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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부수지 않고, 고쳐쓴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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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인터뷰

밝고 따뜻한 건축·폐자재 적게 나오는 리모델링 지향

“동네 분위기 바꾸고, 인근 시세에도 긍정적 영향 미쳐”

웰에이징센터·세운 옥상·묵동 어르신문화센터 등 눈길

헤럴드경제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 건물 전경 [배지훈 작가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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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용산구 후암동 한 후미진 골목길에 밝은 노란빛의 건물이 들어섰다. 한때 공사가 중단되며 경매까지 넘어갔던 사연 많은 이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재탄생했다. 이 건물을 직접 고쳐 사무실로 쓰고 있는 박현진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를 지난 4일 만났다. 박 대표는 사무실 건물에 대해 “과거에는 노숙자, 청소년들이 들락날락해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설치할 정도의 황폐한 공간이었고, 주변에도 쓰레기가 늘어나는 등 기분좋지 않은 공간이었다”라며 “(리모델링으로) 동네 분위기를 확 바꾸고, 인근 시세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벌써 리모델링한지 10년 가까이 된 이 건물은 ‘따뜻한 건축’을 지향하는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박 대표는 낡은 건물을 무조건 부수고 새로 짓기 보다, 폐자재가 적게 나오는 리모델링을 지향한다. 기분 좋은 생경함을 선사하는 밝은 색감의 건물은 오래된 골목길을 환하게 밝힌다.

사무소 명칭도 이런 뜻을 담았다. “‘온’은 한자로 하면 따뜻하다(溫)는 뜻도 있고, 순 한글로는 ‘완전하다’는 의미도 있지요. 영어로는 킵 고잉(keep going)의 뜻도 담겼습니다. 계속 성장을 해나가며 작품을 완전히 하고, 이를 통해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이 두루 담겼습니다.”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가 그동안 선보인 작업물들도 공통적으로 밝고 따스한 인상을 준다. 사소한 것을 방치하면 범죄나 사회문제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이 있듯, 반대로 건축물이 주변 환경과 도심 미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는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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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따스한 인상 ‘강남구 웰에이징센터’전경 [박영채 작가 촬영]


‘2023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장관상을 수상한 강남구 웰에이징센터가 대표적이다. 이 건물은 지상 주차장을 노인 건강증진 공간으로 리모델링했는데, 층고가 낮고 어두컴컴하던 공간의 환기와 채광에 공들였다. 박 대표는 “건물이 바뀌며 주변도 환해졌다. 낮에는 (건물 외관이) 자연빛에 반사되고, 저녁에는 조명만 살짝 켜도 부담스럽지 않고 인근 공원과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며 “이는 도시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건물 외관의 빛 반사를 위해 차가운 느낌을 주는 펀칭 메탈 자재로 마감했지만, 내부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고려했다. “건축물은 나를 반긴다는 듯한 공간이 있는가 하면 검찰청 건물처럼 권위적이고 위축되는 느낌이 드는 곳이 있어요. 어르신들이 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 좀 더 ‘자기존중감’이 들 수 있도록 내부 공간에 프로그램 동선이 녹아들도록 신경 썼습니다.”

그는 합리적 경비로 건물에 생기를 불어넣는 색감과 패턴에 공들인다. 박 대표는 “리모델링을 할 때 한정된 예산 내에서 좀 더 사람이 편안하면서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공간으로 꾸밀 수 있는 방법이 컬러와 패턴이었다”며 “유채꽃밭에 가면 엄청나게 많은 꽃들이 똑같은 패턴으로 만들어내는 그 아름다움이 있지 않느냐. 자연에서 착안한 아름다움이다”고 말했다.

