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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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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 노재봉 전 국무총리 별세… 향년 8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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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로 '6·29 선언' 관여… 노태우 정부 중용
91년 강경대 사망 사태로 4개월 만 총리 사퇴
'강성 우익' 한국자유회의 출범 멤버
한국일보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2008년 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정원에서 열린 '건국 60년, 60일 연속 강연'에서 강연자로 나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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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 시절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23일 혈액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1987년 '6·29 민주화 선언' 작성에 참여했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도 관여한 강경 보수 성향의 정치인이자 학자였다.

1936년 경남 마산(현 창원)에서 태어난 노 전 총리는 마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대에서 정치외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년부터는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전공은 국제정치사상으로 알렉시 드 토크빌의 정치사상 등을 연구했다.

그는 교수 시절부터 현실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70년대 중반엔 박정희 유신정권에 대해 온건한 태도를 취한 이철승 신민당 대표의 '중도통합론'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이던 1987년엔 자문역을 맡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을 담은 6·29 민주화 선언 작성에 참여했다. 이듬해 말 북방외교를 추진하는 노 전 대통령의 외교담당 특보로 임명돼 현실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0년 3월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된 노 전 총리는 같은 해 말 총리에 지명돼 1991년 22대 총리로 취임했다. 하지만 명지대 학생인 강경대씨가 시위 중 경찰사복체포조(백골단) 구타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강경 발언으로 여론이 악화되자, 총리 취임 4개월 만에 물러났다. 1992년 14대 총선 때는 여당인 민주자유당 전국구 후보로 당선됐으나,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 탈당했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2년 서울디지털대 총장을 지낸 노 전 총리는 정계 은퇴 후에는 강경 보수 성향의 모임을 주도했다. '목요공부방'으로 시작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한국자유회의'로 이어진 모임이 대표적이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주요 멤버다. 노 전 총리는 2018년 제자들과 토론한 결과물을 엮어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 등 저서를 펴냈다. 저서에 담긴 사상은 지난해 '자유민주주의 진영 대 공산전체주의 진영'이라는 대결 구도를 꺼내 들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메시지와도 맥이 닿아 당시 정치권 일각에서 회자됐다. 2021년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맡았던 노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 등 육사 11기생들에게) 한국 정치는 국방의식이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됐다"며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통치기능에 참여하는 계기였다"고 말해, 군부독재를 정당화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지연월씨와 딸 모라, 아들 진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다. 발인은 27일 오전.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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