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적시 아닌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 표명"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 따른 판결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2심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표현들은 박 교수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할 수 있어 명예훼손죄 성립을 위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환송한 취지에 따른 판결이다.
12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명예훼손 혐의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가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김재호 김경애 서전교)는 12일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환송 전 2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각 표현은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으로 평가하는 게 타당하다"며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실의 적시'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선고 직후 취재진에게 "고발을 당한 후 9년 10개월이 지났고, 그간 법정 안에서뿐 아니라 밖에서도 재판이 진행됐다"라며 "마음을 다해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논란이 된 표현을 사용한 맥락을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책 속 '자발적 매춘'이라는 표현이 가장 문제가 됐는데, 이는 일본에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고 그런 생각을 하는 이들을 비판하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13년 자신의 책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이자 매춘이었고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 연행된 것이 아니다’라고 적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법원은 기소된 35개의 표현 중 5개 표현은 사실의 적시에 해당하지만, 나머지 30개 표현은 의견 표명에 불과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위안부라는 역사적 집단을 말한 것으로 피해자가 특정됐다고도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법원은 1심에서 사실의 적시로 인정한 5개 표현 등 외에 추가로 6개 표현을 사실의 적시로 인정하고, 각 표현은 허위사실 및 명예훼손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가 특정됐고,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객관적 사실과 달리 받아들이도록 했다"며 박 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심이 유죄로 인정한 표현은 박 교수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2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라며 "기본적 연구 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분야에서 통상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이다"라고 전제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박 교수가 사용한 표현에 대해 "통상의 연구윤리를 위반했다거나,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 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이들의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라며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인하거나,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조선인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의 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제국주의 사조나 전통적 가부장제 질서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가 기여한 측면이 분명히 있으므로 전자의 문제에만 주목해 양국 간 갈등을 키우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주제 의식을 부각하기 위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