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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주간 뉴스타파> 세월호 참사 10년...이제는 알게 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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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년...이젠 설명할 수 있는 '그날의 실패'
전 국민이 충격과 비탄에 빠졌던 2014년 4월 16일로부터 10년이 흘렀다. 어떻게 그런 참혹한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밝히기 위해 10년 동안 9개의 국가기관이 가동됐다.

참사 직후부터 검경합동수사본부 수사와 해양심판원 조사,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조사가 잇달아 진행됐다. 2015년부터는 특별법으로 설립된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선체가 인양된 2017년부터는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가, 그리고 2018년부터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가 조사 활동을 이어갔다. 사참위 활동 기간 중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과 세월호 DVR 특별검사의 수사도 있었다.

10년에 걸친 수사·감사·조사 과정에서 확보된 사실관계들과 기록들을 토대로, 이제 세월호 진상 규명의 두 축인 '침몰 원인'과 '구조 실패 이유'가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게 됐다.

10년의 진상규명 노력을 통해 그날 304명이 희생된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세월호는 ▲사소한 기계적 결함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정도로 취약했고, 결코 사람을 태워선 안 되는 배였다. ▲선원은 승객을 대기시켜 놓은 채 자신만 살기 위해 먼저 탈출했다. ▲해경은 지휘부부터 말단까지 집단적으로 무능하고 조직적으로 무책임했다. (기사 보기 : 세월호 진상규명 10년..."왜 침몰했고 왜 못 구했나")

국민 90% 세월호 침몰 원인 몰라...3차례 조사위원회 실패가 결정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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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의 설문조사 결과, 세월호 침몰 원인이 밝혀졌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36.4% 뿐이었다.
그러나 참사 10년이 지난 현재, 대다수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한다. 뉴스타파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4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 동안 전국 남녀 1천 명에게 설문조사(표본오차 : 95% 신뢰수준, ± 3.1%p)를 실시한 결과, 세월호 침몰 원인이 밝혀졌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36.4% 뿐이었다. 이 가운데 다시 35.7% 만이 세월호가 복원성 불량 상태에서 조타장치 고장으로 급선회하다 쓰러져 침몰했다는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 표본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대략 10% 정도만이 세월호 침몰 원인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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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타파의 설문조사 결과, 304명이 구조받지 못한 이유가 규명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34.6%로 나왔다.
304명이 구조받지 못한 이유가 규명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도 34.6%로 전체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이들이 생각하는 구조 실패의 책임 소재는 승객을 대기시켜 놓고 자기들만 탈출한 선원 46.3%, 안일한 판단과 엉성한 지휘를 했던 해경 지휘부 35.7%, 무능했던 현장 해경 대원 9.4%였다. 선원과 해경의 책임이 대략 절반씩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세월호 침몰 원인 보다는 이해도가 높지만 전체의 3분의 2는 구조 실패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10년의 수사와 조사를 통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참사의 원인을 대다수 국민들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이 상황은, 세월호 특조위와 선조위, 사참위 등 3개의 국가 조사위원회들이 안팎의 이유로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세월호 참사는 특별법에 따른 국가 조사위원회가 사회적 재난·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담당하도록 한 역대 첫 번째 사례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등 세월호 이전의 대형 참사들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 결과가 곧 진상규명 결과였다. 즉, 참사가 발생하면 즉시 수사를 벌여 책임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으로 진상규명을 완료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검찰과 경찰 수사가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서 국회가 특별법을 만들어 조사위원회로 하여금 진상을 조사하도록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사'와 '조사'의 차이다. 수사의 목적은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다. 참사의 원인이 누군가의 위법이나 범법 행위 때문이었다고 보고, 그 사람을 찾아내 기소하고 재판해 법적으로 처벌받게 하는 것이다. 이때 위법과 범법을 입증하기 위해선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모든 재난이나 참사는 반드시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원인 때문에만 발생하지 않는다. 예컨대 제도 자체가 잘못돼 있었거나 시스템이 오작동한 경우, 또 위법은 아니지만 편법적인 관행이 있었거나 특정 행위자의 나태 혹은 안일한 판단이 있었을 경우에는 법적 처벌이 어렵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이 우연히 비극적으로 결합하는 순간 대형 재난이나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재난과 참사에 대한 진상조사는 법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더라도 분명히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모든 요소들이 어떤 인과관계로 얽혔는지 확인해 보고서로 정리하는 것, 그리고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을 권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측면에서 3개의 세월호 조사위원회들은 '조사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그렇게 된 이유는 각 조사위원회마다 차이가 있다.

