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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미 경찰, 사다리차 타고 대학건물 진입…시위대 230명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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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반대하는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뉴욕의 컬럼비아대를 점거하자 뉴욕경찰 대원들이 장갑사다리차를 타고 대학 해밀턴홀로 진입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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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9시(현지시간), 미국 대학가 전역으로 퍼진 가자지구 전쟁 반대 및 이스라엘 비판 시위가 처음 시작된 뉴욕 컬럼비아대 정문 앞. 낮 시간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뤘던 이곳에 갑자기 경찰관들이 모여들었다.

제복을 입은 수백 명의 경찰 병력이 캠퍼스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다. 이어 장갑 사다리차를 통해 무장한 경찰 대원들이 학생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는 해밀턴홀 건물 2층에 투입했다. 해밀턴홀은 1968년 베트남전 당시 반전 시위대에 점거된 후 미국 학생운동의 상징이 된 곳이다.

뉴욕경찰(NYPD)의 작전은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경찰의 캠퍼스 진입 후 해밀턴홀을 점거했던 시위대 손에 플라스틱 수갑이 채워져 끌려 나올 때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CNN은 경찰 당국자를 인용해 이날 시위대 230여 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미국 내 친(親) 팔레스타인 시위의 ‘진앙’으로 꼽히는 컬럼비아대에 지난달 18일에 이어 두 번째 공권력이 투입되자 미국 언론들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미국 사회를 둘로 갈라놨다”고 지적했다. 또한 11월 대선을 앞두고 표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시위대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촉구

이날 오후 캠퍼스 안팎에서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이란 구호를 주로 외쳤던 시위대는 진압 작전 후 투입된 경찰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비난했다. 경찰 통제선 밖에선 일부 시민들은 “경찰은 ‘KKK’(백인우월주의단체)” “미국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그만 죽이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두 차례 교내 공권력 투입을 경험한 컬럼비아대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문제 삼았다. 법대생 에이미 데이슨(가명)은 “두 번의 강경 진압은 민주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감대에 뒤통수를 친 행위”라고 비판했다. 레이철 탕은 “미국이 민주주의라고 하지만 왜곡됐다. 유대인이라는 특정 집단만을 보호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진입에 앞서 이날 찾아갔던 캠퍼스는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와 전통 의상을 입은 소수 유대인 그룹으로 갈라서 있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 참가자는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학교 측이 시위 학생에 대한 퇴학·정학 등 징계 방침을 밝히자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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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날 뉴욕시티칼리지에도 경찰이 투입돼 텐트를 치고 농성중이던 학생들을 연행했다. 두 학교의 수업은 최근 온라인 학습으로 전환됐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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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위 학생 30여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대부분은 “할 말이 많지만 (신원이 노출되면) 졸업을 할 수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시위를 주도한 제임스 로벤(가명)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선 유대 복장을 한 학생이 다가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로벤은 “얼마든지 사진을 찍어줄 테니 신고할 거면 당당하게 하라”고 맞섰다.

유대인들도 “오늘은 경건하게 보내야 하는 유대교의 중요 절기인 유월절(Passover) 마지막 날”이라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찬반 양편으로 갈렸다. 대학 정문 앞에서 만난 시민 로이벤 키우즈는 “시위대 상당수는 사실 진짜 학생운동 세력이 아닌 직업적인 시위꾼”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온라인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캠퍼스 건물의 강제 점거는 절대적으로 잘못된 접근으로 본다”며 “그것은 평화적 시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백악관의 입장이 나온 직후 학교 측은 시위자에 대한 징계 수위를 정학에서 퇴학으로 높였다.

학생들은 다수 미국 매체가 해밀턴홀 점거 과정에서 벌어진 유리창 파손 등 폭력 행위를 부각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로벤은 “이번 시위를 계기로 컬럼비아대뿐 아니라 많은 대학이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고 있는 지분을 매각하기를 바란다”며 “쉽지 않은 여론 지형에서 미국 대학이 이스라엘 자본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것만으로도 이 시위가 성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컬럼비아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 한국인 유학생은 “학생의 안전이란 면에서 학교의 조치를 비판만 하고 싶지는 않으나, 억지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상황이 악화한 것도 사실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다”고 말했다.

NYT “대선 앞둔 바이든에 독 될 수도”

뉴욕타임스(NYT)는 시위와 강경 진압의 악순환이 다가오는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반전 시위가 벌어진)1968년 시러큐스대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바이든은 시위와는 거리가 멀었다”며 바이든이 회고록에서 반전 시위를 보며 “저 멍청한 놈들(assholes) 좀 봐”라고 말했던 일화를 언급했다. 신문은 “이번 시위는 민주당의 핵심 유권자인 젊은 층의 분화를 불러올 수 있고, ‘혼란 가중의 원인은 트럼프가 아닌 바이든’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게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시작된 뒤 젊은 층의 바이든 지지는 떨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하버드대 여론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30세 이하 유권자층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약 8%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2020년 대선 땐 바이든이 23%포인트 앞섰다. 1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하마스에 가자지구 휴전안 수용을 재차 촉구했다.

뉴욕=강태화 특파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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