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미국 전역 대학으로 번진 팔레스타인 연대 농성에서 열흘 새 900명이 체포된 가운데 정치권과 기부자 눈치를 보는 대학들이 학생들과의 대화 대신 곧바로 경찰을 투입하는 것을 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8일(이하 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AP> 통신을 종합하면 27일 보스턴 노스이스턴대에서 가자전쟁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천막 농성 참여자 102명,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100명 이상이 체포됐고 애리조나주립대 및 인디애나대 블루밍턴에서도 각 69명, 23명이 체포됐다.
외신들은 지난 18일 컬럼비아대에서 100명 이상이 체포된 뒤 시위가 미 전역 대학으로 번지며 주말까지 누적 체포 규모가 900명 가량으로 불어났다고 설명했다.
시위대의 세부적 요구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핵심 요구는 각 대학이 이스라엘 연관 기업 및 가자지구 전쟁에서 이익을 얻고 있는 기업에서 투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대학과의 학술 교류를 끊어야 한다는 요구도 많다. 그러나 대학 쪽은 시위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거나 협상에 임하는 대신 광장을 막아 시위를 원천 봉쇄하려 시도하거나 곧바로 경찰을 불러 진압을 요청하고 있다.
대학 쪽이 경찰 신고 근거로 내세우는 주요 구실 중 하나는 시위가 학생들이 아닌 외부인으로 구성됐다는 것이다.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는 27일 성명을 내 체포된 시위 참여자 100명 이상 중 이 학교 학생은 23명, 교직원은 4명에 불과했다고 밝히고 모든 체포된 개인들이 "무단 침입 혐의"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102명이 체포된 노스이스턴대 쪽도 시위가 "노스이스턴대에 아무 소속이 없는 전문 조직자들에 의해" 조직됐고 시위대에서 "악의적인 반유대주의적 비방"이 쏟아졌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는 노스이스턴대 시위대가 대학 쪽의 이러한 주장 모두를 부인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그러나 일부 학교 외엔 시위에서 "외부인의 영향력이 명확하지 않다"며 "많은 대학 지도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제한적임에도 대학 외부인이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지난 25일 애틀랜타의 에모리대에서 농성자 28명이 체포됐는데 농성자 중 누구도 이 대학 소속이 아니라던 대학의 초기 입장과는 달리 체포자 중 대다수인 20명이 학교와 연관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학들이 진지한 대화 시도 없이 캠퍼스에 곧바로 경찰을 투입하는 배경엔 가자지구 전쟁 뒤 대학 내 팔레스타인 연대 목소리에 대한 정치적 압력이 자리한다. 학생들 사이에서 이러한 연대 목소리가 나오자 미 의원들은 이를 반유대주의로 몰아 붙이고 대학 총장들을 청문회로 불러들여 비난했다. 해당 청문회에서 모호한 답변을 했다는 이유로 비난에 시달린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이 지난 1월 사임했고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도 지난해 12월 사임했다.
필립 아티바 솔로몬 예일대 심리학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대학들이 시위를 신속히 차단하고 있는 것은 최근 하버드대 등 총장들이 연이어 사임하는 것을 목격한 각 대학 총장들이 이들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아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네마트 미노슈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도 지난 18일 100명 이상의 체포를 유발해 시위의 전국 확산에 불을 댕긴 캠퍼스 경찰 출동을 요청하기 전날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에 관한 의회 청문회에 불려갔다.
시위가 확산되는 국면에서도 대학에 대한 직접적 압력은 계속됐다. 공화당 소속 미 하원의장은 지난 24일 컬럼비아대를 방문해 시위대를 "즉각" 해산해 혼란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샤피크 총장이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시위를 "반유대주의"로 규정하고 "이러한 폭력을 자행한 이들은 체포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1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유대인에 대한 폭력 촉구 및 괴롭힘을 목도"하고 있다며 "노골적인 반유대주의는 비난받아 마땅하고 위험하며 대학 캠퍼스는 물론 우리나라 어느 곳에도 설 자리가 없다"고 비판했지만 동시에 민주당 일각에선 시위 지지 목소리가 나와 분열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유대인인 버니 샌더스 미 상원의원은 28일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이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지지한다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우익, 극단주의, 인종주의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은 현대 전쟁사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나는 유대인이고 내 아버지의 가족은 히틀러에게 몰살당했다. 반유대주의는 수백만 명을 죽인 역겹고 극도로 나쁜 형태의 편견"이라며 "지금 우리는 가자지구에서 대량 기아와 기근이 발생할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것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8일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의원도 미 폭스 뉴스에 "시위가 선을 넘고 폭력적으로 변하거나 혐오 발언이 나올 땐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캠퍼스에 있는 젊은이 95%는 이스라엘이 근본적 불의를 자행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곳에 있다. 우리는 그들이 평화적으로 시위할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3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민주당 하원의원도 "어린 학생들의 캠퍼스 내 비폭력 시위에 경찰을 투입하는 것은 긴장을 고조시키며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솔로몬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총장들이 학생 안전 및 일부 합리적 주장, 정치적 좌파의 분열, 정치적 우파의 엄청난 압력과 같은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다 개학이 다가오자 경찰을 부르는 방법을 택했다고 봤다. 그는 이러한 행동은 "학업 환경을 위축시키고 학생들을 소외"시키며 경찰과 시위대의 긴장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학들이 시위를 빠르게 정리하려는 배경엔 기부자로부터의 압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컬럼비아대 졸업생으로 학교의 주요 기부자 중 하나인 미국프로풋볼리그(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구단주인 로버트 크래프트는 CNN에 "컬럼비아대가 학생과 교직원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확신이 더이상 들지 않는다. 시정 조치가 취해지기 전 대학을 지원하는 것이 편하지 않다"며 "컬럼비아대와 그 지도부가 이러한 시위를 즉시 끝내 혐오에 맞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27일(현지시간)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캠퍼스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천막 농성을 시도한 시위 참여자들을 경찰이 체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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