정부 방해와 탄압으로 좌초한 세월호 특조위
참사 직후 검경합수부 수사와 감사원 감사, 해양심판원 조사, 국회 국정조사가 잇달아 진행됐다. 그러나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데에는 모두 한계가 있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국회에 특별법 제정을 청원하는 서명에 무려 650만 명의 국민이 참여했다. 여야 협상 끝에 2014년 12월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2015년 1월 1일부터 세월호 특조위가 출범했다.

특조위는 이석태 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상임위원과 12명의 비상임위원 등 모두 17명의 조사위원으로 구성됐다. 여야 정치권이 각 5명씩, 유가족이 3명, 변호사협회와 대법원이 각 2명씩을 추천했다. 17명 중 14명이 변호사나 법학 교수 등 법률 전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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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17명 가운데 14명이 법률가로 구성됐던 세월호 특조위 조사위원
특조위는 우선 시행령 마련과 예산 배정, 조사관 채용 등을 위한 설립준비단 성격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난감한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김재원 원내대표가 "특조위는 세금도둑"이라는 발언을 내놓아 논란을 추부기자, 정부가 특조위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여당 추천 조대환 부위원장은 설립준비단에 파견돼 있던 정부 공무원들을 독단적으로 철수시켰다. 청와대는 국회가 추천한 조사위원들의 임명장 수여를 차일피일 미뤘고, 이를 빌미로 여당 추천 황전원 위원 등이 "특조위원들이 정식 임명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위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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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견 공무원 통해 특조위를 통제하고자 했던 정부 시행령
가장 심각했던 건 시행령 문제였다. 정부는 특조위 전원위원회에서 다수결로 의결한 시행령안 대신 여당 추천위원들끼리 만든 시행령안을 수용해 정부안으로 고시했다. 진상규명국장 등 핵심 직위를 모두 정부 파견 공무원들이 맡고, 숫자를 대폭 축소시킨 조사관들을 여당 추천 조대환 부위원장이 직접 지휘하고 감독하도록 했다. 이석태 위원장은 정부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을 직접 만나 부당성을 알렸다. 장관급 위원장이 거리로 나서 정부와 맞서는 보기 드문 사례였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들도 정부를 규탄했다. 논란 끝에 주요 직위를 별정직으로 채우고 조사관 숫자를 점진적으로 늘리는 절충안이 마련되며 특조위는 가까스로 조사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풍파는 멈추지 않았다. 2015년 11월 특조위는 전원위원회에서 참사 당일 청와대와 대통령이 적정하게 대응했는지를 조사하는 안건을 부의할 방침이었다. 이때부터 여당 추천 조사위원들과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합동 공세가 시작됐다. 여당 추천 황전원 위원은 특조위가 청와대 조사를 개시한다면 여당 추천 조사위원 전원이 사퇴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이석태 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특조위 해체도 검토하겠다는 강성 발언을 내놓았다. 이는 해수부가 미리 작성해 공유한 '대응 문건'에 담긴 시나리오대로 진행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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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1월 19일, 해수부의 '대응 방안 문건' 그대로 기자회견 연 황전원 특조위 비상임위원(새누리당 추천)
결국, 정부는 2016년 6월 30일부로 특조위 조사 활동을 종료시켰다. 시행령도, 예산도, 조사관도 없이 설립을 준비하고 있던 2015년 1월 1일부터 특조위가 조사 활동을 시작했다는 억지 법률해석에 따른 조치였다. 일부 조사관들이 정부 방침을 거부하고 조사 활동을 이어가며 3차 청문회까지 열었지만, 결국 특조위는 9월 말에 완전히 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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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의 염원과 국민적 지지로 출범한 세월호 특조위가 정부의 노골적인 방해 끝에 강제 해산된 사태는 이후의 진상규명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참사의 결정적 책임을 은폐하기 위해 특조위를 해산한 것이라는 의혹이 확산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 시기 해경 구조세력 가운데 현장 말단 지휘관인 123정장만이 형사처벌을 받자, 유가족과 시민단체 내부에는 참사의 진짜 책임자인 윗선을 처벌해야 한다는 기조가 뚜렷하게 형성됐다. 즉, 세월호 진상규명의 목표가 참사의 원인을 촘촘히 조사해 더 안전한 사회로 이행할 방안을 제시하는 것에서 가급적 윗선의 책임자를 찾아내 형사처벌하는 쪽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이 시기에 잠수함 충돌설이나 AIS 항적 조작설, 앵커침몰설 등 여러 음모론적 가설들이 제기돼 대중적으로 확산됐던 배경이다.

