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울리는 그놈목소리①]몰아치는 가스라이팅…'기관사칭형' 피싱 피해자 중 20대 이하 59.6%
※ 이 기사는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늦은 저녁 새내기 대학생 이가연씨(가명)가 식당 아르바이트 후 귀가하던 중이었다. 오전부터 수업도 연이어 들어서 몸도 마음도 피곤했다. 바로 그 때, '서울 검찰청'에서 전화가 왔다.
"XX년생인 이가연씨 맞으시죠? 경기도 XX시 XX구에 거주하는 분"
자신을 서울검찰청 검사라고 소개한 사람은 "당신의 명의가 범죄에 도용돼 확인 차 전화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검사라면서 내 신상정보를 줄줄이 읊고 있었다.
보이스피싱이라는 의심이 들기도 전에 휴대폰 너머의 남성은 "이가연씨, 범죄에 가담했습니까 안 했습니까"라며 윽박질렀다. 이씨는 "절대 그런적이 없다"며 울먹였다.
남성은 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이었다. 그는 범죄조직이 이씨 명의를 도용해 문화상품권(문상)을 대거 사들였다고 했다. 검사도 이같은 수법은 처음이라 범죄조직이 문상을 샀던 방식을 재현해야 이씨가 피해자인걸 입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스마트폰으로 10만원권, 5만원권, 1만원권을 나눠서 총 117만원의 문화상품권을 샀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피같은 돈과 용돈을 전부 쓸어담았다. 이씨는 검사가 시키는대로 문상의 PIN(개인식별번호)를 읊어줬다. '이제 난 검찰청 갈 일 없겠지' 마음 한 켠 불안했지만 잘 마무리 될 것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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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입증을 도와드리는 겁니다"…쉴 새 없이 몰아치는 피싱 '가스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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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현정디자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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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입증을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검사는 반복적으로 이씨를 안심시켰다. 이씨는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 거 맞죠?"라고 수차례 물어봤다. 그는 "불법 자금이 아니라면 당연히 받을 수 있다. 당당히 무죄를 입증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검사는 보이스피싱 예방 문자와 자신이 검찰청 어느 부서에서 일하는지 보여주는 웹사이트 링크도 대화형 SNS(소셜미디어)로 보냈다. 그는 자신이 이씨를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에 보이스피싱 전화가 올 일은 절대 없다고 또 안심시키려고 했다. 이씨가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는 마지막 마감 추적이 필요하니 계좌로 19만2000원을 보내라고 했다. 이 돈까지 보내야 추적이 끝난다고 했다. 이씨는 빨리 돈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에 진행해달라고 했다. 검사가 금융감독원에 보고서를 보내야 한다며 타자기 소리를 냈다. 그러다 검사의 '부장'이라는 여성이 전화를 돌려 받았다. 같은 패거리였다.
여성은 "우리가 사기꾼일까봐 걱정되느냐"고 물었다. 불안해 하는 이씨에게 "문화상품권도 구매하고 계좌 이체도 하고 여러번 시키는 게 더 번거롭지 않겠냐"며 "내가 사기꾼이면 한 번에 이체하라고 하는 게 더 빠르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그러면서 "2000만원도 아니고 200만원이다. 마지막으로 돈을 보내면 돈은 5분에서 10분 사이에 원상복구 될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계좌이체를 했다.
그렇게 통화가 끝났다. 30분이 넘어도 돈은 원상복구 되지 않았다. 이씨가 다시 검사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봤지만 없는 번호라고 떴다. 그렇게 이씨가 모은 200만원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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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3월 기관사칭형 피해자 절반 이상 10·20대…"사회경험 적은 청년층" 범죄조직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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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사칭 보이스피싱 피해자 연령별 현황/그래픽=조수아 |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3월 검사 등을 사칭한 '기관사칭형' 피해자 중 20대 이하가 59.6%에 달했다. 피해자가 연령대가 낮을수록 피싱범은 문화상품권 결제 등 소액결제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 관계자는 "청년층은 사회 경험이 적을 뿐 아니라 형사 사건에 연루될 경우 구직활동에 지장이 생길까 두려워한다"며 "범죄조직은 이러한 점을 악용한다. 다수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경찰은 어떠한 경우에도 수사기관이 전화로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경찰 관계자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연락은 일단 의심하고 수상한 전화나 문자를 받았을 때 112로 신고해야 한다"며 "통합신고센터에서 관련 내용에 대한 조치와 함께 상담받을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신고해달라"고 밝혔다.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이상봉 PD assio28@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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