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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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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에 “암살대원” 조작한 진도 사건…진실화해위, 난상토론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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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진도경찰서가 1969년 작성한 요시찰인 감시기록인 ‘대공’의 사살자 및 동 가족동향명부에 ‘암살대원’으로 적힌 허훈옥. 사망 당시 14살로 진도중학교 1학년이었다. 허경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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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지역 13·14살 소년들을 19~20살 암살대원으로 조작한 경찰기록을 근거로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4명에 대해 진실규명 불능(피해자 미인정) 조처를 했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이에 대한 재검토 차원에서 자문회의를 열어 난상토론을 벌이기로 했다. 진실화해위 안팎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간단한 사안인데 굳이 힘들고 복잡한 경로를 거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30일 오후 열린 진실화해위 제77차 전체위원회에서 김광동 위원장은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 사건’(2차, 진도 사건)과 관련해 “법무팀이 기초 조사를 벌인 뒤 발제를 하고 여야 추천 위원이 선정한 외부 인사도 발제를 해 토론을 하는 자문회의를 개최하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경찰 등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 불법적인 일이었는지, 그 대상을 민간인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쉽지 않다. 암살대원을 포함해서 부역 행위에 대한 기록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할 것인지도 어려움이 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자문회의는 총 15명으로 위원장이 추천한 7명과 여야 추천 상임위원이 각각 추천한 4명 등 총 15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 위원장은 “5월 중에는 개최해서 논의 결과를 다시 또 보고할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 추천 오동석 위원은 “이미 지난해 8월 1소위원회에서 적대행위 부역자 처리의 불법성과 민간인으로 볼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검토하고 몇 차례 회의를 했다”며 “당시에도 (적대행위)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면 사안별로 논의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했다. 오동석 위원은 이어 “과거사법(진실화해위 기본법)에 나오는 불법 행위와 민간인 개념의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 위원회를 운영해왔다는 얘기냐”고 따졌다.



한겨레

1950년 10월 경찰 수복 후 진도읍 의신면 만길리에서 위세를 떨친 허광백(가명)이라는 인물이 주민들을 부역자로 지목해 감금한 목화창고 건물. 지금은 주민이 살고 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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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야당 추천 허상수 위원은 황인수 조사1국장의 1소위 보고가 끝난 뒤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해 “진도 사건을 다룬 한겨레 보도를 보고 너무 부끄러워 자괴감이 들었다”며 ”문제가 되는 경찰기록은 국가폭력을 범죄적으로 합리화한 데 불과한 첨부자료”라고 이야기했다. 허 위원은 또 “요즘 진실화해위에 대해 부역자 심판하는 기관이냐, 피해자 심사하는 새로운 공안기관이냐는 말들이 많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여당 추천 차기환 위원은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에 관해서는 100% 모두 만족시킬 수도 없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다”며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있었기 때문에 공공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데서 논의의 출발을 하면 심의가 진행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다시 허상수 위원은 “경찰의 공공 기록도 생산된 배경과 맥락을 봐야 한다”고 재반박했다. 김광동 위원장은 “1·2기 때 여러 차례 관련 논의를 했지만 컨센서스(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한겨레는 지난 29일 전남 진도군 의신면 만길리 등 현지취재를 통해 ‘진도경찰서가 1969년 작성한 요시찰인 감시기록인 ‘대공’에 암살대원으로 적시된 4명 중 3명이 미성년자이며 이중 김대환·허훈옥은 각각 13살과 14살이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들은 이 기록에 따라 “민간인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고, 현재까지 이를 반박할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3월12일 전체위원회에 ‘진실규명 불능’ 의견으로 올라왔으나 야당 위원들의 반대로 보류 조처됐다. 당일 전체위에서 진실규명(피해자 확인) 결정이 난 나머지 진도 사건 희생자 35명 역시 ‘대공’에는 ‘암살대 정보원’, ‘암살대 연락책’, ‘오열분자’, ‘살해 음모자’, ‘자위대 감찰’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직책이 표기돼 있었다.



‘진도 사건’이란 진도군 의신면·임회면에 거주하던 이들이 한국전쟁 중 인민군 점령기에 부역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1950년 10월 경찰 수복 뒤, 1951년 1월까지 거주지 일대에서 경찰에게 살해된 일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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