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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홍세화 선생은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늘 되물었다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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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문객들이 19일 오전 홍세화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찾아와 묵념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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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세상 너머 꿈꾼 ‘내일’





일년 동안의 선생님의 투병 생활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우리는 고결함이 무엇인지 노동당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각자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병마와 싸우시는 와중에도 멈추지 않고 여러 강연과 집필을 하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깝기도 하였지만 우리는 전사의 강인함을 닮아가고자 하였다. 이번 총선 직후 극심한 통증 속에서도 울산 이장우 후보 득표율을 물으시고 안타까워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온몸을 던지는 최후 척탄병의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의 영정사진 속의 눈빛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우리는 안다. 이제 우리는 쓰러진 척탄병의 깃발을 일으켜 들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선생님이 외롭고 힘든 가시밭길을 맨발로 가셨듯이 우리는 최후의 한 사람이 장렬히 전사할 때까지 그 길을 가야 한다. 선생님의 오래전 진보신당 당대표 출마의 변을 다시 읽어 본다. “노동당이 아니면 어떤 정당도 해결할 수 없는 근본 문제가 지금 우리 앞에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 너머 내일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우리는 있다. 우리는 잃어버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되찾아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재벌국가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가고자 했던 고결한 그 길을 갈 것입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한겨레

이문철 노동당원(경기 고양 지역위원회)











끊임없이 존엄한 삶 추구해





홍세화, 선생을 한마디로 말하면 모순적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애매하다는 의미에서 양가적이다.



기본소득에 대해 강의나 토론을 해달라고 요청하면, 언제나 공부가 부족하니 다음에 하자고 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강의에 들어가면 그렇게 단호할 수가 없다. 선생이 보기에 기본소득은 인간의 존엄한 삶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양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카드놀이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가까운 벗들과 놀이를 하는 게 너무 즐겁다.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온다. 하지만 꼭 이겨야 한다는 승부욕이 발동한다. 지면 화가 난다.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선생의 모습이 쉬지 않고 나아가게 하고 끊임없이 멈춰 서게 한 힘일 것이다. 유한한 인간인 우리는 언제나 부족하지만 자신이 믿는 바를 애써 추구하고, 또 회의한다. 선생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쓴 것을 후회했다. 그 책을 쓰지 않았다면 노스탤지어를 느끼지만 센강변에서 안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그 책으로 얻은 명성을 세상에 바쳤다. 선생은 그런 사람이다.



한겨레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진보운동은 귀한 분 잃었다





진보운동이 무너지고 있다. 붕괴와 소멸 수준의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영향력이 예전만 못해서가 아니다. 진보운동의 정체성은 어떤 조직에 속했는가 따위에 달린 게 아니다. 그건 전적으로 약자, 소수자의 처지에 내몰린 사람들과 함께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겨레 기자 명함이 진보의 보증수표는 아니고, 서울신문 기자도 가난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면 진보인 거다.



지난해 5만명의 시민이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갇혔다. 돈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 수감되면 생계 박탈, 가정 파괴와 함께 혹독한 사회적 낙인까지 찍힌다. 진보운동은 이런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 ‘송파 세모녀’처럼 이례적, 극단적으로 죽지 않는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슨 구경이라도 하듯 내려다봤던 것처럼 일가족 세명이 수해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지 않고서야 진보운동권의 눈에 들어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한겨레

21일 오후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홍세화 선생의 하관식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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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은 달랐다. 진보인사들은 뭐든 묻지 않지만, 선생은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늘 되물었다. 장발장은행 일을 맡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진보는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진보운동의 전선이라고 웅변했다. 진보운동은 귀한 분을 잃었다. 그래서 원통하다.



한겨레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선생님의 글과 행적이 ‘등불’





나는 별로 근본 없이 살아와서, 선배나 어르신으로 부를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데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가입하게 된 ‘소박한 자유인’은 내 관점을 바꿔놓았다.



이곳은 학습모임이자 홍 선생님의 신념이 스며든 비폭력 직접행동 단체였다. 우리 회원들은 맥주와 당구와 등산을 즐겼고, 기후위기 행진과 외국인보호소 폐지 집회에 나갔다. 이 자유로운 사람들은 여기저기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다녔다. 홍 선생님은 잡기와 직접행동 모두 능한 분이셨다.



홍 선생님은 어르신이자 동지였다. 홍 선생님은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 세상’의 초기 후원회장이셨다. 아직 한국에 병역거부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2022년에는 나의 요청으로 이예다(파리에 거주 중인 병역거부자 난민)씨와의 모임에도 흔쾌히 응해주셨다. 그때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나는 과거와 현재의 망명자가 마주 앉은 테이블에서, 무언가 풀리지 않은 시대의 질곡 같은 것을 느꼈다. 그 질곡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내게 숙제로 남아 있다.



어르신으로 부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이 떠나신 것이 너무 슬프다. 홍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선생님의 글과 행적이 후대를 밝혀주는 등불이 되길 기원한다.





한겨레

안악희 ‘소박한 자유인’ 회원, ‘리셋터즈’ 베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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