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국민 뿐”
“시간 갖겠다” 전당대회 불출마 암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총선 결과에 따른 위원장직 사퇴 입장을 밝힌 뒤 당사를 떠나며 당직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4.4.11 문재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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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패배 후 자신을 향한 책임론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당내에서 거듭되는 ‘윤석열 대통령 배신론’에 맞서는 메시지로도 읽힌다. 한 전 위원장은 지지층을 다독이는 동시에 이번 전당대회에는 출마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정치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 20일 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저의 패배이지 여러분의 패배가 아니다”라며 지지층을 위무하는 듯한 말로 입장문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함께 나눈 그 절실함으로도 이기지 못한 것, 여러분께 제가 빚을 졌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510자 남짓 짧은 입장문에는 ‘배신’이란 단어가 세 번 들어갔다. 한 전 위원장은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을, 국민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 뿐이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해준 국민의 뜻에 충실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미다.
한 전 위원장은 글 말미에서 “정교하고 박력있는 리더쉽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만날 때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며 “정교해지기 위해 시간을 가지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고 말했다. 당장 이번 전당대회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신 시간을 갖고 미래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대선 출마 의지를 암시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여권 내에선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한 전 위원장의 총선 후 ‘미국 유학설’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이날 글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연일 자신을 향해 “대통령을 배신한 사람”이라고 저격하자 반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과 본인이 충돌했던 김건희 여사 문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귀국 이슈 등에서 자신이 옳았노라는 함의도 보인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21일 통화에서 “객관적으로도 한 전 위원장이 당장 복귀하기는 쉽지 않다”며 “입장문은 홍 시장 비판 등에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낸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한 전 위원장의 위원장 재임 기간 중에도 여권 일각에서는 배신론을 제기했다.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을 김경율 비대위원이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대며 비판한 뒤인 지난 1월엔 ‘1차 윤·한 갈등’이 있었고, 이 전 국방부장관의 도피성 출국, 황상무 전 시민사회수석의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 이후엔 ‘2차 윤·한 갈등’이 거론됐다. 의료 공백 문제도 당과 대통령실 입장은 달랐다. 한 전 위원장은 이따금 대통령실과 충돌했으나, 결정적인 순간엔 윤 대통령 의지를 꺾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총선 패배를 두고 대통령 책임론과 한 전 위원장 책임론이 갈리는 배경이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한 전 위원장 책임론을 두고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 윤 대통령과 만찬회동을 가진 홍 시장은 한 전 위원장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 홍 시장은 전날 자신이 만든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이용자가 한 전 위원장을 옹호하자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한동훈은 총선을 대권놀이 전초전으로 한 사람”이라며 “우리에게 지옥을 맛보게 했던 정치검사였고 윤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이다. 더이상 우리 당에 얼씬거려선 안된다”고 했다. 신평 변호사는 21일 SNS에서 “국민의힘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은, 한동훈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가진 과신”이라며 “그는 오직 자신이야말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기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혼자서 선거판을 누볐다. 변명은 그만하자”고 지적했다.
반면 서울 동대문갑에서 낙선한 김영우 전 의원은 이날 SNS에서 “지금에 와서 한동훈 전 위원장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아니다”라며 “지난해 연판장으로 엉망이었던 전당대회, 비정상적인 강서구청장 공천과 선거 참패, 총선 과정에서 불거진 의대정원 논란과 이종섭, 황상무 사건은 가히 놀라웠다. 그래도 한 전 위원장의 지원유세로 소위 보수층의 자포자기와 분열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발 악재로 정권심판론이 고조된 상황에서 그나마 한 전 위원장이 노력해 최악의 성적은 피했다는 것이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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