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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판사도 경악한 20대 악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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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부산지법 서부지원./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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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현실세계에서 가상세계보다 더욱 혹독하게 대가를 치른다는 준엄한 진실을 밝혀둘 필요가 절실하다.”

30일 지역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서부지원 형사2단독 백광균 판사는 공갈, 강요, 명예훼손, 협박, 주거침입,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된 A(여·28)씨에게 최근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백 판사는 이 사건 판결문에서 “우리 사회에선 형사 절차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온갖 범죄를 법정 밖에서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응징하는 소설,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드라마 등보다 더 준엄한 심판을 해야 할 절실함을 언급했다. “이 절실함이야말로 법치주의 구현을 위한 밑거름”이라고 했다.

법원이 드라마 등보다 더 혹독한 대가를 언급한 이유는 이랬다. 대학 동창을 상대로 한 A씨 범행 내용과 수법은 막장 드라마를 넘어설 정도로 악랄했다. 동창 B(여·28)씨를 지갑 도둑으로 몬 뒤 공갈해 2년 동안 34차례에 걸쳐 2억여원을 뜯어냈다. 그 과정에 A씨의 공갈, 협박에 시달리던 B씨 어머니는 괴로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지난 2021년 1월 B씨가 자신의 지갑을 만지는 것을 본 뒤 “니가 내 지갑을 훔친 걸 안다. CCTV에 다 찍혔다. 100만원짜리인데 백화점에 가서 새 것을 사서 달라. 지갑 변상 명목으로 150만원을 주면 경찰에 신고 안 하겠다”고 협박해 93만원을 뜯어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해자 B씨가 잠시 지갑을 만져봤을 뿐인데 도둑으로 몰았다”고 했다.

이후 “A점 카운터에서 네가 돈을 훔쳤다. CCTV에 찍혀 있다. 도둑질하면서 카운터 통을 망가뜨려서 내 월급에서 20만원을 뺐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는가”, “A점 카운터 절도 벌금이 1000만원인데 500만원만 줘. 근데 100만원 받을 거면 그냥 안 받고 신고할래” 등으로 거짓을 꾸며 B씨에게 공갈 협박을 해 돈을 뜯어냈다.

심지어 “송oo이가 말하기를 대학교 다닐 때 네가 식당이나 카페 아니면 학교 강의실에서 네가 송의 돈을 훔쳤다고 말을 하고 다닌다. 100만원을 나한테 주면 송에게 전달하고 없던 일로 해달라고 설득하겠다”, “동창인 송oo, 김oo, 박oo, 최oo, 조oo과 단톡방이 있는데 다들 학교 다닐 때 돈이 없어졌는데 네가 돈을 훔쳤다고 한다. 각자 1200만원을 줘야 경찰에 신고 안 한다고 한다”는 등 다른 동창까지 들먹이며 돈을 빼앗아 갔다.

법원은 “공갈 소재로 들먹인 제3자들도 B씨의 절도 혐의를 확인하거나 추궁한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또 “A점 사장이 2800만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다고 한다”, “A점 사장의 변호사 선임 취소 위약금 1400만원을 내라”, “A점 사장이 너 때문에 1700만원 손해를 보고 가게를 팔았다고 배상해달라 한다”는 등으로 돈을 갈취했다.

“나와 엄마가 변호사 사무실에 왔다 갔다 한다고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1050만원을 보상비로 내라”, “A점 사장이 너 때문에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면서 피해보상금 4500만원을 요구한다”고도 협박하고 B씨의 카드를 빼앗아 쿠팡 등에서 500여 만원 어치의 물품을 사기도 했다.

B씨 가족이 자신을 경찰에 고소하자 A씨는 지난 해 2월 B씨 아파트 1층 게시판, 1층 현관 출입문과 벽면 등에 “김oo, 27세, oo아파트 oo동oo호, 돈을 안 갚으면 천벌 받는다. 주민들은 문단속 잘해라”는 허위 사실을 대자보처럼 붙이거나 “취미도 도박, 특기도 도박, 간호사 준비 중인데 이 여자 조심하세요”란 글 등을 SNS에 공개 게시한 듯 B씨에게 사진을 보내 스토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경찰 등 조사 결과, A씨는 별다른 벌이도 없이 호감을 지닌 남성의 환심을 사려고 명품 선물, 생활비 지원에 대부분 탕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B씨 측의 고소 후 잠적했다가 1년 만에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백 판사는 A씨의 이같은 행각에 대해 “공갈죄만 보더라도 범행 경위와 수법, 피해 규모,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 후 정황이 더 나쁜 사안을 떠올릴 수 없으리만치 참혹하고도 비극적이다”며 “돈을 더 잘 뜯어 내려고 저질러온 강요죄, 스토킹 범죄 등 관련 범죄까지 더해본다면 최악 중 최악으로 평가하는 데에 아무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다.

백 판사는 판결문에서 “B씨는 고운 심성 탓에 절도 혐의가 없는데도 장기간 위협에 굴복하며 노예처럼 지냈다”며 “피해자들은 사랑스러운 가정을 일궈 행복한 하루하루를 지내오다가 오로지 A씨의 악행 때문에 막대한 재산과 둘도 없는 생명까지 잃어 돌이키지 못할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백 판사는 이어 “그 누구도, 그 누구를 상대로도 같은 범죄를 되풀이하지 못할 만큼 기나긴 세월 자숙과 성찰을 강제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일벌백계로 삼을 필요 또한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박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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