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목포신항서 1000일 넘게 봉사한 '성훈삼촌'
'세월호 지겹다'는 목소리에 "생각 다를 수도"
"왜 지겹게 이야기하는지 한번 다가와 봐주시면 좋겠다"
■ 방송 : JTBC 유튜브 라이브 〈뉴스들어가혁〉 (평일 오전 8시 JTBC News 유튜브)
■ 진행 : 이가혁 기자 / 대담 : 김성훈 (세월호 현장 자원봉사자)
■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용 시: JTBC 유튜브 라이브 〈뉴스들어가혁〉)
◇ 이가혁〉 4월 16일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억하시겠죠. 이 분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팽목항이나 목포신항에서 오랫동안 계신 분들은 이 '성훈삼촌'을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 10주기를 맞아서 성훈삼촌을 직접 인터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본명은 김성훈 씨고요. 팽목항과 목포신항에서 오랫동안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 등을 도왔던 자원봉사자이기도 합니다. 지금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김성훈 씨 나와 계시죠?
◆ 김성훈〉 예 안녕하십니까?
◇ 이가혁〉 안녕하세요. 저도 목포신항에서 취재를 할 때 많은 도움도 받았었고요. 사진도 나가고 있는데요. 김성훈 세월호 자원봉사자라고 자막이 나가고 있습니다. 소개를 간단히 드리면 원래 생업은 있으신데 먼 친척이 세월호 희생자이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고 세월호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지금은 또 이제 개인적으로 일을 하고 계시고요. 김성훈 님, '성훈 삼촌'이라고도 불리는데 먼저 세월호 봉사활동을 처음으로 했던 계기가 뭐였을까요? 다시 한 번 좀 여쭙고 싶네요.
◇ 이가혁〉 목포신항에 보면 이렇게 다섯 분이 최종적으로 미수습자로 남았는데, 성훈삼촌은 마지막까지 미수습자와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목포신항까지 계속 남아 계셨죠? 언제부터 언제까지 봉사활동을 하셨었죠?
◆ 김성훈〉 팽목은 4월 16일부터 있었고요. 거기서 약 1080일 정도 있었고 그다음에 목포 신항에서는 92일 정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1172일 정도.
◇ 이가혁〉 원래 하시던 일이 있으셨잖아요?
◇ 이가혁〉 마침 거주하셨던 곳도 해남이니까 목포나 진도와는 멀지 않다 보니 더욱더 마음이 쓰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도, 저희 취재진도 많이 만났었잖아요.
◆ 김성훈〉 네, 많이 만났죠.
◇ 이가혁〉 저도 그때 기억하면 김성훈 씨가 항상 그을린 얼굴로 계셨고, 매일 저희 취재진에게 가족분들 분위기 귀뜸해주시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도 고마운 분이기도 한데, 그때 봉사활동 당시에 좀 기억에 남는 장면 스토리가 있다면 하나만 좀 소개해 주시죠.
◇ 이가혁〉 오히려 미수습자 가족분들이 방문객들을 위로해줬던 그런 상황이네요.
◆ 김성훈〉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 이가혁〉 어느덧 10주기가 됐네요. 10주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세요?
◇ 이가혁〉 '세월호가 지겹다. 이제 그만 좀 추모하자'라고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름의 논리도 있을 텐데, 그분들에게 1000일 넘게 진도 팽목항과 목포신항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성훈 삼촌이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 김성훈〉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났었거든요. 팽목도 그렇고 목포신항도 그렇고 그런 분들이 계셨는데 저는 그분들하고 처음에는 언쟁도 하고, 설득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근데 그분들의 생각도, 모든 사람들은 생각이 같을 수가 없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분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저희가 마음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 사람들도 그걸 보면서 뭔가 느끼고 변화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정말로 지겹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은 '그러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지겹게 얘기할까' 한 걸음 더 다가와서 이렇게 봐주시고 좀 알아봐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가혁〉 오늘은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 김성훈〉 오늘은 지금 안산에 가서 잠깐 가족들을 좀 만나뵈려고요.