내인설과 열린안...엇갈린 2권의 보고서 발간한 선조위
특조위가 해산한 직후인 2016년 말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며 촛불 정국이 형성됐다. 결국, 박 대통령은 탄핵됐다. 그리고 2017년 3월 23일, 2년 가까이 시도한 선체 인양이 성공해 세월호는 1,703일 만에 물 위로 떠올랐다. 세월호는 특조위를 탄압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구속된 날 목포신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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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몰 1,073일 만인 2017년 3월 23일 인양된 세월호 선체
세월호 선조위가 조사 활동 개시를 선언하고 침몰 원인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위원은 모두 8명으로 조선해양 전문가 6명과 변호사 2명이었다. 조사관들 대부분도 해기사 자격 소지자로 구성됐다. 초기 조사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당시까지 9명이던 미수습자 유해 수습을 위해 선체 내부에 가득 들어찬 펄을 조심스럽게 빼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승객 휴대전화 화물칸에 실려 있던 차량 블랙박스 등 많은 디지털 기기들이 수습됐다. 선조위는 민간 전문업체에 디지털 포렌식을 통한 복구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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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해양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됐던 세월호 선체조사위원
그런데 묘한 상황이 펼쳐졌다. 화물칸 2층인 C데크에 있던 한 차량의 블랙박스 메모리에서 사고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처음 복구된 건 2018년 5월 말. 그런데 이 자료는 선조위 조사팀에 공유되지 않았다. 다른 차량들에서도 연이어 사고 당시 영상들이 복구돼 권영빈 상임위원에게 보고됐지만, 3개월 가까이 조사팀에 전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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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5월 말 민간 포렌식 용역 업체가 복원시킨 화물칸 2층 트럭의 블랙박스 영상
뉴스타파 취재 결과, 권영빈 소위원장은 복원된 영상을 사고 조사 용역을 맡은 영국 브룩스벨에 전달하지 않으려고 영상 복원 사실을 함구하고 있었다. 복수의 선조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브룩스벨은 김창준 선조위원장이 주도해 핵심 조사 용역을 의뢰했는데, 권영빈 소위원장은 김창준 위원장이 브룩스벨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며 불만이 많았었다. 이에 권 소위원장이 12월 초 중간보고서를 제출하기로 되어 있던 브룩스벨에 블랙박스 영상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복원 사실을 내부에 알리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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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뉴스타파는 이미 6월 초에 블랙박스 복원 영상 일부를 입수해 분석 취재를 진행 중이었으며, 선조위가 복원 사실을 공식 발표하면 보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권 소위원장이 12월 초까지 영상을 조사팀에 공유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뒤 즉각 보도를 결정했다. 활동 기간이 불과 1년 남짓인 선조위가 자칫 침몰 원인을 밝힐 핵심 자료를 조사에 활용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17년 9월 15일, 뉴스타파가 블랙박스 동영상을 공개했다. 선조위가 복원한 영상을 김창준 위원장과 대다수 조사관들이 뉴스타파 보도를 통해 처음 보게 되는 기막힌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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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9월 15일 뉴스타파 보도 영상
블랙박스 복원 영상은 즉각 조사 자료로 활용됐고 매우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사고 당시 세월호는 좌현 18도까지 순식간에 기울었고, 그때부터 화물이 이동해 46도까지 급격히 기울었음이 영상으로 확인됐다. 이는 세월호가 쓰러진 핵심 원인이 지극히 취약했던 복원성 때문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제 다음 과제는 세월호가 왼쪽으로 쓰러지게 만든 오른쪽 방향의 선회가 무엇 때문에 시작됐는지를 밝히는 일이었다.

