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드마니시 고인류, 인류 확산을 위한 '신의 한 수'를 두다 [배기동의 고고학 기행]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편집자주

우리 역사를 바꾸고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도록 한 발견들을 유적여행과 시간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음미한다. 고고학 유적과 유물에 담긴 흥분과 아쉬움 그리고 새로운 깨달음을 함께 즐겨보자.
<42> 조지아 드마니시 유적
한국일보

조지아 드마니시 고인류 유적 발굴 현장(사진 아래)과 인근에 위치한 중세 교회 및 수도원 유적(위)의 모습. 조지아국립박물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진화해 다른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선 수백만 년 된 인류 화석이 계속 발견됐지만 유라시아 대륙에서 발견된 화석은 모두 아프리카 화석보다 시대가 늦다. 물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100만 년이 훌쩍 넘는 화석이 발견됐지만, 여기서 언제 어떻게 유라시아로 진출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인류는 언제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동했을까. 그리고 어떤 단계의 인류가 낯선 세계로 향하는 길을 용감하게 나섰을까. 이는 인류 진화연구에서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그런데 해답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출현했다. 바로 코카서스산맥 언저리에 있는 조지아의 드마니시(Dmanisi)에서 고인류 화석들이 발견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봤을 때, 이곳은 유라시아로 향하는 북쪽 길목이다. 드라마 같은 흥미진진한 인류 진화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한국일보

조지아 드마니시 유적 위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드마니시, 신을 찾아 오가는 길목


데이비드 로드키파니체(David Lordkipanize·조지아) 관장은 아마도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고인류학자일 것이다. UC 버클리대학 동료의 소개로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조지아 국립박물관에서 만난 로드키파니체 관장은 그동안 발견한 인류 화석을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나의 견해를 물었다. 사실 이곳에서 발견된 고인류 화석은 복합적인 특성이 있어서 서로 다른 견해가 충돌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북경 원인(호모 에렉투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인류 화석을 발견한 학자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저 빙그레 웃음으로 답했다.
한국일보

드마니시 고인류 화석을 관찰하는 배기동(왼쪽) 전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로드키파니체 조지아국립박물관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드마니시 유적은 트빌리시에서 남서쪽으로 90㎞ 정도 떨어져 있다. 마샤베라강과 피나자우리강이 내려다보이는 현무암 단애의 꼭대기에 있다. 유적에선 강 건너 넓은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유적 위쪽에 폐허가 된 성이 있고 바로 옆에 오래된 성당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성직자들이 코카서스산맥을 넘어 러시아 지역으로 향하는 길목이란다. 신을 찾아 오가는 사람들이 힘든 다리를 쉬며 머무는 곳인 셈이다. 이 길도 실크로드의 한 갈래라고 하니, 수백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류가 진화 단계는 달라도 같은 길로 다녔던 까닭은 모두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한국일보

드마니시 고인류(180만 년 전)의 얼굴을 복원한 모습. 조지아국립박물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류 최초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의 주인공


아프리카가 인류의 기원지로 확인된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최초로 이동한 고인류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 시기와 루트는 어디인지는 고인류학의 가장 큰 숙제였다.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호모 에렉투스는 남쪽 루트를 통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지리상 북쪽에 치우친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이곳 산악지역에서 180만 년 전에 살았던 고인류가 발견됐으니, 당시로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북위 40도 이북에서 발견된 이른 시기의 고인류 유적은 없었다. 그런데 드마니시 유적은 북위 44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드마니시 유적은 당시 인류로서는 가장 북으로 진출한 흔적이자, 고인류가 북쪽으로 이동하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마도 코카서스산맥이 북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을 막아 주고, 양쪽 큰 바다(흑해, 카스피해)의 영향으로 기후가 비교적 온난했기 때문이리라.
한국일보

드마니시 초기 인류 두개골 출토 장면(2005년 발굴 당시). 조지아국립박물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호모 조지쿠스, 그는 누구인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류는 호모 에렉투스(H. erectus), 유럽은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H. heidelbergensis)였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호모 에렉투스에 해당되는 고인류로 호모 에르가스터(H. ergaster)가 있었다.

