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에 3000억원 투입했지만 실효는 '글쎄'
유가·환율·의사파업 등 변수 산적…본질적 대책 강구해야
과일·채소 등 먹거리 물가 폭등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정부가 재정 투입에 이어 일종의 '비상금'인 예비비까지 끌어다 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총선 이후다. 물가 안정은 물론 의과대학 정원 증원 지원, 이상기후에 따른 재난 대비 등 나랏돈으로 때워야 할 돌발 이슈가 산적한 상황이라 추가경정예산 편성 없이 예비비로만 대응 가능할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3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할인 지원을 강조하면서 재정당국이 예비비 활용 검토에 나섰다.
전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는 여전히 높다"며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긴급 농축산물 가격 안정 자금을 무제한, 무기한으로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3%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어지고 사과·배 등 과일 가격이 역대 최대 폭으로 급등하며 악화한 민심을 달래기 위한 조치로 읽힌다.
정부는 지난달 18일부터 긴급가격안정자금 1500억원을 투입했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에 배정된 할인 지원 예산 1060억원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여기에 농산물 납품단가 지원 755억원, 농축산물 할인 지원 645억원 등을 더하면 3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데 이르면 다음 달 중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
계획에 없던 지출은 결국 예비비로 때울 수밖에 없다. 올해 예비비 편성액은 4조2000억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2020~2023년) 시기를 제외하면 최대 규모다.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는 3조원 안팎이었다.
물가 안정용 지출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예비비 투입이 불가피한 여타 과제도 산적한 상태다. 여름철 호우·태풍에 따른 재난 대비와 추석 등 명절 성수품 가격 안정, 김장철 가격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라는 돌발 변수까지 터졌다. 정부는 전공의 사직 행렬에 따른 의료 공백 대응에 이미 예비비 1285억원을 썼다. 공백이 장기화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의대 증원 작업에 나선 각 대학에 대한 지원도 상당 부분을 예비비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에 부정적인 현 정부 기류를 감안하면 예비비를 너무 일찍 소진하는 것 같다"며 "예산을 적게 쓰고도 실효를 높일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데 유통구조 개선 등 본질적 대책 없이 재정 투입으로 농산물 가격 상승에 대응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주경제=박기락·권성진 기자 mark1312@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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