◇ 이가혁〉 안산 가서 또 나름의 방식으로 10주기를 맞이하고 계시는군요. 저도 목포신항에서 취재 할 때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던, 그리고 지금 나가는 사진처럼 저렇게 헬멧을 쓰고 이런저런 장비를 들고 항상 분주히 다니며 팽목항과 목포신항에서 오랫동안 가족들 옆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김성훈 님, 이른바 '성훈 삼촌'이라고 불렸던 자원봉사자님과 함께 오늘 10주기를 한번 맞아서 세월호 당시의 기억도 되돌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성훈〉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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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들어가혁!〉은 JTBC news 유튜브를 통해 평일 아침 8시 생방송으로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될 핵심 이슈를 이가혁 기자가 더 쉽게, 더 친숙하게 전해드립니다.
■ 진행 : 이가혁 기자 / 대담 : 김성훈 (세월호 현장 자원봉사자)
■ 자세한 내용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용 시: JTBC 유튜브 라이브 〈뉴스들어가혁〉)
◇ 이가혁〉 4월 16일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기억하시겠죠. 이 분은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팽목항이나 목포신항에서 오랫동안 계신 분들은 이 '성훈삼촌'을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 10주기를 맞아서 성훈삼촌을 직접 인터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본명은 김성훈 씨고요. 팽목항과 목포신항에서 오랫동안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 등을 도왔던 자원봉사자이기도 합니다. 지금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김성훈 씨 나와 계시죠?
◆ 김성훈〉 예 안녕하십니까?
◇ 이가혁〉 안녕하세요. 저도 목포신항에서 취재를 할 때 많은 도움도 받았었고요. 사진도 나가고 있는데요. 김성훈 세월호 자원봉사자라고 자막이 나가고 있습니다. 소개를 간단히 드리면 원래 생업은 있으신데 먼 친척이 세월호 희생자이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고 세월호 현장에서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지금은 또 이제 개인적으로 일을 하고 계시고요. 김성훈 님, '성훈 삼촌'이라고도 불리는데 먼저 세월호 봉사활동을 처음으로 했던 계기가 뭐였을까요? 다시 한 번 좀 여쭙고 싶네요.
◆ 김성훈〉 예. 친척 동생이 단원고 학생이어서 그 단원고 학생을 찾기 위해서 처음 팽목을 4월 16일 방문했었고요. 그 뒤로 찾고 나서는 이제 친구 그러니까 그 동생 친구들과 가족들한테 한 약속이 있었어요. 같이 텐트에서 생활하시던 분들이 10분이 남아 계셨는데 그분들이 '아이들이 나올 때까지 기다립시다'하고 약속을 했는데, 아이들이 나오면 이제 다 안산으로 올라가시게 됐거든요. 그런 약속을 했었어도 아이를 다시 냉장고에 놓고 기다리는 시간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냥 올라가시게 됐어요. 근데 저는 그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누구 하나는 이 약속을 지켜야 되지 않을까, 그래서 지키게 됐는데 그 10명 중에 한 분이 또 늦게 나오셨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제가 기다리게 됐습니다.
◇ 이가혁〉 목포신항에 보면 이렇게 다섯 분이 최종적으로 미수습자로 남았는데, 성훈삼촌은 마지막까지 미수습자와 가족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목포신항까지 계속 남아 계셨죠? 언제부터 언제까지 봉사활동을 하셨었죠?
◆ 김성훈〉 팽목은 4월 16일부터 있었고요. 거기서 약 1080일 정도 있었고 그다음에 목포 신항에서는 92일 정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1172일 정도.
◇ 이가혁〉 원래 하시던 일이 있으셨잖아요?
◆ 김성훈〉 원래는 IT를 전공했고, 해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절인 배추 하면서 마을 사무장을 했었죠.
