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권 침해" 논란 속… 의회 문턱 넘어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람페두사 항구에 도착하는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순찰선 위에 바다를 건너온 이민자들이 탑승한 채 손을 흔들고 있다. 람페두사=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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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에 도착한 난민 신청자를 회원국끼리 재분배하거나 경우에 따라 역외로 이송한다는 내용의 신(新)이민·망명 협정이 10일(현지시간) 유럽의회 문턱을 넘었다. EU는 '누가, 얼마나 많은 난민을 받을 것이냐'는 오랜 갈등을 해결할 길이 열렸다고 자평하지만, 망명할 권리를 훼손한다는 비판을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다.
EU "난민 분배… 이것이 유럽식 연대"
유럽의회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이민·망명 정책 개혁을 위한 10개의 입법안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협정은 27개 회원국 동의를 거쳐 최종 시행된다.
핵심은 '의무적 연대'라고 명명된 규정이다. 특정 회원국에 난민 유입 부담이 발생할 경우 다른 회원국이 인구 및 경제 규모에 따라 일정 수의 난민을 나눠 받아야 한다. 이를 거부하면 난민 1인당 2만 유로(약 2,930만 원)를 EU에 내야 한다. 지중해와 가까워 아프리카·중동 출신 난민의 '유럽행 관문'이 돼온 이탈리아·그리스 등에서 도입을 원했던 조치다.
EU는 신이민·망명 협정을 "역사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100만 명가량의 난민이 한꺼번에 유럽으로 몰려든 후 불거진 난민 수용 및 배분 갈등을 해소할 방안을 10년 가까이 찾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가 신이민·망명 협정 초안을 제출한 뒤 의회 통과까지도 3년이 넘게 걸렸다. 로베르타 메솔라 유럽의회 의장은 엑스(X)에 "연대와 책임 사이에서의 균형, 이것이 유럽의 방식"이라고 썼다.
10일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회의장 전경. 이날 유럽의회는 본회의를 열어 신이민·망명 협정을 가결시켰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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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 논란... 의회 반대표도 상당
그러나 '특정 국가에 발 디딘 난민을 EU 기준 및 편의에 따라 이송한다는 것 자체가 망명권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본회의 표결에서도 찬성(301표)만큼이나 반대(272표)가 많았다. 기권도 46표나 됐다.
'EU 회원국에 망명 신청한 이들을 EU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비(非)EU 회원국으로 보낼 수 있다'는 내용도 문제로 지적된다. '안전 판단' 자체가 자의적인 데다 EU 및 개별 회원국 차원에서 이미 난민 이송 협상을 체결했거나 체결 중인 국가는 이집트·튀니지·모로코 등 난민 보호 규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모로코 등 난민 인정 비율이 낮은 국가 출신 난민 신청자들은 12주 이내에 심사를 마친다는 내용은 난민 신청자의 빠른 추방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안보상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난민 신청자는 최장 6개월간 구금하고, 난민 신청자가 6세만 넘어도 지문·얼굴 등 생체 정보를 EU 시스템에 저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하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EU는 분쟁·박해·경제적 불안을 피해 탈출한 사람들에게 더 큰 고통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이날 본회의는 시민단체 항의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협정이 발효되더라도 제대로 운영될지 미지수라는 분석도 벌써 나온다. 가령 헝가리는 협정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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