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전 경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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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스탠퍼드대가 4월 15일에 발표한 2024 인공지능(AI)인덱스는 한국의 AI 실력을 충격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은 '주목할 만한' 초거대 AI 모델이 한 개도 없으며(14개국은 한 개라도 보유), 2023년 한해동안 '주목할 만한' 기계 학습 모델을 한 개도 발표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10개국은 두 개라도 보유).
지난 1월 ET시론에 '2024 한국 인공지능은 위기다'라고 썼는데, 스탠퍼드대가 현재 한국의 AI 수준을 세계 10위권 밖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1년 전 한국은 생성형 AI 분야에서 세계 3위권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이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은 이제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중이다.
한국 사람이 위기라고 할 때는 잘 안듣다가 스탠퍼드가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자료가 누락되었다고 과기정통부가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내는 것을 보는 것도 슬픈 일이다. 이율곡의 십만양병설이 왜 지금도 계속 회자되는지 이해가 된다.
(왼쪽) 2023 주목할만한 초거대 AI 모델 개발 국가 랭킹, 한국은 등외 / (오른쪽) 2023 주목할만한 기계학습 모델 개발 국가 랭킹, 한국은 등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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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AI 전문가는 한국은 프런티어 AI(초거대 AI)를 포기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프런티어 AI는 다른 나라의 것을 가져다 쓰고, 한국은 그것을 응용하는 AI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 것으로 경청할 만하나 40년 전으로 돌아가 삼성의 이병철 회장께서 반도체를 해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냥 가전제품이나 컴퓨터 조립이나 하지 무슨 반도체 제조를 하냐라고 미리 포기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싶다.
한편 이런 주장도 있다. 우리는 한국이므로 한국어를 잘하는 한국산 프런티어 AI를 잘 보유하면 되지 않는가라는 것이다. 이 역시 설득력이 있어보이나, 현재 GPT-4나 Claude-3를 써보면, 한국어도 곧잘 한다. 성능이 좋은 AI는 언어를 따지지 않는 듯하다. 한국어만 특별히 잘하는 AI가 있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나 과학적 증거가 없다. 오히려 모든 면에서 잘하는 AI가 외국어도, 한국어도 잘하더라는 경험적 증거가 더욱 강한 상황이다.
AI는 아직 초기다. 오픈AI도 앤쓰로픽에 추격당하고 있고, 그 뒤를 구글, 메타, 캐나다의 코히어, 그리고 중국 기업들이 추격하는 상황이다.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생성 AI 서비스는 고착화(Lock-in) 효과, 네트워크 효과 등이 크지 않아서, 1등이 누리는 장악력이 아직 크지 않다. 성능이 좋고, 비용이 저렴하면, 사용자는 큰 전환 비용없이 AI 서비스를 교체할 수 있다. 따라서 아직 한국이 포기하기는 이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번 스탠퍼드대 발표에서 실망스러운 것이 한국의 AI 민간 투자가 9위 수준이라는 점과 새로 펀딩을 받은 AI 스타트업의 수로 본 랭킹도 10위권이라는 점이다. 눈높이가 높아진 한국의 국민들이 기대하는 순위는 적어도 세계 5위 이내일 것이다.
최근에 정부가 발표한 정책 목표도 AI분야 G3이다. 그러면 적어도 투입량의 순위가 3위 이내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 투입의 양뿐만 아니라 투입의 효과성과 효율성도 3위 이내가 돼야 AI분야 G3가 달성되고, 이를 원동력으로 한국이 세계 G3 국가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왼쪽) 2023년 민간 AI 투자 국가별 랭킹, 한국은 9위 / (오른쪽) 2013~2023년 2023 민간 AI 투자 국가별 랭킹, 한국은 9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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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AI에 대한 민간 투자 규모를 단기간내에 3위 이내로 끌어 올려야 한다. 민간 투자가 세계 3~4위권에 들어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고 마중물 자금을 써야 한다.
대기업이 벤처에 투자 못하게 하는 제도를 혁파하고, 금융과 같은 규제 산업에 진입장벽을 낮춰서, 수요 산업이 경쟁하게 해야 AI가 저절로 발전한다. 예를 들어 지금 금융권은 AI를 안써도 돈을 쉽게 벌기 때문에 AI 도입을 흉내만 내고 있는 실정이다.
