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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박시백 “안대 찬 궁예는 없다”…‘고려역사 500년’이 만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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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로 분한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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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침이 많았지만 고려라는 나라가 500년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작지만 강한 나라’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우리 역사에서 고려 못지않게 힘든 시기가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의 현대사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멋진 나라가 되어 흘러가는 힘은 고려가 후대에 물려준 유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출간을 시작했던 역사만화가 박시백(60)이 조선 500년사에 이어 고려 500년사까지 우리나라 왕조 1000년사를 만화로 그려내는 20년 작업의 대장정을 최근 마무리했다. 박 화백은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의 작업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박 화백은 1996년부터 5년간 한겨레신문에서 촌철살인의 만평을 그리며 인기를 끌었던 시사만화가였다. 그랬던 그가 돌연 회사를 그만두고 역사만화가의 길로 나섰다. 박 화백은 “그때는 미쳐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작업을) 빨리 하지 않으면 누가 먼저 해버릴 것 같아서 일단 회사를 그만뒀다”고 회고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철저한 고증과 탄탄한 이야기 구성으로 우리나라 역사만화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까지 360만부가 팔리고 여러 도서관에서 높은 대출 순위를 기록하는 등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한겨레서 5년간 만평 그리다 퇴사





이번에 완간한 ‘박시백의 고려사’(휴머니스트) 역시 정사(正史)에 기반을 두고 작업을 이어갔다. 조선 전기에 편찬되어 오늘날 전해오는 사료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려 역사서인 ‘고려사’(총 139권 75책)와 고려왕조사에 관한 가장 풍부한 기초 문헌이자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로서 학술적·문화재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한 ‘고려사절요’(35권 35책)를 바탕으로 썼다. 박 화백은 “‘삼국사기’는 소개가 많이 되어 있는데 고려사에 대해서는 소개가 많이 안 되어 있는 편”이라며 “이번 만화는 고려 정치사이기도 하지만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 대한 소개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고려를 볼 땐 조선의 관점으로 고려가 왜 망했는지 멸망사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고려가 어떤 사회였고 조선에 어떤 유산을 남겨줬는지에 대한 관점으로 담아냈다”며 “이 책을 계기로 고려와 고려사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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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5권 분량으로 고려시대 500년을 담아낸 역사만화 ‘박시백의 고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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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의 만화는 생생하고 세세한 인물 묘사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번 책에서도 박 화백은 고려사의 주요 왕은 물론 주·조연급 인물 150명 이상을 등장시켰고, 초상화나 어진이 드문 고려의 왕과 인물들을 개성 있게 그려냈다. 특히 역사 드라마 ‘태조 왕건’에 등장했던 ‘안대를 찬 궁예’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박 화백은 “드라마에서 김영철 선생님의 궁예 캐릭터가 워낙 강렬하니까 삐딱선을 타고 싶었나 보다”며 “분명히 옛 인물들 초상화를 봤을 때 안대를 찬 기록이 없고, 한쪽 눈을 실명했던 분들이 대부분 안대를 차지 않았는데 궁예도 그러지 않았을까 해서 그렇게 그렸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그의 작업이 사료에 기반을 둔 작업이라는 대목을 보여주는 예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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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휴머니스트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시백의 고려사’를 완간한 역사만화가 박시백 화백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휴머니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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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은 또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고려 왕으로 태조 왕건을 꼽았다. 그는 “태조 왕건은 건국 전이든 후든 시대의 요구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했고 어떤 처신과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잘 꿰고 있었던 지도자”였다며 “분열됐던 삼한을 통일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걸맞은 통이 큰 지도자”로 평가했다. 왕이 아닌 인물로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주목받았던 양규 장군을 언급했다. 박 화백은 “양규 장군이 고려라는 나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계속해서 전쟁에서 이기고 마지막 전투의 경우 거란군들이 도망가는 과정이었는데 굳이 거란군을 추격해서 모든 것을 걸고 싸워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양규 장군과 비슷한 인물들이 역사 속에서 계속 등장해서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궁금증도 일었고 그런 인물들의 등장이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고려가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이성계가 전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자체 무장력도 없던 정몽주가 이성계의 약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이성계를 코너로 몰았다는 점에서 왕이 아닌 인물 중에선 정몽주가 기억에 남는다고도 덧붙였다. 박 화백은 “정몽주는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에너지의 힘을 다 보여준 최고의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왕건 ·양규·정몽주 등 주·조연급 인물 150명 이상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 20권의 대작이었다면 ‘박시백의 고려사’는 5권에 불과해 아쉬움을 표하는 독자들도 있다. 박 화백은 고려사 분량이 적은 것에 대해 “고려사를 공부하고 난 뒤 자료가 너무나 적고 다 생략되어 있어 삼한이 통일하는 과정과 고려사 전반적인 과정을 1~2권으로 다뤘고, 1~2권에 맞춰서 나머지 3~5권도 출간하게 됐다”며 “뒷부분을 늘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했는데, 이후 다른 분들이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료가 없는 경우 무리해서 작가의 해석을 덧붙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고려사에서 광종이 굉장히 포악한 정치를 했다는 구절이 나오는데 구체적인 사례는 사료 어디에도 없었다. 성종 때 최승로가 역대 왕을 평가하면서 광종의 포악함을 다룬 것 정도가 있어 그 정도 선에서만 다뤘다고 한다. 박 화백은 “고려사 5권이 고려사를 이해하는 데 입문용으로, 고려사의 안내서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역사 관련 팟캐스트 등을 하면서 역사 대중화에 나선 그는 “역사를 아는 것은 이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선조들에 대한 도리이자 갖춰야 할 소양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전 작업에서 일제강점기 35년사(‘35년’)를 다뤘는데 앞으로 해방이후사도 다룰 계획”이라고 밝혔다. 어렸을 때부터 꿈꿨던 만화는 대부분의 작가처럼 창작 만화였고 혼자서 구상도 하기도 했지만 구체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는 그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 먹었고 계속 역사만화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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