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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김별아의 문화산책] 말글의 진실 혹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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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쓰는 말 편견 부추겨

내몰린 자살 너무 많은데

어떻게 극단적 ‘선택’인가

진실·거짓, 사실·허위도 구분을

몇 해 전 일상인을 위한 글쓰기 교실을 진행한 적이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책 한 권 출간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는 수강생들은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내가 수업을 통해 전달하려는 것은 문체나 구성, 묘사 따위의 ‘기술’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분투하는 동안 자신을 잊거나 잃은 이들이 글을 쓰며 스스로를 발견하고 이해하길 바랐다. 그리하여 수업 제목도 ‘나를 사랑하는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좀처럼 속임수를 허용하지 않는다. 행간에는 글쓴이가 부지불식간에 숨긴 진실과 비밀이 얼비친다.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단어나 표현에서 부정적, 낙천적, 냉소적인 삶의 태도가 엿보인다. 접속사와 조사, 쉼표를 찍는 위치와 말줄임표에도 통제형, 방어형, 과시형, 회피형 등의 성격이 드러난다. 빨간 펜으로 첨삭된 원고를 받아든 수강생들의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낯선 자신과 조우함에 기뻐하며 다음 수업을 기대하거나, 황급히 원고를 가방에 구겨 넣고 다음 수업에 나오지 않거나. 어쩌면 사람들은 글쓰기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들킬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

강산이 세 번 바뀌도록 ‘글밥’을 먹으며 살다 보니 말글의 이면과 행간의 의미를 얼마간은 알아챌 법해졌다. 입이 화문(禍門)이라 유명인들이 실언으로 곤욕을 겪는 경우를 왕왕 목격하지만, 나는 사실 실수 자체에는 관대한 편이다. ‘논어’ 양화편에는 공자님이 말실수를 하고 “앞의 말은 우스개일 뿐이다(前言戲之耳)!”라고 얼른 주워 담으시는 장면이 나온다. 성인군자마저 피할 수 없는 실수에 대해 집요하게 말꼬리 잡기를 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벗어난다. 다만 가만히 듣고 깊이 읽노라면 지나치는 말글에 뜻밖의 암시와 함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습관 혹은 관성으로 쓰는 말글이 편견을 부추기고 고착화하는 경우가 있다. 학업 성취를 ‘서울대’라는 한마디로, 헐값의 미숙련 노동을 ‘동남아 아줌마’라는 비칭으로 수렴하는 글은 학벌과 인종과 성별에 의한 차별을 당연시하는 듯하다. 보통은 생각이 있어 언어로 표현된다고 여기지만, 반대로 말글에 의해 생각이 지배될 수 있다. 다행히 내달부터 시정될 예정이라지만, ‘자살’이라는 말을 헤드라인에 쓰거나 사인으로 밝히기를 피하라는 보도 윤리 강령이 낳은 것은 ‘극단적 선택’이라는 기묘한 말이었다. ‘선택’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수단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이기에, 자살 예방은커녕 오해를 불러일으킬 법했다. 그런가 하면 생활고 등의 이유로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함께 죽거나 홀로 살아남는 비속 살해 사건을 ‘가족 동반 자살’로 부르는 것은 또 어떠한가. 모호한 말이 짐짓 온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고 오도한다.

무의식적으로 쓴 말글에 감춰진 의식이 묻어날 때도 있다. 야당 대표에 대한 불의의 습격 사건이 벌어진 후 열린 의료진 브리핑에서, 수술 집도의는 환자를 ‘대표님’이라고 칭한 반면 이송 전 주치의는 ‘환자분’이라고 불렀다. 왈가왈부하는 특혜 시비와 응급 체계의 혼란은 대표님과 환자분,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두 말 사이 어디쯤에 있을 게다. 어느 작가는 세월호 재난 초기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거짓말’이라고 표현했다. ‘진실’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믿지 않는 한, 의도와 정확성의 인식에서 명백히 다른 ‘오보’와 ‘거짓말’을 혼동해 쓰면 오해 혹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고, 사실의 반대말은 허위다.

바야흐로 ‘1인 미디어 시대’다. 모두가 듣기보다 말하기에, 읽기보다 쓰기에 바쁘니 세상에 말과 글이 넘쳐난다. 부디 범람하는 말글의 일부라도 소음이 아닌 소통이 되기를 바란다. 진실은 어딘가에 있고 비밀은 어디에도 없을지니, 나를 읽고 듣는 사람은 도처에 있다.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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