1989년 그는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이란 가이드북을 한 권 들고 1년 동안 혼자 배낭 메고 인도, 파키스탄, 유럽, 이집트, 이스라엘로 만행(萬行)을 떠났다. “피라미드의 꼭대기뿐 아니라 그 문명의 바탕을 직접 보고 싶었다”고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부처님 고행상을 친견하기 위해 라호르박물관을 세 번이나 찾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 달 200달러 정도 예산으로 다니면서 ‘그동안 내가 선방(禪房)에서 안주하며 지냈구나’라는 것을 절감하고 수행과 포교에 대한 간절함을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으로 보낸 엽서는 흩어진[逸] 흔적[痕]이란 뜻의 ‘일흔집’에 수록됐다.

조선일보

그래픽=정인성


송광사 주지(2000~2003)를 비롯해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호계원 재심호계위원을 지내는 등 이판(理判·수행)과 사판(事判·행정)을 겸비했다. 2019년 11월 송광사 방장에 추대됐고, 2021년 10월 조계종 최고 법계인 대종사에 올랐다.

송광사 주지 시절에는 6·25 때 소실된 광원암을 복원해 거처로 삼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효봉 스님의 자취가 서린 목우정 등 사라진 전각과 정자를 복원하고 직접 상량문을 썼다. 방장에 오른 후에도 소탈하고 소박한 ‘일하는 방장’이었다. 방장 전용 승용차는 송광사 중진 스님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용차로 내놓았으며 직접 전지가위와 톱을 들고 틈날 때마다 경내를 다니며 꽃과 나무를 가꿨다. 작년 12월에는 현봉 스님이 젊은 스님들과 함께 직접 키운 배추를 뽑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너는 또다른 나’ ‘선(禪)에서 본 반야심경’ ‘솔바람 차 향기’ ‘일흔집(逸痕集)’ 등 경전 해설서와 저서를 펴낸 현봉 스님은 불교의 핵심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법문으로도 이름 높았다. 2019년 11월 방장에 추대된 후에는 “송광사가 16국사(國師)를 배출해 승보종찰(僧寶宗刹)이라고 불리지만 과거의 승보가 아니라 지금 스님 한 분 한 분이 모두 보물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서는 “코로나는 ‘나’와 ‘너’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태”라며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을 갖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202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선 “부처님은 ‘누구나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고통받던 당시 인터뷰에서 “어려운 때일수록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손발은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향소는 송광사 선호당에 마련됐으며 영결식과 다비식은 5일 오후 2시에 봉행된다. 현봉 스님의 장례는 조계총림 총림장으로 진행된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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