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정치학계 인사들이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총선 이후 한국 정치의 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왼쪽부터 조화순 한국정치학회장, 박원호 한국정당학회장, 김형철 한국선거학회장, 최준영 전 한국정당학회장. 한주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치가 중요해질 시간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 모인 정치학 교수들은 4·10 총선 결과를 복기하며 "지금이야말로 정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절체절명의 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조화순 한국정치학회장(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원호 한국정당학회장(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형철 한국선거학회장(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 최준영 전 한국정당학회장(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만원 매일경제 논설위원 등은 총선 평가 좌담회를 통해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새로운 길을 고민했다.
이들은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는 한국 정치를 고치기 위해서는 비뚤어진 '선거 제도'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22대 국회가 구성되면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개혁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는 토론 주요 내용.
―공천부터 문제점이 드러났는데.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공천 과정부터 팬덤정치의 부작용을 분명하게 드러낸 사례가 됐다. 예전에는 공천 과정에서 '도덕성'이라는 기준이 정치 진영과 관계없이 중요하게 작동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상대방에 대해서만 도덕성을 강조하고 우리 쪽 후보의 도덕적 해이에는 눈을 감아버린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세계 어느 나라의 의회에서도 국회의원의 '선수(選數)'는 훈장 같은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공천 과정에서는 다선 의원이라는 점이 페널티로 작용한다. 이게 맞는지 의문이다. 공천에서 경험 있는 중진들을 쓸어버리면 정당이 더 양극화될 수밖에 없다.
▷최준영 인하대 교수=이런 것들이 '뉴 노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아무렇게나 공천을 해도 완전히 진영으로 나뉘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지 정당을 옹호한다든지, 후보에게 악재가 터져도 그대로 간다는 식의 일이 계속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된다.
―특히 정책이 없는 선거였다.
▷최 교수=민주화 이후 정치가 난장판을 벌였음에도 경제·사회 여러 측면에서 발전해왔던 게 사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마침 운 좋게 세계화 시기를 살았기 때문이다. 냉전이 끝나고 값싼 노동력과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로 연결됐던 시장이 블록화되고 있고 세계화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렸다. 다시 정치가 중요한 세상이 왔다. 이제 선거도 끝났으니 미래를 바라보면서 협치를 해야 할 때다.
▷박만원 논설위원=양쪽에서 다 심판론을 들고나와서 공약을 내세울 공간이 부족했다. 적어도 총선은 지역 선거가 돼야 하기 때문에 중앙당의 개입을 제한하는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극단적이긴 하지만 선거 공보물이나 현수막만이라도 공약 외 사항은 아예 표기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조화순 연세대 교수=선심성 공약이 너무 많지 않나. 문재인 정부 이후 재정 적자가 증가한 상황에서 선심성 공약을 어떻게 다 맞춰줄 것인지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22대 국회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선거제 개혁과 관련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원 구성이 되자마자 위원회를 꾸려 적어도 2년간 심도 있게 논의하고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개혁안을 내놔야 한다. 또 정당 공천이 왜 여론조사를 통해야 하나. 팬덤과 진영에 의해 결정되는 정치인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공천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도 필요하다.
▷조 교수=전적으로 동의한다. 인기투표 식의 여론조사가 지역구 경조사와 체육 동호회만 열심히 챙기는 의원을 양산하는 것이다.
▷최 교수=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은 분명하다. 특히 수도권을 놓고 보면 의석수와 득표율 간 괴리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득표율과 의석수는 최대한 일치시키는 게 좋다. 이번 총선도 전국 득표율은 5%포인트 차이인데 의석수 차이는 굉장히 크다. 이렇게 되면 선거가 사생결단 식으로 흐르고, 정치적 양극화도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박 교수=정치관계법을 고치는 것이 헌법 개정보다 어렵다.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입법 과정 자체를 다르게 디자인해야 한다. 선거구 획정은 위원회를 따로 두고 의원들이 수정할 수 없게 돼 있다. 한 번 반려할 수 있고 그 다음에 바로 의결을 하게 돼 있는데 그런 방식이 좋은 선례라고 생각한다.
▷최 교수=아주 황당한 일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용진 의원 지역구에서 경선에 문제가 생겨 후보를 교체하고 또 한 번 바꿨다. 급하게 투입된 후보가 해당 지역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며칠 만에 공약을 만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적어도 6개월 이상 지역에 거주한 사람으로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
―비례대표제의 근본적 개선 방안은.
▷박 교수=준연동형 자체가 불비례성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닌데 어떻게 보면 제도가 '해킹'당한 것이다. 결국 정치인들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비례대표를 공천하든 안 하든 투표용지에 정당명을 다 올려야 한다. 위성정당을 완전히 방지하지는 못하겠지만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최 교수='비례대표=직능대표'라는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 지역구 의원과 마찬가지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비례대표로 성격이 바뀌어야 하고, 지금보다 수가 많이 늘어나야 한다.
▷김 교수=소선거구가 지역 대표성을 보장한다면 비례대표는 전국적인 공공의 이익과 가치를 어떻게 분배하는지에 대해 정책을 결정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이해해야 한다. 비례대표가 없다면 지역 이기주의나 지역 고객주의에 빠져 전국적인 이슈를 풀어내지 못할 것이다.
[전경운 기자 / 박자경 기자 정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