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9 (일)

“학교 팔아먹는 놈이라구요?” 동문회 결사 반대·재단은 뒷짐… 전국이 혼돈[저출생 학교 통폐합 전쟁]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인구 급감 타격… 전국 통폐합 학교 갈등 속출

담장 하나 사이…두 학교 통합 20년 갈등 하동

“우리 동네 학교 살려야” 폐교 대상 선정 갈등도

“통폐합 기준 상세 세부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편집자주: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년, 출생아수가 20만명대로 떨어졌다. 1970년대 한해 100만명씩 태어나던 것과 비교하면 출생아가 3분의1 수준이다. ‘국가 멸종’ 급 저출생 영향은 비수도권·지역 학교에 직격탄이 됐다. 전국에서 폐학교들이 속출했다. 자구책인 학교간 통폐합은 이해관계가 달라 논의가 쉽지 않다. 인구 감소는 현실이다. 하지만 통폐합이 인구 감소를 더 가속화하는 현실은 막아야 한다. 전국 통폐합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제도적 보완점을 살펴봤다.

헤럴드경제

학령 인구 감소가 가속화하면서 전국에서 학교 통폐합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123RF]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저한테 학교 팔아먹는 놈이라대요.” 경남 하동군에서 50년째 살고 있는 학부모 박성연 씨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동군은 현재 하동여고를 하동고로 흡수·통합하는 통폐합을 추진 중인데, 하동군 학교운영위원장 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여기에 ‘찬성’ 입장이다.

문제 제기는 하동여고 동문회 측으로부터 나왔다. 박씨는 하동여고 동문회가 박씨에게 ‘학교를 팔아먹었다’고 비난했다고 했다. 학교를 없애는 데 어떻게 찬성할 수가 있냐는 것이 동문회 입장이다. 박씨 생각은 다르다. 하동여고 학생수는 지난 10년 사이 절반이 줄었다. 두 학교를 합치는 것이 폐교를 늦추는 최선이라는 게 박씨 생각이다. 하동군청 관계자는 “이러다 두 학교 모두 형편 없는 소규모 학교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가파른 인구 감소로 전국에서 학교 통폐합을 둘러싼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통폐합은 인구 감소 여파로 학교들이 폐교 위기에 몰리기 전 최소한의 교육 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청들이 택하는 대안이다. 그러나 지역엔 갈등의 불씨다. 거주민과 학부모, 학교, 동문회 등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는 사이 학생은 계속 줄어든다. 저출생 직격탄을 맞은 전국 곳곳이 ‘전쟁급’ 학교 통폐합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립 재단 ‘보이콧’ 속 하동군 학교 통합 20년 갈등
헤럴드경제

지난해 하동 지역 학부모, 주민 등이 모인 ‘하동 미래교육 군민 모임’이 하동고와 하동여고 통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하동군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동군의 학교 통폐합 갈등은 20년째 해묵은 과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하동군의 인구는 50년 전 15만명 선에서 지난 2023년에는 4만여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동여고 학생 수도 최근 10년 사이 절반으로, 하동고는 30% 가까이 줄었다. 다른 도시로 떠나는 학부모가 늘며 재학생 수 감소는 빨라지고 있다. 두 학교 모두 폐교 되기 전 학교를 합쳐 경쟁력을 살리려는 게 하동군의 계획이다.

두 학교 통합은 2000년대 초반부터 수차례 추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하동여고를 소유한 사립 재단 하동육영원 측 반대 때문이다. 하동군은 지난해 통폐합을 위한 TF팀을 다시 꾸렸지만 재단 입장은 여전하다. 사립학교는 학교 재단이 반대하면 통폐합을 강제할 수 없다.

한성수 하동군 교육혁신 담당자는 “학교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입시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통합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그러나 재단은 아직 학생이 충분하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으로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주민이 함께 하는 회의에도 오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는 “하동군과 가까운 진주 소재 고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하동에 있는 학교를 보내는 학부모는 마치 능력이 없어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하동여고는 학생수 부족으로 기숙사 학생들 대상 아침 계약도 이미 끊겼다. 내년 전면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도 역시 이들에겐 고민거리다. 고교학점제는 다양한 과목을 학생이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데, 학생과 교사 수가 적다면 여러 수업을 개설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통합할 거면, 우리 동네 학교 살려라” 3개교 통합 충남 홍성 진통
헤럴드경제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통폐합에 앞서, 어떤 학교를 살리고 어떤 학교를 닫을지 역시 갈등 요인이다. 충남 홍성에선 3개 학교 통합 논의가 진행 중이다. 통합 대상인 학교들의 신입생은 지난해 기준 각각 결성초 1명, 은하초 2명, 신당초 6명에 그쳤다. 이들 학교는 각각 다른 면에 위치해 있다. 학교간 거리는 10㎞ 안팎이다.

충남교육청은 지난해 학교들 통합을 시도했지만 학부모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교육청은 올해 다시 학부모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소규모 학교까지 모두 교사를 배치하느라 교사들이 여러 학교에서 ‘순회’ 수업을 하는 등 부담이 크다는 게 충남교육청의 설명이다.

학부모들의 고민도 크다. 지난해 전교생이 18명에 불과한 결성초의 한 학부모는 “우리 마을엔 정말 학교가 없으면 안된다”고 했다. 결성초 인근 결성중은 6년 전 폐교됐다. 이후 학교 부지에 야구단이 들어서긴 했지만, 동네가 눈에 띄게 한적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학부모는 “야구단 학생들은 결국 외지인이다. 젊은층 유입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만약 결성초를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면 통합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학교 통합이 지역 소멸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크다. 표미자 홍성학부모협의회장은 “(통합하면) 교장 선생님도 하나 없어지고, 선생님도 줄어드는 문제가 있어 대부분 학부모는 반대하고 있다”며 “홍성군에선 청년 귀농을 홍보해왔으면서 정작 이들의 자녀가 갈 학교를 없애는 건 앞뒤가 안 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미 지역마다 유치원도 없어지고 어린이집도 없어지는 상황에 동네가 소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지역 갈등 끝 ‘줄폐교’ 악순환…통폐합 가이드라인 필요”문제는 이렇듯 학교 통합을 둘러싸고 수년째 갈등이 이어지면 결국 폐교 수순을 밟을 개연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학교 통합은 폐교를 늦추기 위한 고육책인데 통합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차가 클수록 결국 폐교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강원도 춘천시 A면에선 통폐합을 둘러싸고 20년 가까이 갈등이 계속되다 4개 초등학교와 초등학교 분교장, 1개 중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다. 갈등 이유는 학부모들과 지역민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달라서였다. 학부모들은 학교들이 통폐합되지 않는다면 춘천 등 다른 대도시로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각 마을 주민들은 ‘우리 동네 학교가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장은 엇갈렸고 각 학교들은 모두 폐교됐다.

해당 사례를 연구한 이동성 전주교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한 마을 주민으로부터 “여러 마을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합의가 안 됐다. 솔직히, 누가 자기 모교 아닌 다른 학교를 살리고 싶겠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학생 수가 절대 기준인 현행 제도의 문제가 되레 지역 소멸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령인구 감소로 통폐합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인만큼, 해당 지역의 특성과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절충할 수 있는 세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천편일률적으로 학생 수만 기준으로 해 통폐합을 결정하고 학부모 투표만으로 쉽게 결정하는 것이 문제”라며 “지역의 경제라든지 문화, 인구 수 등 복합적인 요인들을 고려해 통폐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교육청들의 통폐합 대상 학교 분류는 초등학교 기준 ‘전교생 360명’이 기준이다.

klee@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