◇ 이가혁〉 마침 거주하셨던 곳도 해남이니까 목포나 진도와는 멀지 않다 보니 더욱더 마음이 쓰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저도, 저희 취재진도 많이 만났었잖아요.
◆ 김성훈〉 네, 많이 만났죠.
◇ 이가혁〉 저도 그때 기억하면 김성훈 씨가 항상 그을린 얼굴로 계셨고, 매일 저희 취재진에게 가족분들 분위기 귀뜸해주시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도 고마운 분이기도 한데, 그때 봉사활동 당시에 좀 기억에 남는 장면 스토리가 있다면 하나만 좀 소개해 주시죠.
◆ 김성훈〉 정말 많은 얘기가 있는데요. 2박 3일 며칠을 해도 그 이야기는 끊기지 않을 것 같은데요. 말씀드리자면 한 2년 그러니까 2016년 정도였을 거예요. 한 가족이 찾아오셨는데 아이를 데리고 오셨어요. 그 어머니가 많이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거기에 미수습자 가족들이 계셨는데 “이 아이가 태어난 날이 2014년 4월 16일이다. 그래서 그 아이의 돌도 못 해주고 생일도 못해주겠고 앉지도 못하겠다”는 거예요. 안아주지도 못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우시는데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미수습자 가족, 어머니들이 안아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러지 말라”고. “이 아이를 생각을 하면 앞으로 더 나은 나라 만들어야 되고 더 훌륭한 아이로 키워야 될 거 아니냐” 이런 말씀을 나눠주셨거든요. 그래서 절대 그러지 마라 더 소중하게 키워라 이렇게 얘기해 주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 이가혁〉 오히려 미수습자 가족분들이 방문객들을 위로해줬던 그런 상황이네요.
◆ 김성훈〉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 이가혁〉 어느덧 10주기가 됐네요. 10주기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세요?
◆ 김성훈〉 그냥 그렇게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어제 같은 일이었고 그냥 어제같이 생각나는 일들이었기 때문에 10주기라고 해서 특별하지는 않는데요. 앞으로가 문제겠죠. 지금의 10년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거고 또 제가 어떻게 함께해야 될지, 그런 문제들을 고민하는 게 그런 시간이 저한테는 10주기를 생각하는 그런 시간이 된 것 같아
◇ 이가혁〉 '세월호가 지겹다. 이제 그만 좀 추모하자'라고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름의 논리도 있을 텐데, 그분들에게 1000일 넘게 진도 팽목항과 목포신항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성훈 삼촌이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요?
◆ 김성훈〉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났었거든요. 팽목도 그렇고 목포신항도 그렇고 그런 분들이 계셨는데 저는 그분들하고 처음에는 언쟁도 하고, 설득 해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근데 그분들의 생각도, 모든 사람들은 생각이 같을 수가 없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그분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저희가 마음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 사람들도 그걸 보면서 뭔가 느끼고 변화하지 않을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정말로 지겹다고 얘기하시는 분들은 '그러면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지겹게 얘기할까' 한 걸음 더 다가와서 이렇게 봐주시고 좀 알아봐줬으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가혁〉 오늘은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 김성훈〉 오늘은 지금 안산에 가서 잠깐 가족들을 좀 만나뵈려고요.
◇ 이가혁〉 안산 가서 또 나름의 방식으로 10주기를 맞이하고 계시는군요. 저도 목포신항에서 취재 할 때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던, 그리고 지금 나가는 사진처럼 저렇게 헬멧을 쓰고 이런저런 장비를 들고 항상 분주히 다니며 팽목항과 목포신항에서 오랫동안 가족들 옆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김성훈 님, 이른바 '성훈 삼촌'이라고 불렸던 자원봉사자님과 함께 오늘 10주기를 한번 맞아서 세월호 당시의 기억도 되돌아봤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성훈〉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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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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