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먼저 무장해 계엄군 투입됐다는 주장 반박
박진우 5·18기념재단 사무처장 '전남대 학장회의록' 공개
5월 16일 시위가 질서 있고 수준 높았다는 것을 기록한 1980년 5월 '전남대학교 학장회의록'의 일부 모습.(박진우 5·18기념재단 사무처장 제공)2024.4.4/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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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이수민 박지현 기자 =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전 광주 지역의 시위가 격렬해 군인이 투입됐었다는 극우세력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가 공개됐다.
박진우 5·18기념재단 신임 사무처장은 4일 광주 서구 오월기억저장소에서 광주전남기자협회 기자들을 대상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되었던 5·18' 강연을 개최했다.
박 사무처장은 이날 자신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전남대학교로부터 받았던 자료를 공개하고 '시민무장설'을 직접 반박했다.
박 사무처장은 지난해 11월 전남대 뿐 아니라 전국 9개 국립대학교와 조선대 등에 80년 5월 당시 학장회의록 열람을 요청했다.
그 결과 전남대 자료는 입수할 수 있었으나 그를 제외하고는 부존재와 비공개 등을 이유로 전달받지 못했다.
공개된 전남대학교의 학장회의록은 80년 5월 17일 오전 11시 교내 총장실에서 작성된 것이다.
이날 회의 안건은 당시 전날(16일)까지 열렸던 '학생가두시위사태'였다.
5·18을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세력들은 당시 학생가두시위가 과하고 격렬했고, 군인보다 시민들이 먼저 무장해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극우세력이 확대 재생산하면서 마치 이 주장이 사실인 것 마냥 알려져왔다.
그러나 학장회의록 속 민족민주성회 마지막 날인 5월 16일 '학생가두시위'는 '특별한 사고없이 그리고 질서있고 수준 높은 전남대 학생상을 보여주었다'고 명시됐다.
박진우 사무처장은 5월 18일 이전의 집회·시위 때 찍혔던 대부분 사진에서 교통 경찰이 배치돼 있고 시민들이 '태극기'와 '현수막'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광주시민들이 이때까지 무장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사무처장은 "광주 지역 시위가 격렬해 계엄군이 투입됐다는 것을 직접 반박할 수 있는 자료"라고 말했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당시 옛 전남도청에서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나경택씨 제공)2021.2.13/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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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해당 자료에서 5·18 이후 2학기 개강을 앞두고 정부가 학생 시위를 염려해 강력한 대비책을 꾸렸다는 증거도 발견됐다.
5월 항쟁 이후 40여 일이 흐른 같은 해 7월 7일 전남대는 개강에 대비해 학생지도대책을 수립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학원가는 두달 앞으로 다가온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9월 1일)과 2학기 개강을 앞두고 대학간 의견교환과 학생지도 공동대처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회의를 개최했다.
회의는 △총·학장협의회 △교무처·과장협의회 △학생처·과장협의회 △자문기관협의회 등으로 구성했다.
박 사무처장은 이중 7월 8일 열린 '자문기관협의회'의 구성단체가 '전교위(전국교육위원회)', '도경(전남도경찰청)', '(K)CIA=중앙정보부', '505(505보안부대)'라는 점에서 "정부차원에서 강력한 대비책을 꾸려 5·18 이후 학생 탄압에 앞장섰다"고 강조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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