1991년 이후 드마니시에서는 거의 완벽한 모습의 두개골 5점, 몸통뼈 백여 점, 그리고 다수의 석기가 발견됐다. 그런데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화석은 장거리 보행을 할 수 있도록 다리가 긴 편이면서 팔 모양은 대단히 원시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신체가 모자이크처럼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또 두개골은 현대인의 절반도 안 되는, 즉 호모 하빌리스(H. habilis)의 두개골과 비슷한 크기(545~775㏄)다. 특히 두개골은 작지만 턱뼈가 커 한때 새로운 종 분류 명칭으로 ‘호모 조지쿠스(H. georgicus)'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프리카의 호모 에르가스터가 이동해 남긴 것’으로 해석해 △호모 에르가스터 조지쿠스(H. ergaster geogicus)라고 부르는 견해와 아시아의 호모 에렉투스의 조상 격이 되는 것으로 간주해 △호모 에렉투스 조지쿠스(H. erectus geogicus)로 부르려는 견해가 공존한다. 결국 이런 명칭은 ‘아프리카의 호모 하빌리스'가 진화해 지역적으로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할 따름이다.
한국일보

조지아 드마니시 유적 발굴 현장(2019년). 조지아국립박물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왜 낙원에서 쫓겨났을까?


기후변동, 천재지변 등은 생물을 한자리에 오래 살도록 두지 않는다. 생존 환경을 크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지구환경은 지난 500만 년 동안 서늘해지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고, 250만 년 전부터는 10만 년 주기로 추운 빙하기와 따뜻한 간빙기가 반복됐다. 이런 기후변화는 오늘날 사하라사막을 거대한 사바나 초원이나 숲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사하라사막에 위치한 수단에서는 세계 최고(最古) 고인류 화석 ‘사헬렌트로푸스’(Sahelenthropus·700만 년 전)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때는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었다는 뜻이다.

이런 사하라의 변신은 인류가 중근동 지역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으로 확산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숲이 있고 물이 흘러 온갖 동물이 뛰어놀던 낙원이 간빙기에 건조한 사막으로 변신하면, 인류를 포함한 생물들은 살 만한 곳을 찾아 이동할 수밖에 없다. 사하라사막이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면서 동물의 이동을 꾸준히 유발한 셈이다. 그러나 낙원을 나서는 순간, 낯선 땅에는 죽음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일보

드마니시 유적에서 발견된 찍개류 석기의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을까?


인류가 중근동 지역으로 이동한 후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지적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고 이 단계의 인류는 이미 100만 년 이상 석기를 제작·사용했고, 또 불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기를 제작하는 것은 인간 의지를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인간의 인지력은 매일 계속된 석기 제작 과정에서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획기적 도구 혁명으로 평가받는 ‘주먹도끼’는 약 180만 년 전 출현했는데, 이 주먹도끼는 석기 제작 공정상 미리 계획이 세워져 있어야 만들 수 있는 도구다.

드마니시의 고인류는 두뇌 크기가 현대인의 절반도 안 됐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특히 환경 정보를 획득하고 공유하는 능력은 각종 새로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대비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역시 준비된 자가 성공한다.
한국일보

드마니시 유적 전시관 입구 모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진화의 기회 : 적과의 동침?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먼저 식량을 연중 일정하게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체온 유지를 위한 수단도 필요하다. ‘현대인’ 단계에서도 대기근으로 집단 사망한 사례가 있는 것을 보면, 수백만 년 전에는 환경에 더욱 종속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드마니시 지역은 살 만한 환경이었을까.

화분분석(花粉分析·땅속에 매몰된 꽃가루로 퇴적 당시 식물 종류나 생태를 해명하는 방법)을 보면, 당시 이 지역은 나무와 초원이 섞인 사바나로 추정된다. 그리고 유적에서 발굴된 동물 화석 중엔 검치호랑이의 화석이 있다. 검치호랑이는 나무 위를 오르내릴 수 있는 강한 발톱을 가지고 있어서 사냥에 소질이 있었지만, 긴 송곳니는 잡은 먹잇감의 살을 뜯는 데는 그다지 유용하지 못한 구조다. 그래서 검치호랑이가 먹고 남긴 동물 사체에는 상당한 양의 살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드마니시 인류는 계절 변화가 심한 이곳 온대 환경에서 검치호랑이 덕을 보며 동물 사체 청소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과의 동침’이 오히려 생존을 위한 기회를 마련해준 셈이다.
한국일보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본 드마니시 고인류 두개골의 모습. 조지아국립박물관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류 진화, 그 성공 신화의 현장


생물의 진화는 많은 죽음을 딛고 새로운 강인한 유전자가 등장하는 순간에 이뤄진다. 인류 진화도 마찬가지다. 인류도 아프리카 열대우림에만 갇힌 침팬지·고릴라처럼 절멸 직전에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환경 변화에서 기회를 포착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난관을 극복할 지혜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아프리카가 아닌 모든 대륙에 인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의미에서 드마니시 유적은 인류 최초의 ‘신의 한 수’가 실현된 현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새로운 환경에 과감하게 도전했고, 대단한 성공까지 얻어낸 것이다. 오늘날 인공지능(AI) 시대를 앞둔 현대인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한국일보

조지아 드마니시 유적 전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배기동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한양대 명예교수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