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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김준의 맛과 섬] [186] 당진 장고항 실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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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실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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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도로 가는 배를 놓쳤다. 떠나버린 배는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 배를 기다려야 한다. 두 시간을 벌었다. 잊고 있던 허기가 밀려왔다.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준비한 아침 냄새가 허기를 자극했다. 장고항을 빠져나와 문을 연 식당을 기웃거리다 나의 할머니 같은 분이 앉아 계신 식당으로 들어갔다. 충남 당진 장고항리는 실치마을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며느리가 준비하는 동안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80대 후반이 무색하게 건강하고 기억력도 좋으셨다.

“실치는 4월에 들어왔다가 5월이면 거짓말처럼 나가버려유. 지금 아니면 실치회는 맛볼 수 없어유. 그래서 축제도 하잖유.” 실치회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아들이 돌미나리를 캐왔다며 실치회와 잘 어울린다고 했다. 할머니 권유로 실치국도 한 그릇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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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치회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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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까지만 해도 실치는 서산, 보령, 서천 일대에서 많이 잡혔다. 당시에는 무동력선 좌현과 우현 양쪽에 자루 그물을 달아 잡았다. 멍텅구리배라 불렀던 배다. 당시에는 조기나 새우도 같은 방법으로 잡았다. 조차가 큰 서해에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어법으로 안강망으로 발전했다. 당시 잡았던 것은 실치가 아니라 뱅어였다. 실치는 흰배도라치 치어로 바다에서 생활한다. 하지만 뱅어는 연안에서 생활하다 산란기에 강으로 돌아가는 어류다. 석문방조제나 대호방조제 등 제방이 생기고, 서식지도 오염되면서 뱅어는 보기 어렵다. 그 자리를 실치가 차지했다.

지금은 장고항 앞바다에서 봄철에 가장 큰 실치 어장이 형성된다. 실치회 무침을 처음 팔기 시작한 곳도 장고항리다. 한때 10여 척의 배가 실치를 잡았지만, 20여 년 사이에 손으로 꼽을 만큼 줄었다. 실치 어획량도 줄었고, 많은 선원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이제 몇 집에서 개량 안강망으로 실치를 잡고 있다.

실치회 한 접시에 실치국까지 차려냈다. 국은 시금치와 잘 어울린다. 회무침은 먹다 남은 것은 따뜻한 밥에 비벼 먹는다. 이때 반드시 밥과 채소를 비빈 후 실치를 넣어 살살 비벼 먹어야 한다. 따뜻한 밥에 실치를 바로 올려 비비면 녹아버린다고 한다. 할머니가 알려주신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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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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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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