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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페미니스트가 총선서 사라졌다 [Th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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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8일 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민주노총 세계여성의날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에 참석한 시민이 손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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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간이 없지 관심이 없냐!’ 현생에 치여 바쁜, 뉴스 볼 시간도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뉴스가 알려주지 않은 뉴스, 보면 볼수록 궁금한 뉴스를 5개 질문에 담았습니다. The 5가 묻고 기자가 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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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4·10 총선에 등록한 여성 국회의원 후보 비율입니다. 공직선거법이 권고하는 비율(3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2012년 6.9%에서 2020년 19.1%까지 올랐던 여성 후보 비율은 올해 크게 떨어졌습니다. 젠더 공약을 앞세운 여성 후보도 거의 없습니다. 여성 인권 법안 입법화에 앞장서 온 정춘숙·권인숙 의원과 엔(n)번방 실체를 밝힌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오히려 성범죄자 변호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한 의혹이 있는 조수진 변호사가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가 여성단체·여론의 비판에 떠밀려 사퇴했습니다.



거대 양당의 10대 공약에선 젠더 정책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선 5명이 페미니스트 후보가 출마했었고, 2020년 총선에선 정당들이 앞다퉈 성평등 정책을 내놨었는데요. 이번 총선은 왜 다른 걸까요? 페미니즘이 힘을 잃은 걸까요? 젠더 정치를 비평하고 영상문화를 연구해온 페미니스트 손희정 작가에게 물었습니다.



[The 1] 이번 총선에선 왜 여성 후보가 많이 안 보일까요?



손희정 작가: 국민의힘과 민주당 양당제에서 민주당이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의제를 끌고 가지 못하는 이유가 크죠. 2017년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청했어요. 근데 방송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하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질문에 “그럼요”라고 답해요. 페미니즘도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성소수자 인권을 말하는 지지자들이 실망했어요. 이때 민주당과 페미니스트 사이에 갈등 전선이 생겼다고 봐요. 민주당 안에서도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리스크가 있단 생각이 자리 잡게 됐고요.



미투 운동도 결정적 영향을 미쳤어요. 안희정 전 충남지사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민주당에선 차기 유력 대권후보였잖아요. 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중요한 플레이어였고요. 근데 미투로 그 역할을 못 하게 된 거죠. 그 뒤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보수당에 자리를 뺏기기도 했고요. 강성 민주당 지지자들 입장에선 페미니스트들이 민주당을 망친 상황이 된 거죠.



[The 2] 정당은 ‘공천할 여성이 없다’ ‘여성 인재가 부족하다’고 말해요. 사실일까요?



손희정 작가: 일부 맞는 말이라고 봐요. 다만 여성 개인의 역량 탓보단 여성 정치인을 길러낼 토양이 부족하다고 보는 게 맞아요. 여성 정치인은 너무 많은 대표성을 짊어져야 하는 부담이 있어요. 한 번의 실패가 여성 정치 전반의 실패로 이야기되기도 하잖아요.



거대 양당이 모험하지 않으려는 것도 여성 정치인을 키우지 못하는 원인이에요. 문 대통령 당선 후 2018년 지방선거가 있었잖아요. 당시 지자체장 후보 중 여자 후보가 있었나요? 반드시 당선되는 선거일수록 여성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 거죠. 영남·호남 지역처럼 거대 양당에 유리한 지역구도 마찬가지고요. 여성 정치인을 함께 갈 동료로 생각하면 전략적으로 키워줄 수 있는 판을 당이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페라로 효과’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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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젠더 공약을 전면에 내건 후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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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 페라로 효과가 뭔가요?



손희정 작가: 실패 원인을 여성 정치인에게 돌리고, 그 부담감 때문에 여성이 정계에 진출하는 걸 꺼리는 상황을 말해요. 1984년 미국 대선에서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는 부통령 후보로 여성 제럴딘 페라로를 파격 지명해요. 상대는 레이거노믹스로 지지율이 높았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대통령. 페라로는 ‘레즈비언이다’, ‘낙태했다’와 같은 각종 스캔들에 시달려요. 결국 레이건이 당선됐고요. 그 뒤 ‘여성을 후보로 내서 선거에 졌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근데 재밌는 건 설문조사를 해보니 페라로 때문에 먼데일을 안 찍었단 비율이 굉장히 낮게 나왔다는 거죠. 하지만 페라로 이후 여성의 공직 진출 비율이 떨어졌단 분석도 있어요.



국내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요. 페미니즘 공약을 내세웠던 신지예 전 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8만표 이상 받았잖아요. 그러다 돌연 윤석열 대선 후보 직속 기구인 새시대준비위원회에 들어갔어요. 근데 20~30대 남성 표심 이탈로 인한 지지율 하락의 책임을 떠안고 사퇴해요. 저는 그의 선택을 지지하지 않지만, 페미니스트란 그의 정체성이 이용 대상이 된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The 4] 젠더 공약은 왜 보이지 않을까요?



손희정 작가: 우선 그런 공약을 내세울 후보들이 당 경선 과정에서 배제됐잖아요. 정춘숙·권인숙 의원의 낙마를 두고 “페미(니스트) 선수는 쉬어도 된다” “페미대장들 굿바이”란 발언이 나온 것만 봐도 젠더 정치가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 수 있죠. 엄연히 따지면 젠더 공약만 없는 것도 아니에요. 이번 총선은 저쪽이 싫어서 이쪽을 찍는 정치, 양당 정치 안에서 진영 논리만 살아 있는 선거인 것 같아요.



[The 5]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2018년 미투 운동 당시보다 페미니즘이 가라앉은 걸까요?



손희정 작가: 페미니스트란 이유로 조리돌림, 폭력 당하는 시기를 겪은 10대 여성이 이제 대학생이 됐거든요. 10년 전과 달리 페미니스트란 정체성을 밝히기 어려워진 거죠. 하지만 백래시(성평등에 대한 반발성 공격)란 개념은 여성의 변화 에너지가 있을 때 그에 저항하는 탄성이잖아요. 여성이 가만히 있는데 백래시 위협이 커지는 게 아니란 말이죠.



또 강남역 살인사건 땐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빠르게 퍼졌던 때잖아요. 각성은 큰 결집을 가져 왔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지칠 수밖에 없어요. 각성을 잉크에 비유해볼게요. 맹물에 검정 잉크를 떨어뜨리면 처음엔 진했다가 금세 사라지잖아요? 하지만 그 물은 전과 같진 않거든요. 한 방울씩 쌓이다가 색이 변하는 순간처럼, 지금은 작은 변화가 쌓여서 진보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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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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