그 무렵 국회에서는 선조위에 이후 진상조사를 이어갈 사참위의 법적 근거를 담은 특볍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본회의에 상정돼 있었다. 권영빈 소위원장은 전원위원회 등에서 선조위가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반드시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수 차례 내놓았고, 일부 조사위원들이 이에 반발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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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빈 소위원장은 2017년 10월 20일 전원위원회에서 "선조위가 진상규명의 종지부를 찍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3개월여 뒤인 2018년 1월 말, 선조위는 세월호 타기실에 진입해 조타장치를 분리해 점검했다. 그 결과, 방향타를 돌리는 유압의 흐름을 제어하는 조타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이 정상 위치인 중립을 벗어나 한쪽으로 밀려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이런 상태에선 조타실에서 조타 핸들을 어떻게 조작하든 방향타는 계속 오른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의 초기 횡경사를 야기한 모멘텀이 조타장치 고장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고, 세월호가 쓰러지게 된 원인과 경위를 설명할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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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립 위치를 벗어나 한쪽으로 밀려들어가 있는 2번 타기펌프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
그런데 이 직후 또 다시 석연찮은 일이 발생한다. 선조위 내부에서 새누리당 추천 이동곤 위원에 대한 '증거 은폐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2014년 당시 한국해양선박플랜트연구소(KRISO) 소속이던 이동곤 위원이 검찰의 의뢰로 세월호 자유모형 항주시험을 실시해 놓고도 결과 보고서를 최종적으로 검찰에 제출하지 않았는데, 이는 당시 검찰이 내린 세월호 침몰 원인과 부합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으며, 이후 선조위 조사위원이 된 이동곤 위원이 이런 사실을 일체 함구한 것은 세월호 침몰의 핵심 증거를 은폐한 행위라는 것이었다. 이동곤 위원은, 당시 검찰 의뢰로 모형시험을 실시해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세월호 선원이 적재물 중량에 대해 진술을 번복해 시험의 원데이터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이에 검찰이 바뀐 데이터로 재시험을 요청했지만 예정된 재판 때까지 시험을 완료할 수 없다고 하자, 검찰에서 법정 증거 제출을 하지 않겠다며 재시험 의뢰를 취소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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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조위 조사관의 제보로 이뤄진 2018년 3월 6일 SBS 단독보도
2018년 3월 6일 SBS가 이 의혹을 단독 보고했다. 한 선조위 조사관의 제보에 따른 것이었다. 즉각 416연대와 유가족들이 이동곤 위원의 사퇴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한 유가족은 단식에 돌입했다. 이들은 이동곤 위원 뿐만 아니라 검찰 자문단에 참여했던 김철승 위원, 해양심판원 보고서를 자문했던 김영모 위원, 이동곤 위원의 모형시험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던 공길영 위원까지 모두 '해양 적폐 세력'으로 규정하고 사퇴를 요구했다. 선조위는 이동곤 위원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하고 다른 세 위원은 자체 조사 결과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유가족 추천 위원이었음에도 유가족으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던 공길영 위원은 그 이후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공길영 위원과 이동곤 위원은 세월호가 복원성 불량 상태에서 조타장치 고장으로 쓰러졌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두 위원이 빠지면서 '내인설' 지지와 반대 구도는 3대3으로 재편돼 선조위 종료 시까지 유지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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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인설 입장이던 이동곤 위원 사퇴를 주장하며 농성하는 416연대와 세월호 유가족
얼마 뒤 2018년 4월 13일, 선조위는 '외력검증TF'를 정식 발족시켰다. 권영빈 소위원장이 주도하고 이동권, 장범선 위원이 참여했다. 약 3개월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외력검증TF는 거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월호 좌현 핀안정기가 작동 한계각인 25도의 두 배가 넘는 50.9도까지 회전해 있는 것을 외력 작용의 결과라는 가설을 세웠지만, 이는 선체가 침몰해 해저면에 닿을 때 발생할 가능성이 더 컸다. 장범선 위원은 좌현 핀안정기에 수중 물체가 충돌하는 시나리오는 성립 불가능하다는 TF 내부보고서를 썼다. 네덜란드 마린에 의뢰해 좌현 핀안정기에 외력을 작용시킨 모형항주시험도 실시했지만, 마린은 외력 가설은 비현실적이라는 최종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러자 '외력설 그룹'은 좌현 핀안정기실 부근 외판의 균열과 내부 기둥의 변형이 외력 때문으로 보인다며 가설을 수정했다. 그러나 이 손상들은 이미 반 년 전에 조사관들이 조사해 인양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보고서에 담겨 있던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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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력 가설은 비현실적 시나리오"라고 적시한 마린의 자유항주 모형시험 최종보고서
선조위 내 일부 그룹이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외력을 주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내인설에 대한 유가족들의 정서적 거부감이 있었다. 유가족들은 내인설의 핵심인 복원성 불량의 개별 요소들, 즉 무리한 증개축과 과적, 고박 불량, 평형수 감축 등을 '사소한 이유'로 받아들였다. 또 급선회의 모멘텀이었던 조타장치 고장은 마치 세월호 침몰을 일종의 '교통사고'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당시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이었던 고 장준형 군 아버지 장훈 씨는 "그때 가족들에게는 그런 사소해 보이는 이유들보다는 뭔가 불가항력적인 사고가 있었고 그걸 은폐한 세력이 있었다는 서사가 아이들에게 덜 미안하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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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빈, 이동권, 장범선 위원이 서명한 열린안 종합보고서
이런 유가족들의 정서에 편승한 '외력설 그룹'은 자신들의 관점에 맞는 별도의 종합보고서 작성을 요구했다. 권영빈, 이동권, 장범선 등 3명이 내인설 보고서 초안 중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 반론을 다는 식으로 고쳐 써 '열린안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장범선 위원은 조타장치 솔레노이드 밸브 오작동에 따른 급선회는 인정하면서도 선체 외벽 균열은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어서 사실상 또 다른 버전의 내인설로 볼 수 있었지만, 결국 열린안 보고서에 최종 서명했다. 이렇게 두 권의 종합보고서가 발간됐다. 열린안 보고서는 자체적인 세월호 침몰 시나리오도 제시하지 못하는 내용이었음에도 언론은 두 개의 보고서를 동등하게 취급했고 "선조위가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둘로 나뉜 보고서는 이후 사참위가 기우제식 외력 조사를 이어가는 근거가 됐다.