폐자재를 줄이는 리모델링 방식에 대한 애정과 철학도 확고하다.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 콘크리트는 100년 넘게 쓸 수 있고, 다른 나라에서는 수백년 된 건물이 굉장히 흔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고속 성장을 하면서 의식주 중 ‘의’과 ‘식’이 해결되자 ‘주’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좀 더 좋은 곳에 살고 싶은 욕구가 있거든요. 그런 욕구는 리모델링을 통해 충분히 해결 가능합니다. 아예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쓰레기도 어마어마하게 나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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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간 방치됐다 시민 개방 공간으로 변신한 ‘종로구 세운상가 옥상’ [정광식 작가 촬영]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의 리모델링 작업물 중에선 50여년간 방치됐다가 시민 개방 공간으로 변신한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옥상 유휴공간, 입면에 건물일체형 태양광(BIPV)을 설치해 랜드마크로 바뀐 도봉구청사 등이 대표적이다. 세운상가 옥상은 버려졌던 공간이 전망대 및 휴게공원, 광장으로 거듭난 대표적인 도시재생 프로젝트다. 서울의 중심에 위치한 곳에서 도시의 현대화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로, 역사성과 지리적 특성을 잘 살렸단 평가를 받아 ‘2019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국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도봉구 청사 리모델링은 최근 공공건물들이 공들이는 에너지 저감뿐만 아니라 도심 미관도 고려해 공사가 진행됐다. 기존 석재와 옥상 마감재를 철거하고 녹색과 회색 계열 네 가지 색상의 컬러형 태양광 모듈을 부착했다. 배치는 기하학적인 그라데이션이 돋보이게 했다. 태양광의 고도와 보는 방향에 따라 외관의 색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건축물은 대부분 무채색이라, 좀 더 활기찬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컬러와 패턴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다 쓰러져가던 낡은 주택을 마을의 사랑방으로 재탄생시킨 프로젝트도 눈길을 끈다. 중구 신당동에 있는 주민공동시설 담소정은 2층 규모 노후 주택을 구조 보강해 선보인 공간이다. 1층에는 커뮤니티 공간과 공유주방이 있어 각종 모임에 활용되고 있다. 박 대표는 “외관 일부에만 벽돌주택의 흔적을 남기고, 다른 곳은 구조를 보강해 쓰레기를 덜 나오게 했다”며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쓸 수 있는 공간 등이 나뉘어 있다”고 했다.

중랑구 묵동 장미마을 어르신문화센터는 도시재생 프로그램 일환으로 신축됐다. 기존에 있던 노인정을 철거하고 지하 1층 ~ 지상 4층 규모로 지었다. 이곳은 저층 노후 주택이 즐비해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선정된 골목에 위치했다. 지상 1층부터 2층까지는 기존 경로당 공간이지만 지하 1층에는 다목적실이 들어섰고 3층은 공유부엌, 4층은 온실정원으로 조성돼 다채로운 문화향유 공간으로 꾸며졌다. 전경은 계단 그림자와 판넬 자재가 주는 도시적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박 대표는 “판넬을 보는 각도가 달라지면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며 “어르신을 위한 공간에 오히려 젊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온디자인건축사사무소는 쪽방촌·교회 리모델링 등 재능기부에 가까운 작업도 이어오고 있다. 박 대표는 지난 2012년 서울역 인근 쪽방촌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는 목회자의 요청을 받고, 최소한의 금액만 받고 리모델링을 한 바 있다. 박 대표는 “다 쓰러져가는 집을 어떻게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받아, 자재비의 반값 정도만 받아 결국 리모델링하게 됐다”며 “그때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대학을 가는 등 선순환이 이뤄지는 공간이 됐는데, 그런 곳이 진짜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닌) 공간이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따뜻한 건축’을 지향하지만, 바닥까지 떨어진 설계 대가를 군말 없이 수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박 대표는 강조했다. 이날 박 대표는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선 제대로 된 대가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건축사업계는 설계 대가를 정상화하고, 기준을 법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건축사의 업무 대가는 공공부문 발주에만 한정돼 있고, 민간 대가 기준은 법제화되지 않았다. 이에 덤핑 수임과 제살 깎아먹기식의 최저가 낙찰 관행으로 시장이 침체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박 대표는 “물가 오르는 상황을 감안하면 IMF때보다도 더 못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최악의 경우에는 복비보다 못 받는 말도 안 되는 사례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설계비를 제대로 못 받는 상황도 있는데, 제대로 받고 제대로 일해야 한다는 기조가 필요하다”며 “타 업계에서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기 위한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의식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고은결 기자

k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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