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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책의 향기]여성 운동, SF 작가… 규범 너머 시대 앞선 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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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사상가 어머니 메리와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딸 메리

사회 변혁 헤쳐나간 두 생애 교차

바이런 등 당대 인물 일화도 흥미

◇메리와 메리/샬럿 고든 지음·이미애 옮김/782쪽·3만8000원·교양인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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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무법자들’의 초상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계몽주의 사상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아래쪽)와 그의 딸로 SF 문학의 효시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 저자는 딸 메리가 속박을 깨뜨리고 당대 규범에 도전한 점에서 어머니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강조한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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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딸의 이름을 어머니와 같은 ‘메리’로 지을 때는 200여 년 뒤 이런 책이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영국과 유럽 사회의 변혁을 온몸으로 헤치며 지성사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모녀의 이중(二重) 전기다. 딸은 SF 문학의 효시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1797∼1851), 그를 낳고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여성의 권리 옹호’를 쓴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페미니즘의 어머니’로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다. 미국 영문학자인 저자는 두 사람의 생애를 각각 20개의 장(章)으로 나누어 차례로 교차시킨다.

모녀 모두 유년기는 평탄하지 않았다. 어머니 메리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딸 메리는 의붓어머니의 견제와 차별을 감당해야 했다. 두 여성 모두 도버 해협 건너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나갔다. 어머니 메리는 프랑스 혁명 직후의 살벌한 파리에 외국인 여성의 몸으로 뛰어들었다. 딸 메리는 의붓여동생까지 데리고 유부남인 시인 퍼시 셸리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어머니 메리의 대표작 ‘여성의 권리 옹호’는 33세 때인 1792년에 출간돼 돌풍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그는 “매력만으로 여성이 평가받도록 훈련받아선 안 된다. 남녀 모두 더 높은 열망을 지녀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남녀가 평등할 때만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고 믿었고 철학자 고드윈과 평등한 가정을 구축했다.

메리 셸리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계승자인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오랫동안 딸 메리는 ‘어머니의 가치보다 사교계에서의 입지나 신경 쓴 인물’로 치부됐다. 저자의 최대 관심은 ‘그 어머니에 그 딸’의 정당한 위치를 찾아주는 것이다. 특히 메리 셸리가 어머니에 대해 쓴 글에 주목한다. 딸은 어머니에 대해 “그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에 따르는 슬픔을 경험했으므로 이러한 슬픔을 덜어주려는 간절한 열망이 마음속에 불타올랐다”고 평가했다.

나아가 저자는 ‘프랑켄슈타인’에 숨은 어머니에 대한 갈망을 찾아낸다. 메리 셸리는 이 소설의 배경을 ‘7월 31일에 월요일이 돌아오는 해의 12월에서 9월까지’로 설정했다. 어머니 메리가 그를 임신하고 출산한 뒤 사망한 1796년 12월∼1797년 9월과 일치한다.

저자는 어머니 메리가 스스로를 부른 별명 ‘무법자(outlaw)’가 모녀 모두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세상을 변화시킬 책을 썼을 뿐 아니라 속박을 거듭해서 깨뜨렸고 규범에 도전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혁명의 문을 열었다.”

당대 지식계의 총아였던 두 여성의 배우자뿐 아니라 시인 콜리지, 워즈워스, 키츠, ‘프랑켄슈타인’ 착상 현장에 함께했던 바이런, 미국 정치가 겸 정치철학자 존 애덤스 등 당대 지성의 별들이 함께하는 일화들이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원제 ‘낭만적 무법자들(Romantic Outlaws·2015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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