(왼쪽) 2023년 신규 투자 유치 AI기업수 국가별 랭킹, 한국은 8위 / (오른쪽) 2013~2023년 신규 투자 유치 AI기업수 국가별 랭킹, 한국은 11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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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정부라도 선도해 자금세탁방지 AI, 금융범죄방지 AI 등 금융권 AI 도입을 추동해야 하는데, 금융위원회나 금융정보분석원이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다.
결국 각 산업에 경쟁을 고양시켜야, 경쟁무기인 AI의 도입이 저절로 유도되고, AI 창업이 늘어나고, 이를 뒷받침할 민간투자가 늘어난다. 대기업의 R&D를 국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을 중지하는 대신,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세금 혜택을 주는 방법도 있다. 정부가 대기업에 R&D 지원을 중단하면 대기업은 정부 자금에 의존하는 R&D보다는 자체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R&D에 집중할 것이고, 학계, 스타트업, 중소기업의 R&D를 직접 지원하거나 투자해 시너지를 내는 방법에 더욱 눈을 돌릴 것이다.
정부 R&D는 그저 쪼개서 나눠주기식으로 해서는 효과가 미약하다. 한국이 이렇다 할만한 AI 모델이나 머신러닝 모델은 못만들면서, 특허는 양산(인구 1인당 AI 특허 등록 1위)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 R&D의 평가지표 때문일 것이다.
많은 변리사들이 특허를 위한 특허들이 정부 R&D에서 양산되는걸 보면서 낙담하는 것을 경험한 일이 여러 번 있다. 사회적으로는 낭비인 특허 출원, 등록과 논문 출판이 많은 것이다. 대학에서의 평가와 정부 R&D의 평가가 논문이나 특허 등 양적인 평가에 그치기 때문이다. 국민의 혈세 낭비이며, 연구자들의 노력과 시간의 낭비다. 예산은 논문이나 특허를 양산하는 것보다는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가서 민간의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인센티브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캐나다 영화 블랙베리를 보면 2007년에 아이폰이 나왔는데도 블랙베리 창업자 겸 CEO는 키보드폰을 끝까지 고수한다. 직원들과 본인들 조차 아이폰을 보면 긴장이 되어 얼굴이 굳어져가는데도 새로운 혁신을 하지 못한다. 구글과 네이버와 같은 기존 기업은 현 생성형 AI 시대에 블랙베리와 같은 딜레마에 빠져있기에 네이버가 생성형 AI 서비스 조직을 분사하기 이전엔 하이퍼클로바X도 어렵다고 본다.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등 AI 선진국도 스타트업이 생성형 AI 리더인 것처럼, 한국도 스타트업이 AI 산업리더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그나마 다행인게 4월 16일에 업스테이지 1000억원 투자 유치 소식인데 투자 규모가 너무 작다. 최소 1조원 이상 투자 유치가 나와야한다.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 등에 17조원 이상 투자 받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번 업스테이지의 투자 규모는 아직 100분의 1도 안되는 상황이다.
엔쓰로픽이 구글과 아마존으로부터 도합 60억달러(8조원 이상)을 투자받았다. 정부 정책은 민간의 대규모 투자가 AI로 들어가는 마중물과 인센티브 창조와 장애물 제거에 집중돼야 하고, 정부는 스스로 그 물꼬를 시원하게 터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손정의 회장, UAE 등 국외 거물급 투자 펀드가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정부가 촉매가 돼야 한다.
한국은 프런티어 AI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AI 응용 산업을 육성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투 트랙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AI기반 대화형 직거래 시장, AI기반 소셜 미디어, 개인용 AI 에이전트, 생성 AI기반 콘텐트/엔터테인먼트 산업, AI 퍼스트 R&D 산업, 연합학습 기반 데이터 뱅크 산업, 금융범죄방지AI산업, 원격AI의료 산업, AI기반 IoT제조업 등 AI 응용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 개혁과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학 빅데이터 응용학과 교수 klee@khu.ac.kr
〈필자〉KAIST에서 경영과학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대에서 행정학 석사,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 로보틱스연구소와 MIT, UC버클리에서 연구했다. 미국인공지능학회(AAAI)가 수여하는 혁신적 인공지능 응용상을 네 차례 수상했고 AI Magazine 등 국제학술지에 40여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현재 경희대 경영대학, 빅데이터응용학과, 첨단기술비즈니스학과 교수이며 빅데이터 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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