'책임자 처벌' 집착해 과도한 의혹 제기성 조사 치중한 사참위
선조위 조사가 마무리로 치닫던 2018년 3월 말, 사참위가 전원위원회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조사위원은 9명. 가습기살균제 참사 조사도 병행해야 했던 이유로 보건환경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로 구성됐다. 사참위는 2018년 12월 조사 개시를 공식 선언한 뒤 2020년 말 특별법 개정으로 활동 기한을 더 보장받아 2022년 6월까지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조사의 기조가 '책임자 처벌의 근거 마련'으로 형성된 끝에 과도한 의혹 제기성 조사에 치중했고, 참사의 핵심 원인에 대해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3년 3개월의 긴 활동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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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경빈 군 헬기 이송 지연 의혹 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있는 사참위 박병우 진상규명국장
이런 평가의 근거가 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임경빈 군의 헬기 이송 지연 의혹이었다. 참사 당일 오후 5시 반쯤, 침몰한 세월호 선체 인근에서 해경 구명보트가 임경빈 군을 발견해 끌어올렸고, 곧 3009함으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원격의료시스템으로 목포한국병원 의사의 의료 지도를 받았는데, 의사가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지시했음에도 3009함에 있던 헬기를 김석균 해경청장과 김수현 서해청장이 타고 가버린 탓에 경비함으로 옮기다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 사망하게 됐다는 게 사참위 조사 내용이었다.

