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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김도훈의 엑스레이] [16] 파리 신드롬, 서울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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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신드롬(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파리 여행 간 일본인이 기대와 다른 파리에 크게 실망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다. 이 괴상한 신드롬이 널리 알려진 건 2000년대 중반이다. 2006년 BBC에 따르면 한 해 일본인 10명가량이 환상과 현실의 괴리에 충격을 받아, 대사관이 본국으로 보냈다.

이런 신드롬이 생긴 건 일본 대중문화에서 가장 낭만적으로 그린 도시가 파리였던 탓이라는 해석이 있다. 요즘도 이걸 겪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세계는 머리 잘 안 감는 불친절한 사람들이 개똥을 밟고 다니는 도시가 파리라는 사실을 잘 안다. 아는 게 힘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미디어 노출이라면 2020년대의 파리는 역시 서울이다. K컬처에 빠진 외국인 중에는 서울 신드롬을 겪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있었다. 2022년 CNN은 사랑을 찾아 서울로 모여드는 외국인 여성들 사례를 보도하며 ‘넷플릭스 효과’라 명명했다. 현빈을 찾아온 사랑은 불시착으로 끝났다. 공유를 찾아왔더니 도깨비 같은 남자만 가득했다. 도깨비같이 생긴 한국 남자로서 사과드린다.

나도 신드롬을 겪은 적이 있다. 뉴욕 신드롬도 그중 하나다. 펍에서 “팁을 그거밖에 안 내고 가냐?”며 따라 나와 소리치는 점원을 뒤로하고 빠르게 걷다 오동통한 죽은 쥐를 밟았을 때 나는 절규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뉴욕을 배운 인간의 비극이다.

극복할 방법은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세계 각 도시 산책 동영상을 보는 것이다. 얼마 전 항상 가고 싶던 리우데자네이루 산책 영상을 봤다. 지젤 번천 같은 모델이 카를로스 조빔의 선율을 들으며 거니는 이파네마 해변을 기대했다. 배 나온 중년으로 가득한 송정 해수욕장이 펼쳐졌다. 그제야 나는 환상을 버리고 30시간 걸리는 항공권 검색을 시작했다. 적어도 브라질 주재 한국 대사관으로 달려가 서울로 돌려보내라며 울부짖는 눈물의 여왕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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