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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끝모를 의대증원 갈등…기어이 파국의 길 가나[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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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우리 나라 최초의 달 탐사선 '다누리'. 국내 달 탐사 사업의 첫 단추를 끼운다는 점에서 상징적이었다. 하지만 연구개발 과정이 순조롭지 않아 수 차례 발사가 지연됐다. 결국 달 탐사선은 2020년 12월에서 1년 8개월이 흐른 2022년 8월이 되어서야 발사됐다.

한국형 달 탐사선 발사까진 숱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달 탐사선의 중량 미달, 임무 궤도 수정과 함께 연구원 간 초기 단계인 설계에 대한 이견으로 인한 갈등이 주원인이었다. 계획된 세부 일정이 없었다니 갈등은 어쩌면 필연이었는지 모른다. 달 탐사 계획이 수 차례 지연되면서 수백 억원의 예산이 낭비되는 등 출혈도 컸다.

국내 첫 달 탐사선 발사 과정을 돌이켜보면 최근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료 공백의 단초가 된 '의대 2000명 증원'이 오버랩된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단번에 2000명(올해 정원의 65.4% 증가)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역대 처음이다. 의대 증원은 위기의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첫 단계. 그런데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으로 출발부터 삐걱대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가 '숫자 2000'을 두고 강대강 대치를 지속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 중이다. 의료계는 "과학적 근거가 없어 의대 2000명 증원은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정부는 "입시 일정과 필수 의료 확충을 감안해 재검토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두 달 넘게 의대증원 규모를 두고 공회전하는 사이 암 등 중증환자와 가족들의 피해는 커졌고 병원에 남은 의료진은 번아웃(소진)에 시달리고 있다.

사태의 시작점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 과정도 부족했던 정부의 엉성한 정책 추진 방식이었다. 정부는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했다"고 밝혔지만 의대 2000명 증원의 과학적 근거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또 "의사단체와 28차례 만나 대화했다"고 했지만, 회의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좋든 싫든 간에 의사도 국민이다. 의료 전문가로서 인정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의료계는 만성적인 저수가, 의료소송 위험, 의료전달체계(환자의뢰체계) 개선 없인 의대 증원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물론 의료계도 사태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환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최선의 치료를 받을 권리도 있다. 의료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들이 환자들의 고통을 모를 리 없다. 또 "정부의 일방적인 증원에 대한 최후의 카드로 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하지만,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의료 개혁을 반대하는 이유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조목조목 귀에 쏙쏙 들어가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내 첫 달 탐사선은 수 차례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결국 대안을 찾았고 발사에 성공했다. 아이러니하지만 달로 곧장 가는 대신 먼 길을 돌아서 가는 것이 해법이었다. 먼 길을 돌아서 달에 가면 빠른 길로 가는 것보다 탐사선의 연료를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계획된 궤도를 따라 곧장 달려야만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정은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라는 공감대를 중심으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적절한 궤도 수정에 나서야 한다.

지금이라도 의정 갈등을 정교하게 조정해 이해관계자들의 합의를 이뤄낼 만한 제대로 된 협의체를 마련해야 한다. '명분 축적용'이 아닌 실효성 있는 협의체를 통해 충분히 논의된 후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에 대한 결론이 도출된다면 향후 의대생과 전공의, 의대교수들이 학교나 병원을 떠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치만 이어간다면 결국 의료 개혁의 한계만 확인하게 될는지 모른다. 20여 년간 지속돼온 의대 증원 갈등의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또 다시 미로 속을 헤매게 되는 것이다. 훗날 전체 사회 구성원이 입을 예측불허의 피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는지 자못 궁금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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