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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다정한 국회가 살아남는다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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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종합지원실 현판식에서 국회의원들이 착용할 국회의원 배지가 공개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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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정보기관 중앙정보국(CIA)은 9·11 테러 예측에 완전히 실패했다. 오사마 빈라덴이 테러 공격을 승인한 후 9·11 발생까지 무려 29개월의 시간이 있었고, CIA는 많은 징후를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모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알카에다는 자살 폭탄테러를 일찍이 1993년부터 감행하고 있었고, 빈라덴은 CIA 정보 보고서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인물이었다. 항공기를 무기로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소설 'Debt of Honor'에도 나오는 등 9·11 테러 발생 오래전부터 퍼져 있었다.

전체 인원이 수만 명에 이르고 수백억 달러의 예산을 쓰는 세계 최고의 조직이 왜 그토록 무능했을까. 이는 CIA가 서로 비슷한 인재만을 뽑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매슈 사이드, '다이버시티 파워'). 똑똑한 사람들 중에서도 똑똑한 사람만 채용하는 CIA의 직원 대부분은 백인, 남성, 중상류층, 개신교를 믿는 엘리트들이었다. 유색인종, 여성, 이슬람교도는 소수에 불과했다. CIA 내의 동질성과 동종 선호는 관점의 사각지대를 가져와, 턱수염을 기르고 허름한 옷을 걸친 채 동굴에서 미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빈라덴을 미개하고 후진적인 인물로 과소평가했다. 빈라덴의 허름한 옷은 이슬람교 선지자의 거룩함을 상징하고, 동굴은 신성한 장소로 종교적 의미가 큰 곳이어서 9·11 테러에서 순교자가 될 자들을 선동하고 중동 전체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유용한 전략이었다. 이러한 전략을 기독교를 믿는 백인 남성 엘리트 중심의 CIA는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 국회에도 최고의 학력과 지성을 갖춘 인재가 모여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도 서로 비슷하다. 새로 구성된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들 중 남성은 80%이고 평균 연령은 56살이며, 대부분 고학력에 전문직 출신이다. 여성, 청년, 사회적 취약계층 출신 비중은 매우 적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으며,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다정한 조직에서는 관점의 폭이 넓어져 사각지대가 줄어들고 더 효율적인 일처리가 가능하다. 엘라 F. 워싱턴은 '다정한 조직이 살아남는다'에서 다정하고 포용적인 조직문화에서 혁신의 가능성은 6배나 높아지며, 생각의 다양성은 팀의 혁신을 20% 높이고 위험을 30%나 감소시킨다고 주장한다.

한국표준색표집은 세상에 존재하는 1,519가지 다채로운 색을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 정치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두 색깔만 보인다. 빨간색은 축구 경기에서까지 논란이 됐다. 충남 아산은 부천FC와의 2024시즌 홈 개막전에서 푸른색 홈 유니폼 대신 붉은색 유니폼을 입었다가, 4·10 총선을 앞두고 지역 정치인들이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유니폼 색상을 변경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파란색은 일기예보에서 문제가 됐다. MBC는 저녁 뉴스에서 기상 캐스터가 당일 미세먼지 농도가 '1'이었다고 전하는 과정에서 파란색 숫자 '1' 그래픽을 사용했는데, 국민의힘은 해당 화면이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제소했다.

사람의 생각과 의견은 다양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어떤 문제든 두 가지 색깔, 두 가지 의견밖에 없다. 새로운 국회는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깔들이 넘쳐나고, 다른 의견들이 포용되며, 소수세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다정한 국회가 돼야 한다. 다정해야 살아남는다.
한국일보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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