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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나홀로 뜨거운 美경제…파월 '매파' 선회에 세계 금융시장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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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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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식지 않는 미국 경제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물가를 잡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는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입장으로 급선회하면서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16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포럼에서 “최근 경제 지표는 (인플레이션이 2% 목표에 다다르고 있다는 데)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 확신에 이르기까지 기대보다 더 오랜 기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한다면 현재의 긴축적인 통화정책 수준을 필요한 만큼 길게 유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당분간 기준금리를 현 5.25∼5.50%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다.

파월 의장은 지난달 연방 상원 청문회 당시만 해도 “더 큰 확신을 갖기까지 멀지 않았다”고 발언해 금리 인하 기대감을 높였지만 이날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물가상승률과 고용이 예상보다 견고해 선제적 금리 인하 가능성이 약화됐다”고 평가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장 중 한때 5.01%까지 상승했다.(채권 가격은 하락) 5%선을 돌파한 것은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이다. 뉴욕 증시도 하락했다. LPL파이낸셜의 퀸시 크로스비 최고 글로벌 전략가는 “파월은 매파적 방향으로 더 단호하게 움직였다”면서 “이는 주식 시장에 비우호적”이라고 했다.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 배경에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나홀로 뜨거운 미국 경제 상황이 자리하고 있다. 생산과 소비ㆍ고용 등 주요 경제 지표가 줄줄이 전망치를 웃돌면서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잡힐 듯 보였던 물가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이에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날 올해 미국의 경제 성장률을 2.7%로 0.6%포인트나 올리는 등 주요 국제기구도 미국의 성장률을 잇달아 대폭 상향 조정하고 있다.

중앙일보

김영옥 기자


세계 금융시장은 동요하고 있다. 당장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06선까지 올랐다. 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국과 여타 주요국의 금리 격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예상에서다. 여기에 중동 위기가 고조되면서 ‘안전 자산’인 달러 선호가 높아진 것도 달러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달러 대비 엔화가치는 파월 의장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154.79엔까지 뛰는 등 1990년 이후 최저치를 하루 만에 고쳐 썼다. 유로·캐나다달러 가치도 5개월 만에 최저치다. 16일 오후 기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 통화지수는 전일 대비 0.27% 하락한 1708.92를 기록해 올해 들어 해당 지수 하락률은 1.8%에 달했다. 영국 FTSE100지수가 전 거래일 대비 1.8%,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1.3% 하락하는 등 아시아ㆍ유럽 주요 증시도 급락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유로·엔·원이 모두 하락해 ‘달러 1강(强)’이 선명해졌다”며 미국 조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 감소, 유사시 대비 달러화 매수, 중동 정세 악화에 따른 높은 원유 가격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6월물 국제 금 선물가격도 전일 대비 1.04% 상승한 온스당 2407.8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 사상 처음으로 2400달러를 넘어섰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하며 연초 2000달러, 지난 3월 2200달러에서 금값은 계속 고공비행 중이다.

국내서도 고금리 장기화 기류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원래 7월이었던 한은 인하 예상 시점을 10월로 옮기고, 연내 2번 정도로 봤던 인하 횟수도 한 번으로 줄였다”며 “유가가 오르는데, 성장은 IT(정보기술) 중심으로 회복 중이니 인하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국내 주식ㆍ채권ㆍ원화값 ‘트리플 약세’로 이어질 불씨가 될 수 있다. 17일 코스피는 외국인과 기관의 ‘팔자’ 공세에 전날보다 25.45포인트 내린 2584.18에 거래를 마쳤다. 두 달 만에 260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이다. 다만 달러당 원화값은 외환 당국의 공식 구두개입에 전날보다 7.7원 오른(환율은 하락) 1386.8원에 마감하며 급락세가 진정됐다. 하지만 1400원대에 근접한 원화가치는 국내에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에너지 등 수입품 가격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무역수지에도 부정적이다.

문제는 국내 통화 당국이 동원할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다만 정부는 국내외에서 이례적으로 연이틀 ‘구두 개입’에 나서며 환율 변동성 차단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CNBC 방송과 인터뷰에서 최근 원ㆍ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에 대해 “움직임이 과도하다”며 환율 변동성이 지속하면 시장 안정화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 인하 가능성에 대해선 “소비자물가가 목표치(2%)에 수렴할 것이란 확신이 있어야 금리 인하를 시작할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아미 기자 lee.ah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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