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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병원 48곳 거부…경남 교통사고 중환자, 결국 수원 갔다 [의료붕괴 시작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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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20대, 경남 함안서 수원 아주대 이송

의료진 "자칫 늦었으면 다리 목숨 위험"

중앙일보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응급환자가 구급차에서 의료진을 기다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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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 갈등이 두 달가량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경남·강원·울산 등지의 중증환자가 수도권으로 이송되기도 한다. 지난 16일 오후 6시47분쯤 경남 함안군에서 오토바이를 타다 교통사고가 난 20대 남성이 수술할 데를 못 찾아 경기도 수원의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경기남부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이 환자는 119 구급차로 2시간 40분 걸려 후송됐고 17일 오전 0시30분께 아주대 외상센터에서 긴급 수술을 받았다. 이 센터 관계자는 "응급 수술을 했지만, 다리를 살릴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환자의 중증점수(ISS,15점 이상이 중증)는 16점으로 중증외상환자로 분류됐다. 대퇴부에 약 30㎝ 이상의 열린 상처가 있었고, 대퇴부 근육의 3분의 2 이상이 파열됐으며 대퇴골의 개방성 골절도 관찰되었다. 또한 다리에 혈액을 공급하는 대퇴동맥을 비롯한 여러 혈관이 파열돼 출혈이 계속됐다. 자칫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구급대원은 응급 수술을 할 수 있는 외상센터와 대학병원 48곳에 연락했지만 환자를 받겠다는 데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아주대에 연락이 닿았고, 16일 오후 9시49분 아주대 외상센터로 향했다. 기상상태 등의 여건이 안 맞아 닥터헬기를 이용할 수 없었다. 아주대 측은 응급 수술을 시행하였지만 이미 치료 시간의 지체로 인해 다리의 괴사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한 다발성 장기 부전, 패혈증(혈액에 균이 퍼지는 질병) 등의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하였다. 이 환자의 수술 지체는 의대 증원 파동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자세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경남소방본부 관계자는 “전남까지 연락을 돌렸는데 받아주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혈관하고 신경을 다쳐 수술이 쉽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라며 “크게 다친 환자를 지켜보며 전화 돌리는 구급대원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해달라. 구조에는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했다.

아주대 센터는 18일 강원도 강릉에서 사고를 당해 경추(목뼈)가 손상된 환자를 긴급 수술했다. 강릉의 대형병원이 수술할 수 없다고 해서 2시간 30분 걸려 아주대로 실려 왔다고 한다. 아주대 외상센터 관계자는 "예전에는 먼 지역에서 오는 환자가 드물었는데 요즘 들어 이런 연락을 잦아져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이런 응급환자만 고통받는 게 아니다. 전공의 이탈로 인해 수술의 절반가량을 줄인 대형병원 암 환자들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달 말 서울의 대형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을 받기로 돼 있는 한 환자는 "이달 중순까지 의료 파동이 해결되지 않으면 수술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병원의 연락을 받았다. 이 환자 가족은 "이미 수술이 한 번 연기된 건데 또 연기될 것 같아 답답하고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 신장암 환자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술받기 위해 입원을 준비하던 중 '마취과 의사가 협조하지 않아 수술을 못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언제 수술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탄식했다. '빅 5' 병원의 한 외과 의사는 "전공의가 나간 후 수술을 많이 줄였는데도 5개월 넘게 밀려 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는 환자가 많다"면서 "진행성(주로 3,4기) 암을 위주로 먼저 수술하고 있지만 일부는 암세포가 퍼질 수 있다. 그러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조기암으로 진단된 경우도 5,6개월 지나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전북의 한 병원에서 뇌동맥류(뇌혈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병) 진단을 받은 50대 김모씨는 "큰 병원으로 가라"는 권고를 받고 지난 16일 수도권 대형병원을 찾았다. 거기서 “수술이 시급하다. 하지만 우리는 수술할 수 없으니 다른 데로 가라”고 했단다. 김씨와 가족이 나서 백방으로 병원을 찾고 있다. 김씨의 조카는 “큰 병원이라서 당연히 될 줄 알았는데 황당하다"고 말했다.

최근 사망사고가 잇따라 환자들의 불안이 커진다. 지난달 31일, 이달 11일 경남 김해와 부산에서 대동맥 박리 환자 A씨와 B씨가 잇따라 숨졌다. 지난달 충북 보은군에서는 도랑에 빠진 33개월 아이가, 충북 충주시에서는 전신주에 깔린 70대 여성이 병원 이송에 어려움을 겪다가 끝내 숨졌다. 정부가 의료공백으로 인한 것인지 조사하고 있다. 의료계는 ‘응급실 뺑뺑이’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한다. 대한응급의학회는 “흉부외과는 20년째 전공의 지원이 적은 탓에 전공의에게 의존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전공의 사직 사태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환자와 가족은 정부와 의사 둘 다 비판한다. A씨의 딸은 “어머니가 빨리 수술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살았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나 이번 의료 공백으로 인해 혹시 모를 생존 가능성을 저버린 것은 아닌지 원통할 뿐”이라고 말했다. B씨의 딸은 “울산에서 촌각을 다투는 어려운 수술을 한 의료진이 감사하다”면서도 “의료 파업이라고 해도 응급환자만큼은 빨리 치료받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는 “전공의 공백으로 이탈 이전보다 뺑뺑이가 더 심해졌다고 보긴 힘들다. 그것보다는 예정된 수술이 미뤄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뒤 “지역ㆍ필수 의료의 핵심이 응급의료다. 이번 계기로 응급의료 문제는 지방정부와 지역 상급종합병원, 지역의사회가 협력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채혜선ㆍ문상혁ㆍ남수현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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