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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논란 커지는 민주유공자법…보훈부 “통과시 대통령 거부권 요청도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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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야당 정무위 의원들은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을 단독으로 가결했다. 2024.4.23.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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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이 확정된 사람도 국가적 예우를 받는 유공자가 될 가능성을 열어둔 ‘민주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민주유공자법)’에 대해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줄 것을 건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3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하자 법 시행 부처인 보훈부가 어떤 사건을 민주 유공 사건으로 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이 법이 시행되면 사회적 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며 강경 입장을 보인 것이다.

●“어떤 사건이 민주 유공 사건인가?…기준 불분명”

이희완 국가보훈부 차관은 25일 서울 국방부에서 브리핑을 열고 “민주화 운동에 따른 피해 보상 대상을 결정하는 것과 국가적 존경과 예우 대상인 유공자를 결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법안 보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법안이 이대로 통과되면 거부권이라는 게 있지 않나”라며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지 검토하는 단계”라고 밝혔다.

‘민주화 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볍률’ 및 ‘부마 민주 항쟁 관련자의 명예 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등 이른바 ‘민주화 보상법’으로 분류되는 두 법에 따라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결정된 사람은 1만364명이다. 민주화운동법안은 이 중 숨지거나 행방불명되거나 다친 이들을 6·25 참전용사, 독립운동가, 순직군경 등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사회적 예우와 존중을 받는 민주유공자 심의 대상자가 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훈부는 민주화심의보상심의위원회가 2015년 펴낸 민주화운동백서 등을 참고해 심의대상자가 911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911명은 보훈부가 자체적으로 추려낸 숫자인데다 민주유공자법에는 명확한 민주유공자 심의 기준이 없어 민주유공자 심의 대상자 숫자가 향후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보훈부 설명이다.

이 차관은 이와 관련해 “민주유공자법 적용 대상에는 독재정권 반대 운동, 교육·언론·노동 운동, 부산 동의대 사건, 서울대 프락치, 남민전 등 민주화보상법에서 인정한 다양한 사건이 포함돼 있는데 이 중 어떤 사건을 ‘민주 유공 사건’으로 할지 등에 대한 명확한 심사기준이 없어 민주유공자 결정에 심각한 어려움이 있다”고 강조했다.

●“北 찬양자 -北 희생자 ‘다 같은 유공자’ 예우받을까 우려”

보훈부는 국가유공자법이 국가유공자 등록 시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법안엔 “보훈심사위 심의·의결을 거칠 수 있다”고 돼있는 점도 중대한 흠결로 봤다. 보훈부 관계자는 “보훈심사위 심의·의결을 의무가 아닌 재량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향후 민주화보상법으로 보상받은 인원 전원이 별도 심의도 없이 민주유공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이 경우 (1989년) 동의대 사건처럼 진압에 나선 경찰관과 전투경찰 7명이 순직한 사건과 관련된 이들도 민주화보상법으로 보상받은 만큼 민주유공자가 될 수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유공자법에 따르면 1984년 무고한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감금·폭행한 서울대 프락치 사건 관련자 역시 민주유공자 심의 대상자다.

이 법안의 가장 큰 쟁점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확정된 사람도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유공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이다. 국가유공자법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해 실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은 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없도록 ‘당연 배제’하고 있다. 반면 민주유공자법안은 이들을 배제한다면서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때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 ‘조건부 배제’를 명시하고 있어 보훈심의위 심사위원 성향이나 향후 정권 성격에 따라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도 유공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보훈부 관계자는 “과거 군부독재 정권이 국가보안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억울하게 형이 확정된 경우 세부 사정을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경우에 따라 북한을 찬양·선전·동조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한 이들까지도 심의위원 성향에 따라 유공자가 될 수 있는 틈을 열어둔 만큼 법안이 이대로 통과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브리핑에 앞서 모두 발언을 한 이 차관은 2002년 제2연평해전에 참수리 357호(고속정) 부정장으로 참전했다가 북한군 총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은 국가유공자다. 이 법안이 이대로 통과하면 자칫 북한을 찬양하던 이들과 북한군에 다리를 잃은 이 차관 같은 이들이 같은 유공자로 예우받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차관은 야당을 중심으로 민주유공자는 국가유공자와 달리 취업, 교육 등 실질적인 지원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민주유공자 본인 및 자녀의 경우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42조의6에 따라 대입 특별전형 대상에 포함됨을 명확히 알려드린다”며 반박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보훈부는 민주유공자법의 입법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법안의 독소조항과 중대 흠결을 보완하는 등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거친 뒤 흠결을 최소화한 법안을 만들어 향후 사회적 논란을 막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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