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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초중 학부모 지방유학 문의 쇄도···"의대있는 지역 이사가야 하나"[의대설명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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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학원, 31일 의대 입시 전략 설명회

초·중·고교생·학부모 1000명가량 참석

의학계열·SKY 정시 합격선 변화 예측 등

지방유학 관심 폭발···“강원·충청권 유리”

‘의대 쏠림’에 이공계 인재 유출 우려도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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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지역 인재 전형이 확대된다는데 아이가 중학교 가기 전에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 게 좋을지 고민이에요(초3 학부모, 강동구 거주).”

3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종로학원의 의대 입시 설명회에는 1000명의 초·중·고 수험생과 학부모들로 북적였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좋은 자리를 꿰차기 위해 설명회 30분 전부터 줄을 섰다. 학원 측이 준비한 안내 책자는 금세 동이 났다. 고등학생들이 친구나 부모와 함께 설명회를 들으러 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부모 손을 잡고 온 초등학교 1학년 학생도 있었다.

종로학원은 이날 설명회를 2시간 동안 진행하며 내년도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의약계열인 의·치·한·약(의대·치대·한의대·약대)와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의 합격선(합격 가능점수) 변화를 주로 다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가 직접 나서 서울 수도권과 지방권 최상위권의 입시 전략과 초등·중학생의 중학교 및 고교 선택 방안을 설명하기도 했다. 종로학원은 이날 서울을 시작으로 대구(4월 2일), 안산·수원(3일), 대전·천안(4일), 부산(5일), 광주(6일), 울산(8일), 분당·인천(9일)에서도 의대 입시 설명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의대 입시 전략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전국 단위의 설명회는 사상 처음이다.

이날 설명회에는 수시 전형으로 의대 입학을 노리는 고등학생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정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을 유례없이 2000명 늘리기로 하면서 올해부터 입시를 치르는 고등학교 수험생들의 셈법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의대 합격선이 하락하면 연쇄적으로 서울 상위권 대학의 이공계·인문계 합격선 역시 내려앉을 수밖에 없어 입시판의 대형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증원이 아예 이뤄지지 않은 서울 내 의대에 비해 경기·인천권 의대는 지원자가 급증해 합격선이 요동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대 합격 문턱이 낮아질 것이란 기대에 ‘N수생(대학 입시에 2회 이상 도전하는 수험생)’과 직장인 수험생이 대거 유입될 전망이다.

고1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의대 정원이 늘면서 기존에 서성한(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 공대 합격선에 있는 학생들도 의대를 목표로 공부하는 분위기”라며 “의대 교과 전형 입시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학교생활기록부에 어떤 사항을 추가해야 유리할지 알고 싶어서 오늘 설명을 들으러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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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은 초등학생 자녀를 지역으로 보내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이른바 ‘지방유학’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종로학원이 설명회 신청자 약 32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전 설문조사에서 초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고등학교 입시와 더불어 지역 인재 전형과 관련한 내용을 가장 궁금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증원분의 대부분을 비수도권에 배정한 데다 정원의 60% 이상을 지역인재 전형으로 선발하기로 하면서 비수도권 학생들이 의대 입시에서 유리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의대 증원분 2000명의 82%인 1639명이 비수도권에 배치됐다. 지역인재 전형 비중 60%를 적용하면 비수도권에 추가 배정된 1639명 중 983명 이상은 지역인재 전형으로 더 뽑히게 되는 셈이다. 지역인재전형은 지방의대가 소재한 권역에 있는 고등학교를 3년 동안 재학해야 지원할 수 있다. 다만 지난 2021년 법이 개정되면서 현재 중3이 치를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중·고교 6년을 지역에서 살아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아이가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데 어느 학군에서 교육을 시키는 게 좋을지가 고민”이라고 했다.

임 대표는 “지방권 대학의 지역인재전형이 의대 합격에서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며 “특히 올해 강원 지역 고3 학생 수 대비 의대 모집정원은 3.6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지역인재 전형을 고려한다면 초 4·5·6학년 이전에 결정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한편 교육계에서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의대 블랙홀’ 현상으로 이공계 인재 유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대 입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공계 합격선이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도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의 상당수가 이공계가 아닌 의대로 목표를 바꿀 가능성도 높다.

이미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주요 대학에 설립한 반도체 계약학과의 신입생 이탈은 갈수록 늘고 있다. 삼성전자 계약학과인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올해 모집 정원이 25명인데 55명이 합격하고도 모두 등록을 포기했다. 1·2차 추가 모집에서도 등록 포기자가 대거 발생해 3차 추가 모집까지 진행했다. 대학 졸업 후 SK하이닉스 취업이 보장되는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의 경우 올해 모집 정원이 10명인데 10명이 모두 등록을 안했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2차 추가 모집까지 진행해 인원을 충원해야 했다.

반도체 계약학과의 ‘찬밥 신세’는 입시 뿐만 아니라 학기가 시작된 뒤에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계약학과에 입학한 뒤 반수 등을 위해 중도 이탈하는 학생이 매년 학교마다 2~3명씩 나오고 있다. 입시학원들은 등록 포기자 상당수가 의예과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했다.

교육계와 산업계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공정 고도화와 시설 확충을 늘리면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꾀하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고급 인재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어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의대 선호와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이미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는데 단순히 산업 연계 계약학과를 만들어 취업을 보장하는 방식만으로는 학생들의 반도체 등 이공계 엑소더스(대탈출)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이다.

교육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서둘러 ‘이공계 활성화 대책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이공계 인재 이탈을 최소화하기 위한 지원책 마련에 나섰다. 이 TF에서는 미래 이공계 인재의 체계적인 육성과 연구개발(R&D) 생태계 혁신, 과학문화 확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성채윤 기자 cha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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