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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한강의 기적, 한강의 위기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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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스탠퍼드=AP/뉴시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이 3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열린 기업·정부와 사회 포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연준이 올해 말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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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는 2%p 벌어져 있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펴는 동안 한국 내에서도 동조화 주장이 있었다. 한미 금리차가 역전되면 자본유출이 심해져 금융시장이 위기를 겪을 거라던 급진적 우려였다.

하지만 가계부채 쏠림이 심한 한국에서 무턱대고 금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세계은행에서 경험을 쌓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초부터 안정적인 스탠스를 잡은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물가를 방어하면서 금리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한 덕분에 위기가 관리돼 왔다고 볼 수 있다. 금리차는 상당히 컸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 말 FOMC(공개시장위원회)를 통해 올해 금리를 25bp씩 세 차례 내리겠다고 밝혀 심리적인 격차를 줄인 것도 올 초까지 국내 시장 안정에는 큰 도움이 됐다.

그런데 1분기를 지나 사뭇 달라진 연준의 태도는 한국 입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위험요인이다. 올해 첫 석달의 경제상황을 요약한 연준은 금리인하에 대한 계획을 내부적으로 상당히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고 5.50%에 달하는 고금리로 인해 경제가 어느 정도 둔화될 것으로 여겼는데, 예상보다 경제주체들이 탄력성을 발휘하면서 성장률이 뛰어오르니 표정 관리를 넘어 정책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 셈이다.

당초 2% 초반이나 그 이하를 예상했던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분기에 이미 2.5%를 넘었고, 올해 말까지 연간 예상은 2.7%로 상향됐다. 지난해보다 올해 미국 경제가 더 좋을 거란 예상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은 당초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기침체를 예상했는데, 이제는 침체 없이 성장률이 높아지는 이른바 '노랜딩'을 기대하고 있다.

연준 인사들은 최근 금리인하 시기를 2분기에서 3분기로, 3분기에서 4분기로, 심지어 올해는 금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점점 강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연준 위원들의 매파적 언급은 이제 '블러핑'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다. 뉴욕 선물옵션시장의 트레이더들 사이에서조차 올해 금리인하가 아니라 인상재개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들이 생겨났다. 이달 초 전 미국 재무장관 로렌스 서머스가 제안한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장관계자들이 심각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실 한미금리 역전차가 초기에 받아들여졌던 것은 물가상승률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기준금리를 5%대로 올렸다고 해도 인플레이션이 최근까지 3% 이상이었기 때문에 실질금리는 2% 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역으로 한국은 3.5%라는 기준금리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기에 자본유출은 심각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인플레 수준이 엇비슷해진 현 시점에서 2%p라는 갭은 꽤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미국의 금리인하가 계속 지연될수록 금리차 역전으로 발생하는 부작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1400원을 넘나드는 수준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원화가치 하락)은 그런 문제의 직접적인 여파로 볼 수 있다.

새로운 '킹달러 시대'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란 주장도 나온다. 한국보다 일본의 엔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떨어졌으니 그런 해석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단순히 환율의 문제를 떠나 성장률에서마저 미국에 뒤진 것은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경제 규모가 수십배 차이나는 미국의 성장률이 2.7%인데 비해 한국이 2.1%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근본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그널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즈(FT)는 '한국의 경제기적은 끝났는가'라는 기사를 통해 국가주도의 전통적인 대기업, 제조업 위주의 성장 방식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값싼 에너지와 노동력을 바탕으로 했던 낡은 기둥이 삐걱거리고 있다는 설명은 뼈아픈 비판이었다. 반세기 만에 선진국이 된 한국은 외부에서 보면 매우 역동적일 수 있지만 선진국을 따라잡았던 경제 구조는 1970년대 이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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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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