사참위 박병우 진상규명국장은 당시 채증영상 속에서 임경빈 군의 산소포화도가 69로 나타나 있다며, "다수의 응급의학 전문의들에게 자문한 결과, 산소포화도 69는 생존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도저히 사망했다고도 볼 수 없는 수치로 긴급하게 병원으로 이송해야 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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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참위 조사관들이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 작성한 내부 보고서
그러나 뉴스타파가 입수한 사참위 내부 보고서를 보면,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공통 의견은 ▲영상 속 임경빈 군의 상태는 생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이고 ▲산소포화도 69는 사망 상태에서도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수치이며 ▲당시 해경 함정에는 2급 응급구조사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의사로서는 병원으로 데려오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의료지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임경빈 군에 대한 원격 의료지도를 했던 목포한국병원 의사가 사참위에 진술한 내용도 대동소이했다. 영상 속 임경빈 군의 상태는 이미 사망한 지 오래된 것으로 보이며, 당시 현장 응급구조사들은 의료법상 사망 판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병원으로 데려오라고 했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사참위는 발표 당시 이런 조사 내용들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해경의 초동대응 조사를 담당했던 이준태 전 사참위 조사관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임경빈 군 사건에 대한 내부 조사 보고서들을 뒤늦게 공유받아 읽은 뒤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조사 윤리의 문제라고 판단해 위원장과 국·팀장 등에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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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태 조사관이 작성한 조사결과보고서(왼쪽)과 사참위 종합보고서
해경의 형사 처벌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종합보고서에 실리지 않은 조사 내용도 있었다. 이준태 전 조사관은 해경의 구조 실패 이유를 다각도록 규명하기 위해 참사 이전 10년 동안 해경의 구조 훈련 내역 일체를 자료로 제출받아 분석했다. 그 결과, 해경 경비함정과 헬기들은 해상에 떠 있거나 조난된 소형선에서 대기 중인 사람을 옆으로 끌어올리는 훈련만, 그것도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의례적으로 실시해 왔다. 대형 여객선에 진입해 승객을 퇴선시키는 훈련은 한 번도 실시한 적이 없었다. 이 내용은 이 전 조사관이 쓴 조사결과보고서에 기재됐지만, 사참위 종합보고서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당시 진행 중이던 해경 지휘부 재판에서 이른바 '면죄부'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국팀장급에서 이 내용을 누락시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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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참위의 잠수함 추돌 시뮬레이션 영상 캡처
세월호가 잠수함과의 충돌로 크게 기울어져 침몰했다는 의혹 조사도 결국, 참사의 원인을 은폐한 자를 찾아 처벌하겠다는 목적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를 위해 사참위는 선조위 내인설을 기각하고 외부 충돌을 입증하기 위한 조사에 매달렸다. 좌현 핀안정기의 과도한 회전과 선체 외벽의 균열 등 선조위 외력검증TF가 했던 조사를 거의 똑같이 반복했다. 하지만 대한조선학회와 네덜란드 해양연구소 마린 등 국내외 전문기관에 의해 기각됐다.

그럼에도 사참위는 "외력 가능성을 조사했지만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모호한 결론을 종합보고서에 담았다. 선조위와 사참위 종합보고서 외부 집필진으로 참여했던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외력에 대한 집중적 조사를 벌이고도 그 결과가 전문기관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면 기각 결론을 내리고 다른 합리적 설명을 내놔야 했다. 그러나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난과 유가족들의 실망이 두려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사실상 아무것도 밝히지 못했다는 식의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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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VR 바꿔치기 의혹' 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있는 사참위 박병우 진상규명국장
세월호 AIS 항적이 조작됐다는 의혹도 이미 선조위에서 검증 조사를 마쳤음에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하지만 언론 검증 보도로 반박되고 검찰 특수단 수사로 기각됐다. 세월호 선내 CCTV 영상 저장장치인 DVR이 바꿔치기되어 내부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의혹 조사도 마찬가지였다. 검찰 특수단과 DVR 특검 수사 결과 모두 기각됐다. 두 의혹에 대한 조사결과보고서는 결국 전원위원회에서 채택되지 못해 종합보고서에 실리지 않았다. 사참위 차원에서 최종 기각 결정을 내린 셈이다.

이런 의혹들에 대한 조사에 그토록 집착한 것은 왜였을까. 박병우 진상규명국장이 사참위 인트라넷 게시글의 일부에서 단초가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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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병우 진상규명국장의 사참위 인트라넷 게시글 일부
위 문장 속에는 실제 존재했던 사실이 단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가정에 가정을 덧대고 추정에 추정을 거듭해 국가기관이 참사의 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증거 조작에 골몰하느라 승객도 구조하지 못했다는 무리한 가설을 세웠던 셈이다. 박병우 국장은 전체 사참위의 조사관들을 지휘한 실무 수장이었다.

