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그냥 아이돌인데 청각장애가 있을 뿐···세상에 없던 K팝 아이돌 그룹 ‘빅오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K팝 아이돌 그룹 빅오션(왼쪽부터 찬연, 현진, 지석)이 데뷔곡 빛‘의 “다함께 손을 잡아요” 를 의미하는 수어 안무를 보여주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 청능사, 컴퓨터공학과 학생, 알파인 스키 선수.

오는 20일 데뷔하는 파라스타엔터테인먼트 소속 K팝 아이돌 그룹 ‘빅오션’(찬연, 현진, 지석) 멤버들의 예전 직업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하다 데뷔와 동시에 ‘아이돌’이라는 직업이 생기는 요즘의 K팝 아이돌 그룹과는 다르다.

빅오션이 타 그룹과 다른 점은 또 있다. 멤버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찬연은 11살, 현진은 3살 때 고열로 청력이 손상됐다. 지석은 선천적 청각장애가 있다. 약 2년간의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데뷔를 앞둔 멤버들을 지난 15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청각장애인도 노래하고 춤출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빅오션의 멤버 지석이 뮤직비디오 촬영 중 안무에 관한 조언을 듣고 있다. 빅오션 공식 유튜브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귀가 안 들리는데 어떻게 말을 해?’

청각장애인이 가수를 한다고 하면 처음 받게 되는 질문이다. 하지만 모든 청각장애인이 수어로만 소통하는 것은 아니다. 세 사람은 수어도 쓰지만 인공와우(청각신경에 전기 자극을 줘서 소리를 감지하게 해주는 기기) 등 청각 보청기기의 도움을 받아 음성언어로도 소통한다. 말하는 사람의 입 모양을 읽는 독순법도 쓴다. 찬연은 연습생이 되기 전까진 수어를 쓰지 않고 음성언어만 썼다. 아주 시끄러운 공간이나 마스크를 착용해 입이 아예 보이지 않는 상황만 아니면 음성언어로 대화하는 데 문제가 없다.

지석은 선천적 청각장애인이지만 어릴 때부터 자기도 모르게 목을 써서 말을 하려고 노력했다. 목을 쓰자 목 근육이 발달했고, 때맞춰 언어치료도 일찍 받은 덕에 음성언어를 쓸 수 있게 됐다. “청각장애인 대부분은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 목을 쓸 줄 알지만 안 쓰는 사람도 많다. 나와 멤버들은 희박한 사례다. 청각장애가 있는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두가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경향신문

보컬 트레이닝 중인 현진. 빅오션 공식 유튜브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말을 하는 것과 특정한 높낮이의 음을 연속적으로 내야 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다를 수 있다. 보컬 담당인 현진은 소리를 내면 계이름이 표시되는 어플을 이용해 노래 연습을 한다. “소리가 잘 안 들리다 보니 음정이 정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보컬 레슨을 받으며 배에 어느 정도로 힘을 줘야 음이 올라가고 내려가는지 터득했다. ‘근육의 힘’을 기억하면서 음 조절을 할 수 있게 됐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고 노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건 결국 편견이다.”

경향신문

빅오션의 멤버 찬연이 소속사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다. 빅오션 공식 유튜브 갈무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소속사는 멤버들을 위해 촉각, 시각을 활용한 안무 연습법도 개발했다. 이들이 찬 스마트 워치에서는 박자에 맞춰 진동이 울린다. 멤버들 정면에는 역시 박자에 따라 깜빡깜빡 반짝이는 빛 영상도 나온다. 이들은 청각 보조기기와 손목의 진동, 빛의 깜박임에 의지해 음악의 비트를 파악하고 안무를 짠다. 보조기기를 사용해도 각자 청력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연습 때마다 서로 맞춰가야 하는 부분도 있다. 지석은 낮은 소리가 잘 안 들리기 때문에 낮은음이 나올 땐 볼륨을 더 키워서 연습해야 한다. 지석은 “계속 외우고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잘 안 들리는 것을 핑계 삼을 수 없다”고 했다.

평범한 아이돌인데 청각장애가 있었네? 했으면


경향신문

K팝 아이돌 그룹 ‘빅오션’. (왼쪽부터) 김지석, 박현진, 이찬연. 파라스타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멤버들의 데뷔 경로는 다양하다. 대학병원에서 청능사로 일하던 찬연은 우연한 기회에 파라스타에서 하는 청각장애인 아이돌 프로젝트를 접하고 오디션을 봐 합격했다. 그룹 ITZY의 ‘달라달라’와 ‘스니커즈’ 커버 댄스를 췄다. 중학교 때부터 알파인 스키 선수였던 지석은 평생 선수로만 살고 싶진 않았다. 처음엔 배우가 되기 위해 1년 이상 연기 수업을 받았는데, 오디션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돼 준비해 간 것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이후 파라스타가 주최하는 행사에 갔다가 차해리 대표에게 ‘길거리 캐스팅’ 됐다. 그 행사 무대에 현진이 있었다. 현진은 보안 전문가가 되려던 대학생이었다. 청각장애인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 콘텐츠를 취미로 만들다 파라스타 소속 유튜버가 됐다. 그룹에는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일’은 그가 처음 유튜브를 시작한 계기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빅오션이 인터뷰를 마친 후 팀 이름인 ‘빅오션’을 의미하는 수어를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빅오션은 ‘장애인의 날’인 20일 방송되는 MBC <쇼! 음악중심>에서 ‘빛’이란 곡으로 데뷔한다. 1세대 아이돌 그룹 H.O.T의 히트곡 ‘빛’ 리메이크곡이다.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는 밝고 희망적인 가사 때문이다. ‘다 함께 손을 잡아요. 그리고 하늘을 봐요. 우리가 함께 만들 세상을 하늘에 그려봐요’ 라는 후렴구 안무는 수어로 만들었다.

‘빅오션’이라는 그룹명에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바다처럼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마음이 담겼다. 현진이 말했다. “청각장애가 있다는 것 때문에 알려지는 게 아니라 ‘평범한 아이돌로 봤는데 알고 보니 청각장애가 있어서 신기하고 멋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그룹으로 남고 싶다.”


☞ [이 사람을 보라] 국내 1호 장애 아티스트 전문 엔터사···편견을 감동으로 바꾸는 파라스타엔터 사람들 인터뷰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401011307001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국회의원 선거 결과, 민심 변화를 지도로 확인하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