이태원 참사와 미래의 또 다른 재난들, 어떻게 조사해야 하나
사참위가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명확한 결론도, 구조 실패에 이유에 대한 구조적인 설명도 담지 못한 종합보고서를 발간하고 활동을 마친 얼마 뒤, 서울 한복판 골목길에서 150여 명이 압사하는 믿을 수 없는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 발생 9년을 향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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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는 유가족들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랬듯, 이태원 유가족들도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국회 국정조사로 책임자들을 추궁하고 검찰 수사로 그중 몇 명이 기소됐지만 그것만으로 그날 벌어진 일이 온전히 설명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그랬듯, 이태원 유가족들도 거리로 나섰다. 특별법을 제정해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국회가 특별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석태 전 세월호 특조위원장은 "이렇게 하면 유가족과 국민들은 정부가 뭔가 엄청난 책임을 숨기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게 된다"며 '우매한 대응'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특조위를 정부가 방해해 과도한 의혹들이 확산되고 그로 인해 진상 조사가 자꾸만 굴절되었던 것처럼, 어쩌면 이태원 진상 조사의 첫 단추도 이미 절반쯤은 잘못 끼워진 것일지 모른다.

22대 총선에서 야권이 압승하면서 이태원 유가족들에게도 다시 희망이 생겼다. 다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신발끈을 죈다. 그런데 만약 특별법으로 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진상이 밝혀지는 것일까. 이태원 조사위원회가 3개의 세월호 조사위원회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조사위원의 구성이다. 3개의 세월호 조사위원회는 큰 틀에서 여야 정당이 추천하는 조사위원의 비중이 절대적이고 일부를 유가족이나 대법원 등에 배분하는 방식이었다. 국회가 민의를 대표하는 기관이라는 취지가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야 정당의 정치적 입장 차이가 참사 조사라는 영역으로 그대로 이식되어 정쟁으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였다. 국회 여야 추천의 취지는 살리되 비중은 크게 줄이는 방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참사의 성격에 맞는 전문성을 갖춘 조사위원 구성도 중요하다. 대다수 재난·참사의 원인에는 기술적 시스템의 오작동이 포함된다. 심지어 자연재해에 따른 재난의 경우에도, 재해 방지를 위해 구축한 기술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지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는 해상에서 운항하던 선박에서 발생했음에도 특조위와 사참위 조사위원 가운데는 조선해양 전문가가 1명도 없었고, 이는 특히 사참위에서 침몰 원인 관련 결론을 제대로 못 내린 것과 관계되었을 수 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라면 도시설계, 경찰행정, 응급의학 등 참사 관련 전문 분야를 먼저 고민해 조사위원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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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던 해밀턴호텔 옆 골목길
조사위원 및 조사관들과 참사 피해자들 간에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제도적 방안도 모색되어야 한다. 조사위원회와 참사 피해자 간의 긴밀한 소통은 필수적이다. 이는 조사의 투명성을 제고해 신뢰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정서적 위안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소통 과정에서 피해자의 관점이나 입장이 과도하게 개입될 경우, 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이 침해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재난·참사 조사의 의미와 한계, 그리고 조사위원회의 최종 목표에 대해 출범 단계부터 명확한 인식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 재난·참사에 대한 조사는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지 않는 이상, 발생 당시의 상황들을 100% 완벽하게 복원해낼 수 없다. 세월호 모형시험을 통해 참사 당일의 항적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고, 경향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조사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또한 모든 조사는 일정 시간이 지나 이뤄지므로 그 사이 일부 증거나 자료들이 소실됐을 여지도 있다. 세월호 증개축 이후 무게중심을 측정한 경사시험이 엉터리로 이뤄졌지만 얼마나 오차가 있었는지는 영원히 확인할 수 없고, 사고 당시 세월호에 실려 있던 정확한 평형수 양을 알 수 있는 자료도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조사위원회는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설명이 가능한 결론을 도출해 보고서의 형식으로 피해자와 국민에게 보고하는 것이 최종 임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선조위와 사참위 모두 이 임무를 지키지 못했다. 이태원 조사위원회에선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뉴스타파 김성수 sskim@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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